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드라이어 사용설명서

 

헤어드라이어 사용설명서




이기호




등단 직전, 용인 굴암산 밑 박범신 선생의 작업실을 일 년 넘게 빌려 쓴 적이 있었다. 말이 빌려 쓴 것이지, 거의 쫓겨 들어간 셈이나 다름없었다. 위대하셔라, 이 땅에 강림한 IMF는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나뿐인 형의 사업체가 깔끔하게 공중부양, 전능하신 외국계 은행 우편에 앉게 되었고, 덩달아 내 허름한 옥탑방 보증금도 소리 소문 없이 하늘에 오르사, 부활의 기약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잘 곳도 없는 마당에 학교는 무슨 학교. 박스에 컴퓨터 한 대, 옷 세 벌을 넣은 채, 무작정 선생의 작업실로 찾아 들어갔다. 핑계는 좋았다. 글 좀 써 볼까 해서요. 선생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허락만 한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사모님이 이것저것 싸 준 반찬과 쌀을 들고 용인으로 찾아왔다(지금 막 든 생각 하나. 그동안 선생은 어디서 글을 쓴 것일까? 내가 당신의 작업실에 깃든 뒤, 선생은 단 한 번도 그곳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 잘 되냐? 선생은 식탁에 앉아 무심한 듯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늘 그저 그래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저 그렇지가 않았다. 선생이 왔다 가는 주말만 빼놓고, 나는 매일 밤 PC통신에 접속해, 채팅을 했다. 초고속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전화선에 컴퓨터를 연결해, 오늘도 오빠를 기다려요, 라는 방에 한 번, 서울 서대문구 독신남녀클럽, 이라는 방에 한 번, 야설동호회에 한 번, 긴긴밤이 모자라 새벽까지 열심히, 사람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엔 내내 잠을 잤다. 형에게 주먹질을 하는 꿈도 꿨고, 내가 소설 「삼포 가는 길」 속 영달이 되어 백화와 채팅하는 꿈도 꾸었다. 선생은 매주 거르지 않고 토요일에 들렀다가 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떠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나는 선생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곤 했다.

그렇게 삼 개월쯤 지난 뒤, 선생의 가방 속에 빈 반찬통을 챙겨 넣다가 우연히 전화요금 고지서 영수증을 보게 되었다. 삼십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나는 모른 척,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아마 그날부터 소설이라는 것을 조금씩 끼적거렸던 것 같다. 진도는 지지부진했지만, 더 이상 누굴 찾아 헤매진 않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다시 이 개월 정도 지난 뒤 찾아왔다. 십 년 가까이 흐른 일이지만, 날짜도 잊지 않았다. 12월 26일이었다. 작업실 뒤편, 밤나무 아래 위치한 창고 속 기름보일러가 가동을 멈춘 것이었다. 기름이 똑, 말 그대로 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 탓이었다. 나는 보일러에 붙은 스티커를 뜯어 와 주유소로 전화를 걸었다.

-양지면 대대리요? 거긴 먼 거리 배달이어서 사십만 원부터 나가는데요.

-얼마요?

-사십만 원이요.

나는 살포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십만 원은커녕 내 수중엔 사만 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잠깐 선생께 전화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계속 전화요금 고지서 영수증이 떠올랐다. 나는 괜스레 전화기 앞에서 군에서 배운 PT체조를 했다. 그리고 장롱 속 이불을 모조리 꺼내, 친친 허리와 어깨를 감싼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추위가 나를 훌륭한 문장가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쉬지 않고 자판을 두드려댔다. 냉랭한 공기 속에선 자판 소리가 명랑하게 들린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맑고 깨끗한 자판 소리. 하늘까지 울려 퍼질 것 같은 자판 소리.

그러나, 명랑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밤이 깊을수록 한기는 원한 맺힌 처녀 울음소리처럼 더더욱 뾰족해졌고, 내 손가락은 고드름처럼 곧게 아래로만 내려가, 반으로 접혀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슬퍼해선 안 돼. 나는 자주 욕실 거울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발이라도 좀 덜 시리면 좋으련만, 양말을 두 켤레나 겹쳐 신었어도, 발가락이 방바닥에 닿을 때마다 찌르르한 통증이 무릎 위까지 몰려들었다.

그렇게 이틀 밤을 지낸 후, 찬물에 머리를 감고 난 뒤, 새삼 발견한 것이 헤어드라이어였다. 아아, 그래, 이것이 있었지, 이것이 있었어! 나는 머리를 말리다 말고, 헤어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을 입 안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손가락에도, 허리에도, 사타구니에도, 발가락에도. 위대하셔라,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게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헤어드라이어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마음이 다시 사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었다.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청 테이프로 책상 아래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켰다. 바람이 나오는 입구를 이불의 작은 틈새로 곧장 연결되게 만들었다.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켜면 붕, 내 몸을 감고 있던 이불이 애드벌룬처럼 둥글게, 부풀어 올라왔다. 이불 안은 따뜻했다. 발가락도 시리지 않았다. 윙윙, 소리가 났지만, 그 소리는 또 얼마나 훈훈하게 들려왔던가. 창밖엔 눈이 내리고, 찾아오는 사람 한 명 없었지만, 윙윙, 그 소리가 따뜻해 나는 자주 혼자 웃었다. 그러면서,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헤어드라이어가 망가진 것은 선생이 작업실에 들른 그해 마지막 날, 오전이었다. 나는 정확히 닷새를 헤어드라이어로 버틴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쓴 소설은 내 등단작이 되어 버렸다. 그 모든 것이 다, 두려움에서 나온 웃음 덕분이었다.《문장 웹진/2008년 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