페루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페루

 

이은선

 

 

 

 

  현기증처럼 찾아오는 어느 고산지대의 해질녘

  인디오 소년들이 한 떼의 양을 몰고 좁은 들판을 내려간다

  세상의 모든 저녁 위에 걸쳐진 어둠과

  천천히 지워져 가는 지루한 시간들

  이 긴 나라 안에서는 고요만이 유일한 화법이라는 듯

 

  때때로 그들은 입 안에서 웅얼웅얼 맴도는 말들이

  모래바람처럼 지나가는 조상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들 스스로의 이름을 봉인해 둔 채

  해가 뜨고 밤이 오고 또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양털을 쓰다듬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 줌의 건조한 모래로 흩어지던 때의 바람소리를

  지금 와서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일

  모두가 있지만 또 아무도 없다는 듯,

 

  양떼와 라마와 울음소리 처량한 모든 짐승들의 그림자가

  조용히 지도 속 가파른 지형을 오르내린다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지었는지도 모를 민요를 흥얼거릴수록

  더 흐릿해지는 먼 산의 윤곽과 달그림자

  어딘가 이정표처럼 깃발이 흔들린다

  우리 내일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자

  한 떼의 양을 몰고 들판을 내려가던 소년들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소년들을 기다리는 집집마다 드문드문 불빛이 잦아드는 천막 안

  쉼 없이, 이름 모를 풀을 뜯어먹으며 푸른 입술로

  푸르게 시들어 가는 서로의 얼굴에 칭얼거림을 묻어 두는 아이들

  식어 가는 냄비 앞에서 이름을 버린 여자들이

  앞치마에 돋아난 보풀을 오래 내려다보고 있다

 

  《문장웹진 2월호》

 

 

 

 

   수상소감 / 이은선

 

  제 방 책상 앞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줄곧 창밖으로 달이 보이곤 했습니다. 달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것이 구멍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두운 상자 같은 것이고 달이 그 상자 맨 위에 난 작은 구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은 구멍으로 세어 들어오고 있는 상자 밖의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여기서 탈출해야지 내가 잊고 있던 중요한 그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여전히 그 상자 밖 세계를 향해 탈출 중이지만 이제 적어도 이곳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는 제게 그런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 여주었습니다. 어디선가 훑어본 책 구절 중에 ‘강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뛰어든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는 정말로 그렇게 뛰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멍 밖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는 갈증으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전생의 모습일지도 모를 페루의 소년처럼 ‘해가 뜨고 밤이 오고 또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시를 쓰고 있겠습니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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