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질 무렵

 

       

메밀꽃 질 무렵



김도연




장터 입구가 갑자기 북적거리는 걸 보니 어느 골에서 빠져나온 시내버스가 도착한 모양이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가 센 늙은이들이 더딘 걸음으로 꾸역꾸역 밀려온다. 성질 급한 젊은 놈들은 좁은 장거리를 답답해한다.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 볼 것 다 보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마을 사람들과 긴 안부를 나누며 길을 막고 있는 노인들을 추월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거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에 밴 습관은 그 느낌을 못 견디고 액셀만 밟아대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쉽게 길을 비켜주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노인들은 의도적으로 느리게 느리게 장거리를 산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길고 구불구불한 밭고랑에서 앉은걸음으로 김을 매듯 장거리의 조건에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은 그렇게 두세 번 장거리를 훑은 뒤에야 비로소 아주 적은 양의 물건만 산다. 그러니 장터에선 젊은 패들이 노선을 바꾸지 않는 한 노인들을 이길 수 없다. 대부분 답답함을 못 이기고 제풀에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할아버지, 한 잔 더 드릴까요?”

“……취하는데.”

말과 달리 허 씨의 손은 소주가 든 종이컵을 받아놓는다. 옆자리에서 생선을 파는 젊은 생선장수는 판촉의 일환으로 늘 좌판 옆에다 연탄을 피우고 생선을 구우며 그 냄새를 장거리에 퍼뜨린다. 덕분에 구운 생선을 안주로 가끔 소주를 얻어먹는다. 생선이래야 그 날 팔지 못하면 아무도 사가지 않을, 물이 간 것들이지만. 허 씨는 망설이다 말고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이제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컵을 엎어놓는다.

널에 진열해 놓은 갖가지 신발들 속에서 나른한 가을 햇볕은 달디 단 낮잠을 자고 있다. 장거리의 소란함이 차라리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휘장을 치지 않은 터라 햇살은 고스란히 허 씨의 몸을 감싼 채 뱃속으로 들어간 술을 조금씩 데우고 있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은 허 씨는 자우룩하게 변해가는 봉평 장거리를 바라보며 졸음에 빠져든다. 늙고 병든 수탉처럼 자울고 있다. 그의 앞에는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싸구려 신발들이 장거리로 가지런히 코를 내민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파란색 고무신, 장화, 등산화, 고무 슬리퍼, 스님들이나 신을 털신…… 들이 아직 점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햇살과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을 대신해서 전을 지킨다. 사실 잠이 들어도 신발을 못 파는 건 아니다. 신발을 도둑맞지도 않는다. 어딘가에서 올 신발의 주인을 기다리는 무료함 때문에 가끔 술잔을 잡고 그 여파로 잠시 조는 것뿐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꿈을 꾸고 있어도 장거리는 더더욱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한두 해 장거리에 좌판을 펼쳐놓았더란 말인가.

“정말이세요? 할아버지 성함이 허동이이라고요?”

“그렇소만.”

“에이, 농담이시죠?”

오일장 취재를 나왔다는 기자란 놈들은 도통 믿으려 들지 않았다. 도리어 당황스러워진 것은 허 씨였다. 집안 내력을 환히 꿰뚫으며 들어오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사무소에 들러 호구조사까지 마친 듯했다. 기자가 아니라 형사들 같았다. 막걸리와 족발을 미끼로 남의 집 이불 속 일까지 캐내려는 걸 보면.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을 정말 모른단 말이죠?”

“몰라. 그게 대체 뭔 소리래?”

“여기 봉평 출신 소설가 이효석이 쓴 유명한 소설이잖아요.”

“몰라. 장사해야 되니까 이제 그만 가게.”

눈을 감고 있으면 장거리는 거대한 벌집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분주하게 벌통을 들락거리는 벌 소리가 차오르고 가라앉기를 되풀이한다. 누군가 그 벌을 잘못 건드려 쏘이기라도 했는지 야단법석이지만 허 씨는 애써 눈을 뜨지 않는다. 눈꺼풀로 스며드는 복사꽃 색깔의 햇살 속에서 유유히 쏘다닐 뿐이다. 벌에 쏘인 곳은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가라앉는 법이다. 장이 서고 파하는 게 세상이듯이.

