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의 착란

 

색깔의 착란




이영주




나에게 겨울은 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된다. 냉소적인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눈(雪), 뼈대만 남아 오히려 바람의 두툼한 갑옷을 연상시키는 겨울나무들, 사람의 머리 위에서 이질적으로 꿈틀거리는 털모자, 그리고 겨울의 질감을 완성시키는 창백한 입술들. 그것이 나에게 일반적인 겨울의 이름이었다. 뜨거운 태양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여름에 겨울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다른 세계의 풍경을 그려내라는 주문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겨울이라는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이 사진 한 장으로 불러낸다.

 

 

이곳은 그리스 크레타 섬이다. 서른이라는 시간에 영원히 빼낼 수 없는 못 하나를 박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스의 수많은 유적들을 제쳐 두고 내 숨을 가파르게 한 곳. 이곳에서 나는 그리스가 아닌 크레타, 라는 독립적인 공간을 얻었다. 마치 한국이라는 나라와 제주도, 라는 지명 혹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오키나와, 라는 지명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크레타의 겨울은 회칠로 가득한 CF 같은 그리스의 섬들과는 달랐다. 이곳의 회칠은 노란 꽃이 피는 저 나무의 밑동에 집약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뿌리가 뻗어 나가는 밑동은 우주의 모든 색깔을 지워 버리는 흰 땅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밑동보다 더 강렬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두껍고 까만 나무줄기였다. 겨울의 일반적인 저 흰빛은 검고 어두운 통로를 거쳐 노란 꽃을 피워 올리는 바탕일 터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리스가 아닌 크레타의 이름이 회칠한 밑동이 아니라 까만 통로에서 파생된 것으로 내게 읽혔다는 것.

겨울에 그리스라는 나라를 간 것은 오로지 12월 31일과 1월 1일의 경계 때문이었다. 나는 막 서른이 되려는 참이었고, 내가 나에게 엽서를 쓰고 싶었는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그때, 서른이라는 무게에 너무 힘을 주고 있었다. 어찌 보면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크레타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와 나는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가장 저렴해 보이는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어둡고, 침침하고 복도가 좁은 곳이었다. 차가운 바람의 방향이 보일 것만 같은 투명한 햇살 속에서 그 동굴은 단연 눈에 띄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동굴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고, 직선으로 뻗은 복도 끝에는 까만 털 뭉치 같은 어둠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발굴되지 못한 공룡의 뼈 속을 헤매는 벌레 같은 종족이었다. 약 10여 분이 흘렀을까. 털 뭉치를 헤치고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숙소의 주인 같지는 않았고 국경을 넘어온 여행자 같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공룡의 뼈 속을 몇 천 년 동안 헤매는 새로운 생물체였다.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그는 다가왔다. 그의 파란 동공은 흰자위에 눌려 서서히 회색빛이 되어 갔다. 오로지 육체라고는 눈(目)밖에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배낭 어깨끈을 꽉 움켜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을 뛰쳐나왔다. 지상의 낙원 같은 화사한 바깥의 풍경에는 언제나 뒷면이 있는 법이지만, 나는 가벼운 여행자이고 싶었다. 크레타라는 새로운 지명을 이렇게 시작하거나, 진짜 인생을 뒷면부터 시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세기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를 찾아 이라클리온 시내를 이 잡듯이 뒤진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도에 명징하게 표시되어 있는 무덤. 그러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올 것 같은 근육질의 사내들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에게 해의 펄떡거림을 전해 주는 곳. 우리는 이 생기발랄한 그리스인들에게 무덤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이 가리킨 곳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술집,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카페 등이었다. 거리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들. 그들의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 하얀 간판 바로 아래 새빨간 고기 덩어리들이 거꾸로 매달려 대롱거리는 정육점. 그것은 가죽이 벗겨진 토끼들이었다. 피로 범벅된 토끼의 긴 귀가 창문에 딱 붙어 정육점 안을 구경하는 내 목 근처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팬시 제품 같은 이국적인 간판 아래로 날고기가 흔들리는 순간. 내 안에 갑작스럽게 찾아든 정적. 눈알뿐인 사내를 잊기로 했고, 빨간 토끼의 배를 가르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의 칼날을 잊기로 했고, 가벼운 여행자가 되기로 했는데 나의 서른은 한겨울의 이상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때로 어떤 삶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순간의 이미지들로부터 변화될지도 모른다. 모든 색깔이 지워지거나 혹은 시작되는 흰빛. 어두운 복도, 라는 까만 통로를 거쳐 그 백(白)의 질감이 나무 밑동에서 한 사내의 육체로 전화되는 순간. 흰 가죽이 벗겨져 빨간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나는 크레타라는 지명을 ‘색깔의 착란’이라는 내 안의 지명으로 바꿔 본다.

그렇게 나의 이십대 마지막 겨울은 이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촉발되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이상하고 기묘한 착란을 시작으로 어두운 서른이 되었다.《문장 웹진/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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