방울소리에 허 씨는 귀를 기울인다. 웅웅거리는 소음을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듯 애처롭게 들린다. 승냥이 우는 그믐밤 높은 고개를 넘고 시린 개울을 건너고 있는 것 같다. 달려가 곧 쓰러질지도 모를 그 방울소리를 잡아주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한다. 눈을 뜨면 그 모든 게 사라지므로 펼쳐놓은 난전 앞까지 저 홀로 무사히 당도하기만 바랄 뿐이다.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지는 방울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애가 타면서도 이내 마음 한 쪽이 훈훈하게 데워진다. 종아리까지 덮어주는 푹신한 털 장화를 신은 것처럼 흐뭇하다. 허 씨의 입 꼬리가 길어진다. 마침내 방울을 딸랑거리는 나귀가 도착했는가.

“그렇게 졸다가 신발은 언제 팔려는 게요?”

나귀 대신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낡은 한복을 입은 채 앉아 방글방글 웃는다. 알록달록한 코고무신을 만지작거리는 할머니는 쪽찐 머리에 은비녀까지 꽂고 있으니 허 씨로선 눈곱 낀 눈을 몇 번이나 껌뻑거려야 했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서 슬그머니 나온 듯하다.

“고무신 사려고?”

키와 덩치가 초등학교 저학년만하니 자연 말이 어름어름 넘어갔는데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얼마요?”

“곧 추워질 텐데 차라리 털신이 낫지 않겠소. 싸게 드리리다.”

“털신 신을 일 없소. 마지막으로 이거나 신다 가야지.”

“어딜 간단 말이오?”

“어디로 가긴! 저 세상으로 가지. 얼마냐니깐?”

허 씨는 비녀 할머니의 얼굴과 그녀가 만지작거리는 꽃무늬 고무신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럼 그렇지. 잘못 들었을 리가 있나. 분명 방울소릴 들었단 말이지. 허 씨의 입꼬리가 다시 늘어난다.

“할머니 신발인 모양인데 그냥 가져가세요.”

“그냥 가지라고? 참말이오? 에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소. 얼마요?”

“비싼 신발 아니니 그냥 가져가요. 할머니가 하도 고와서 내 공짜로 드리는 거요.”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망설이는 할머니의 은비녀에서 가을 햇살이 반짝거린다. 허 씨는 벙긋 웃으며 검은 비닐봉지에다 꽃무늬 고무신을 넣어 주름이 넘실거리는 할머니 손에 쥐어준다.

“냉중에 딴소리하면 재미없소? 나 그만 갑니다.”

“잘 가세요!”

비녀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품에 안고 종종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맑은 방울소리를 떨어뜨리며.

“할아버지, 마수걸이를 그렇게 해요?”

잠자코 두 사람의 수작을 지켜보던 생선장수의 뒤늦은 힐책이지만 표정은 도리어 재밌는 듯 눈웃음을 흘리고 있다. 허 씨는 허리를 곧게 펴고 가물가물 사라지는 방울소리를 듣는다. 오랜만에 방울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왠지 마음이 헛헛하다.

“술 남았나?”

생선 굽는 냄새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군침을 당기게도 하고 코를 찡그리게도 만든다. 허 씨는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생선을 삼키고 자리로 돌아온다. 팔려고 가져온 가을 전어를 보자 입속에 침이 고였지만 생선장수에게 그 맛에 대해 묻진 않는다. 대신 파란 가을하늘로 두둥실 떠가는 꽃무늬 고무신 한 켤레를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생각났다는 듯 새 고무신을 꺼내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 자리에 올려놓는다.

소주 한 잔이 불러온 졸음이 다시 허 씨의 눈꺼풀을 지그시 누른다. 허공의 고무신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떠 있다. 성 서방네 꽃다운 처녀였던 어머니도 꽃신을 마지막으로 신다가 아버지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다. 사월, 봉평의 산자락이 참꽃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 그렇게 한 세대가 연분홍 꽃그늘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하늘이 비를 뿌리지도 않았고 황사를 동반한 강풍이 세상을 뒤흔들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평소 말대로 무섭고 기막힌 밤을 지나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 어디쯤에서 꽃이 피었다가 작은 열매를 남기고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인생은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 허 생원은 흔들거리는 등잔 불빛 너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헤어져 살았던 지난 이십여 년의 날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성 서방네 처녀였던 어머니와 아들 동이에게.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이곳 제천 바닥을 뒤지고 또 뒤졌다오. 이렇게 허망하게 이십여 년의 세월이 가버리고 말다니.”

동이는 벽에 기댄 채 아무 말도 않고 계속해서 술잔만 비웠다. 허 생원이 아버지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가슴이 터져버릴 듯 쿵쾅거렸지만 술로 간신히 누르고 또 눌렀다.

“그래, 여태 혼자 사셨단 말이오? 딱한 양반 같으니…….”

“어머니, 딱하긴 뭐가 딱합니까! 생원님, 당연히 다음날 어머닐 모시러 갔었어야지요. 그게 세상 이치 아닙니까?”

“난 당신 집안이 그렇게 빨리 봉평을 뜨리라곤 생각도 못했다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았어야지요!”

“동이야,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아버지라뇨? 대체 누가 아버지라는 겁니까?”

장거리에 음식냄새가 피어나고 있다. 장사꾼들은 대부분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배달시켜 먹는다. 하지만 옆자리의 생선장수는 매번 밥만 담아온 도시락을 꺼내놓고 술안주로 먹던 구운 생선을 반찬 삼아 점심을 해결한다. 밥마저 깜박 했을 땐 생선을 굽던 연탄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로 구두쇠지만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허 씨는 기지개를 켠다. 생선장수에게 물건을 맡겨놓고 어디 가서 국수나 한 그릇 먹을 요량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바닥을 한바퀴 돌아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변해가는 장터 풍경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새로 얼굴을 디밀었는지, 누가 떠나가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점심 드시러 가시려구요? 제가 신발 가격까지 다 알고 있으니 염려놓으시고 다녀오세요.”

봉평 장거리도 많이 변했다. 드팀전이며 나무꾼, 당나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라지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것들은 모두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허 씨는 산골짜기에서 오랜만에 장 구경을 나온 사람처럼 차근차근 장거리를 기웃거린다. 쯧쯧.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남세스럽게 여자들 속옷을 저렇게 함부로 내놓고 팔다니. 킁. 저 빤스는 코끼리가 입어도 되겠군. 어이쿠, 저 생선장수 할망구는 오징어 몇 마리 팔려고 나만큼이나 오래 장터를 지키는구만. 한 마리 사주고 싶지만 옆자리가 어물전이니 그럴 수도 없다. 모기향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을 빠져나온 허 씨는 곧바로 국숫집으로 들어간다. 장날에만 문을 여는, 상호도 없고 비닐 천막으로 대충 하늘만 가린 국숫집이 옛날 충주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수 한 그릇 말아주게.”

계집도 선달도 생원도 각다귀도 없는 천막 아래서 허 씨는 턱을 국물로 적시며 국수를 먹는다. 손님이 마시다 남긴 술과 함께. 늘그막이 되니 마음은 노상 옛날을 서성거린다.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신발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신발을 신고 돌아갈 것이다. 말끔하게 비운 흰 국수 그릇을 들여다보며 허 씨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생에서도 계속 신발을 판다면 꼭 그런 신발을 구해서 팔고 싶다.

“혼자인 듯한데 나랑 술 한잔 하겠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방울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허 씨는 다문 입을 천천히 벌린다.

“이게 누구요? 충주댁 아니오?”

“맞소. 충주댁이 이렇게 늙어버렸소! 그 쪽도 많이 늙었구만. 그래 어찌 지냈소?”

“잘 지냈소! 거긴?”

“나도 잘 지냈소!”

“어데 안 가고 여적지 봉평에서 살았단 말이오?”

“여적지 여기서 살았소.”

“하, 그랬었구만! 자자, 한잔 받으시오.”

“거기도 한잔 받으시오.”

“난 저쪽 끄트머리에서 신발을 팔고 있소.”

“그렇소? 꼬박꼬박 장 구경 나오는데 그걸 몰랐다니, 내 눈도 이젠 내 눈이 아닌 모양이오.”

“하, 이게 대체 얼마 만이오. 자, 한잔 더 받으시오.”

“거기도 한잔 더 받으시오.”

희미해지는 방울소리를 들으며 신발전으로 돌아가는 허 씨의 다리는 풀려 있다. 신고 있는 신발이 질질 끌려오는 듯하다. 바싹 마른 낙엽 같은 햇살이 천막과 천막 사이에서 빠져나와 허 씨의 굽은 등허리에서 놀고 있다. 생각 같아선 장사고 뭐고 다 작파하고 충주댁과 지난 얘기나 나누고 싶지만 참고 또 참는다. 창피하지만 눈 딱 감고 속옷이라도 한 벌 사서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속옷이 좀 그렇다면 팔고 있는 신발도 있다. 아쉬움이 걸음을 멈추게 만들지만 거기까지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에 밀려 허 씨는 충주집 자리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없는 동안에 장화를 네 켤레나 팔았어요! 아무래도 생선장수 때려치우고 신발장수로 나서야겠어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뭘요, 할아버지도 저 없을 때 많이 봐주셨잖아요.”

새 장화를 꺼내 박스 위에 올려놓는다. 햇살은 이내 검은 장화 위로 놀이터를 옮긴다. 비싸고 좋은 신발들을 파는 데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다 마다하고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랜 세월 장거리에 앉아 있는 보람을 느낀다. 물론 그 사람들은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가지고 있는 신발이 다 팔리면 허 씨도 이제 그만 장거리를 떠날 생각이다. 그동안 얼마만큼의 신발을 팔았는지 헤아릴 순 없지만 말마따나 그 싸고 질긴 신발들이 더위와 추위로부터 그리고 산속이나 논밭의 나뭇가지나 돌부리로부터 주인들의 발을 잘 보호해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신발 바닥을 뚫고 올라온 못에 상처를 입었다는 손님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마치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듯 허 씨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때 생각 같아선 팔고 있는 모든 신발의 밑창에 철판을 깔고 싶을 정도였다.

“할아버지,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모두 몇 켤레나 되는 신발을 신을까요?”

한 차례 손님이 빠져나간 뒤 생선장수가 아무렇게나 섞인 돈을 정리하며 묻는다. 젊어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유별나다. 신발만 만지작거린 허 씨도 품어보지 않았던 의문이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는 몇 마리나 먹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드네요. 참, 내일은 진부장으로 가세요?”

오일장의 장돌뱅이들은 예전과 달리 객줏집에서 잠들지 않는다. 트럭이나 승합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장이 서는 곳으로 출근한다. 나귀 등에 짐을 싣고 메밀꽃 핀 밤길을 함께 걸어 진부나 대화로 찾아갔던 일은 다 옛날 옛적의 일이다. 나귀를 밀치고 들어온 게 화물트럭이고 뒤이어 완행버스가 나타났다. 돈을 번 장돌뱅이들은 제일 먼저 자신만의 트럭을 장만했다. 등짐을 지고, 나귀의 방울소리를 들으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에서 장으로 갔던 그 고되고 흐뭇한 밤길은 영영 사라진 것이다. 그 길의 마지막에 허 씨가 서 있는 것이다. 그 길에서 모두 몇 켤레의 신발을 팔았단 말인가.

“떼어놓은 신발만 다 팔면 진부장에 안 가고 오늘이라도 당장 은퇴할 수 있지.”

“모두 몇 켤레나 남았는데요?”

“글쎄…….”

남은 신발이 몇 켤레인지 왜 모르겠나. 각각의 신발 주인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허 씨가 장바닥에서 늙어가는 것처럼 그들이 찾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뿐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이상하게도 마음의 갈피가 자주 흔들린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아주 늦게 그들이 찾아왔으면 싶다가도 또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버팅기고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듯 한꺼번에 와서 신발을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알 수 없는 게 사람 욕심인 모양이다.

“솔직히 신기해요, 할아버지. 요즘 시대에 그런 신발을 사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꾸준히 있다는 게. 비결이 대체 뭐죠?”

“비결은 무슨 비결. 같은 자리에 그냥 한 사십 년 앉아 있음 되는 거지.”

젊은 날, 아버지 허 생원이 했던 얘기다. 드팀전으로 시작한 아버지는 신발장수를 끝으로 장돌뱅이 생활을 마쳤다. 장돌뱅이답게 진부 장거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팔지 못한 신발과 늙은 나귀를 남긴 채. 허 씨는 아버지의 신발을 물려받으며 업종을 바꿨다. 아버지가 팔았던 고무신을 다른 치수로 바꾸러 온 손님을 상대하며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게 지금까지 계속된 거다. 진부장은 아버지가 전을 펼치고 돌아가신 자리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질기고 질긴 인연이다.

“이보시오, 신발장수 영감?”

오전에 꽃무늬 고무신을 골라갔던 비녀 할머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올라오는 종이봉투를 불쑥 내민다.

“호떡 드시우. 고운 꽃신을 공짜로 얻으니 영 마음에 걸려 내 다시 왔소.”

“고맙소. 이거 오늘 배 터지겠네! 그래 할머닌 사는 데가 어디세요?”

“조금 있음 저승 갈 할망구 사는 데가 왜 궁금하오? 쩌기 태기산 아래 살고 있소.”

“좋은 데 사십니다. 건강하세요.”

시내버스 떠날 시간이라고 잰 걸음으로 장거리를 빠져나가는 비녀 할머니의 뒷모습을 허 씨는 오래 바라본다. 흑설탕이 뚝뚝 흐르는 호떡을 먹으며. 마치 말년의 어머니를 다시 보는 듯하다. 어머니도 그랬다. 잠시 건넌 마을에나 다녀온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고단했던 이승을 정리하고 아버지를 따라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갔다. 당시에는 그 표정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는데 세월 속에는 인생을 휘감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고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묘한 무엇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성 서방집 처녀였던 어머니는 아들의 품에서 눈을 감으며 당부했다.

“니 아버지를 원망하지 마라.”

늘그막에야 아버지를 만나 짧은 시간 가족을 이뤘지만 용서까진 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보낸 지난 세월이 엄연히 두 눈 부릅뜨고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이제 니 아버지 곁으로 가서 헤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 테니 니 맘에 맺힌 원망도 그만 풀어야 한다.”

나귀 목에 매달려 쓸쓸하게 울리던 물기 없는 방울소리가 사라진다. 허 씨는 게으르게 장거리를 오고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닮은 사람들을 살핀다. 한 파수만 지나면 정말 공처럼 둥글어질 것 같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 건너편에서는 젊은 보살이 과일을 놓고 오래 흥정한다. 사람들은 창자 속을 빠져나가듯 그 사이에서, 그 좁은 통로에서 꾸물거린다. 이 쪽에선 생선비린내가 풍기고 저 쪽에선 족발 삶는 냄새가 가득 깔려 있다. 허 씨의 신발전에선 햇살에 잘 달궈진 고무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손님을 부르는 장돌뱅이들의 목소리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방울소리는 이 모든 것들에 스며 있다가 피어나고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는 꽃 같다.

“자식들하고 왜 같이 살지 않으세요?”

“……서울은 너무 멀고 낯선 곳이야. 거기 가서 내가 뭐하며 살겠나.”

“그건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답답할 거 같아요. 근데 몇 십 년 동안 신발만 파는 것도 지겹지 않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지겨울 때도 있지. 하지만 어쩌겠나. 나한텐 신발이 밭이고 논인데. 정든 집을 지키는 마누라나 다름없어.”

“에이, 고리타분해요. 새로운 맛이 전혀 없잖아요.”

“저 사람들은 다 관광 온 것처럼 즐거워하잖아. 그럼 됐지.”

허 씨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생선장수는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대신 날아드는 파리를 쫓으려고 새로 모기향을 피운다. 파라솔에 매달아놓은 끈끈이와 은박지 판들이 반짝이며 돌아가지만 파리는 쉽게 생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투명한 비닐장갑에 물을 담아 매달아놓은 어물전도 있지만 들끓는 파리의 식욕을 쫓아버리진 못하는 모양이다.

“이놈의 장사는 이문은 많이 남는데 파리떼가 문제예요, 문제! 집어치우고 빨리 다른 걸로 바꾸던가 해야지. 조그마한 파리한테까지 무시당하는 것 같다니까요.”

파리가 득시글거리는 어물전을 피해 딴에는 머리를 굴려 허 씨의 옆에다가 자리를 잡았건만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는 파리떼에 대한 불만이다. 허 씨는 마른 웃음만 장화 속에 흘린다. 햇볕에 잘 달궈진 장화나 고무신에는 파리가 앉지 못한다. 대신 등산화에 앉아 방금 전에 만지작거린 생선의 냄새를 말리고 있다. 생선장수가 옆자리에 들어오겠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던 일이므로 내색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 봉평장에서는 등산화를 팔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게 어우러져 돌아가는 장바닥이기에 이해 못할 일은 없다. 그래도 이해 못하면 서로 멱살을 잡고 돌아가는 싸움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무슨 싸움이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젊은 패들의 몫이다.

“파리 때문에 성가시죠? 제가 특별히 전어 몇 마리 구워 올리겠습니다.”

“가을 전어라……좋지!”

전어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진다.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돌고 술 생각이 난다. 파리가 극성을 부리니 생선장수도 주변 장돌뱅이들한테 미안한 모양이다. 좀체 내놓지 않는 전어가 구워지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비린내와 파리떼에 화가 나다가도 대부분 생선 굽는 냄새에 찡그렸던 인상을 풀어버린다. 석쇠 위에서 구워지는 전어를 보며 허 씨는 다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방울소리를 듣는다. 햇살은 조금씩 기울고 있다.

“꽃신 한 켤레 주세요. 6문 반으로.”

“꽃신이라…….”

잘려나간 두 다리 부위를 두꺼운 고무로 감싼 채 장거리에서 가요 테이프를 파는 사내다. 전어를 먹다 달려온 허 씨는 사내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살핀다. 정해진 자리도 없이 좁고 복잡한 장거리를 오가며 장사를 해야 하는 사내에게 늘 미안했던 터라 같은 꽃신인데도 세심하게 골라 살피고 또 살핀 다음에 건네준다. 사내는 환하게 웃으며 건네받은 꽃신을 장갑 낀 손으로 새로 닦는다.

“누구에게 주려고?”

“흐흐, 있어요! 얼마죠?”

유행가를 팔아서 벌은 돈이 사내의 전대에서 나온다. 액수가 맞는지 세 번이나 꼼꼼히 확인한 뒤에 허 씨의 손에 천 원짜리 네 장이 건너온다.

“요즘은 어떤 노래가 잘 나가나? 테이프 하나 골라주게.”

소걸음을 닮은 방울소리를 업은 채 사내는 온몸으로 장바닥을 쓸면서 간다. 그곳은 방금 배가 지나간 것처럼 환하다. 사내가 밀고 있는 수레에선 뽕짝이 흘러나온다. 허 씨는 긴 한숨을 내뱉는다. 정작 사내에게 신겨 줄 신발이 없다니. 오후가 되면 운전 때문에 대부분의 장돌뱅이들이 술을 삼가는 게 습관이지만 펼쳐놓은 신발들이 갑작스레 한심하게 보이니 술잔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사내가 사 가지고 간 꽃신에 채워질 웃음과 눈물을 떠올리며.

“운전 안 하세요?”

“차에서 한잠 자고 가지 뭐. 전어 맛이 좋으니 술 안 마시고 배기나.”

장거리가 점점 한산해지고 있다. 그늘이 내려앉은 곳엔 스산함마저 감돈다. 봉평의 골짜기 골짜기에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장이 서서히 파할 무렵이면 헐하고 양이 많은 반찬거리나 과일을 찾아, 시간에 쫓길 일 없는 시내사람들이 도둑고양이처럼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웬만한 물건은 장에서 구입하지 않고 차를 끌고 강릉이나 원주로 나가서 구입한다. 장거리의 물건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거리는 그들에게 구경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별반 정이 가지 않는 것도 다 그래서다. 다른 업종의 장돌뱅이들은 슬슬 짐을 꾸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떨이를 할 작정으로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부르던 생선장수는 짐을 꾸리는 허 씨가 부러운 듯 투덜거린다.

“에이! 도둑질을 해서라도 업종을 바꿔야겠어요.”

해가 점점 짧아진다. 허 씨는 생선장수의 빈 트럭 옆에다 낡은 승합차를 세운 뒤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눕는다. 생선장수가 생선을 다 팔 때쯤이면 술도 어느 정도 깰 것이다.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 된다. 음주단속이 워낙 심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옛날이 그립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나귀를 타고 방울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장으로 갈 수 있으니까. 아버지 허 생원의 말마따나, 달밤에 어울리는 얘기를 주절주절 나누며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는 운치는 장돌뱅이들의 세계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생각할수록 무섭고도 기막혔던 밤의 물방앗간도. 허 씨는 그 세계의 마지막 꿈을 자신이 꾸고 있다고 여기며 잠을 청한다.


동이야?

할아버지?

이보게 동이?

여보시오, 신발장수 영감?

이놈 동이야? 일어나!

아 참! 왜 자꾸 부르고 야단이에요. 잠 좀 자게 내버려둬요.


“……허허.”

장거리는 어둑어둑하다. 가로등 불빛마저 없다면 어디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허 씨는 누가 볼세라 텅 빈 전대를 감추고 쓰린 배를 손으로 주무른다. 짐칸에 실어놓은 신발 상자들도 온데간데없다. 몸이 떨려 승합차의 시동을 켜고 히터를 튼다. 끊은 지 오래된 담배가 생각났지만 곧 포기한다. 생선장수의 트럭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차가 주차돼 있다. 곤히 잠든 허 씨를 깨우기 뭐했던 모양이다. 장돌뱅이들이 모두 떠나간 장거리를 내다보다가 허 씨는 차를 끌고 봉평의 장거리를 빠져나간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낮에 구입한 뽕짝 테이프를 튼다. 신호가 바뀌자 평소의 길을 포기하고 곧바로 옛날 길로 우회전한다.

달이……보름달이 떴으니까.

생긴 지 얼마 안 된 다리를 건너자 길 옆 밭은 온통 메밀꽃으로 환하다.

자잘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는 듯하다. 물방앗간이 있던 자리도 메밀꽃 천지다. 술이 덜 깬 건가. 한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론 계속해서 눈을 문지르지만 메밀꽃은 사라지지 않는다. 골짜기 전체가 소금의 강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달빛은 은은하게 골짜기를 밝히지만 자동차 불빛은 거의 숨 막힐 정도로 메밀꽃을 핥고 있다. 고개 입구에서 결국 허 씨는 차를 세운다. 시동을 끄고 유리창을 내린다. 메밀꽃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다. 달콤한 꽃향기에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부터 은빛 강물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꿈을 꾸고 있는 게로군. 꿈이 아니곤 이럴 수 없는 거야. 고개를 올라가는 나귀의 방울소리까지 들리잖아. 허 씨는 다시 승합차를 몬다. 헤드라이트를 아예 꺼버리고 천천히 고갯길을 좌우로 돌고 돌아 올라간다. 역시 메밀꽃은 달빛에 봐야 제격이지. 그럼. 전깃불이 대체 무얼 제대로 비추겠어. 완만한 고개의 중턱에서 허 씨는 나귀 한 마리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는 두 사람을 만난다.

“이게 누구야? 동이 아닌가?

“아이고, 선달님?”

“돈이고 물건이고 다 털리니 애비는 보이지도 않냐!”

“……안 보이긴 왜 안 보여요. 이 환한 달밤에.”

바람이 고개를 넘어온다. 나귀의 방울소리가 서늘하다. 보름달이 뜬 밤은 역시 걸어야 제격이다. 고개 중턱에다 한 세월 동고동락했던 낡은 승합차까지 버렸지만 동이의 마음은 도리어 편안하다. 대체 얼마 만에 세 사람이 함께 걸어보는 걸까 생각하니 아득하다. 고개를 넘어온 바람이 시린 달빛과 섞여 메밀꽃을 흔든다. 그때마다 눈가루 날리듯 꽃잎이 떨어진다. 방울소리가 요령처럼 딸랑거린다. 나귀의 고삐를 잡은 동이가 허 생원에게 묻는다.

“아버지, 인생이 뭔가요?”

“뭐긴. 장 보러 왔다가 장 보고 가는 거지.”《문장 웹진/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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