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에 이르러 꽃은 왜 환하게 피어 있는가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저물녘에 이르러 꽃은 왜 환하게 피어 있는가

─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홍기돈

 

 

 

 

 

  찍이 카뮈는 인간을 ‘부조리한 존재’로 파악한 바 있다. 어째서 인간이 부조리하다는 말인가. 그 자신이 결국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든, 지위든, 명예든 평생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것임을 인간은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며, 삶 속에서 부ㆍ지위ㆍ명예 따위를 추구해 나가는 것일까. 다 부질없는 짓 아닌가. 이렇게 보자면,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허물어질 모래성을 온 정성을 다해 쌓아올리는 어린아이의 한나절 장난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종환의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2011)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집이다. 제목이 함의하는 바는 「시인의 말」의 다음 부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지금 내 나이를 하루의 시간에다 견주면 몇 시쯤 와 있는 걸까요. 세 시를 지나 다섯 시까지 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제 저무는 시간만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삶의 저무는 시간을 언급하고 있으나, 기실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를 펼쳐 보면 도처에 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꽃밭」)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시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다. 시집에는 「첫 매화」, 「못난 꽃」 등 꽃이 등장하는 시편이 모두 14편 수록되어 있다.

  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까닭은 몇 편의 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꽃밭」에 따르면, 시인이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으며, 시인이 고향을 떠난 뒤에도 그 꽃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시인이 꽃밭을 거의 생득적인 수준에서 끌어안은 셈이니 꽃의 빈번한 등장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에서 꽃은 마치 거울처럼 성찰의 매개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한 송이 꽃」). 그래서인가, 시인이 피워낸 꽃은 향기도, 빛깔도 쉬이 사라지는 법 없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라일락꽃」 3연). 상처가 꽃을 피우는 힘이라도 되는 양 시인은 “섬진강 매화나무도 상심한 나무들이 한 열흘씩 먼저 꽃 피웁니다”(「첫 매화」)라고 표현해 두기도 하였다.

  무는 시간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종환은 이처럼 자꾸 꽃을 피워낸다. 그로서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세계의 표상이 바로 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종 고개 들어 바라보는 하늘과 별들은 나의 신입니다 자연이 나의 신이요 나무들은 나의 신전이고 숲은 대성당입니다”(「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신」)의 신, 신전, 대성당 등이 꽃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상처를 간직한 모든 존재가 꽃으로 표현되는 까닭도 절대성 안에 깃들 때 비로소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어서일 터. 이즈음에 이르면 인간과 꽃의 세계(자연)를 주체와 대상으로 파악하는 근대적인 관점은 지워져 버리며, 대신 자연 안에서 자연의 분신(分身)으로서 자연에 끊임없이 다가서고 있는 시인의 면모가 조금씩 떠오르게 된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유화」 2연)라고 읊은 김소월이 근대로 돌입하는 시점에서 자연과의 거리 ‘저만치’를 토로했다면, 이제 도종환은 그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면서 꽃의 세계와 자신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바깥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란 그러한 경계 허물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통 운명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마련할 수 있는 것이리라.

  간은 과연 부조리한 존재일까. 아니, 부ㆍ지위ㆍ명예 따위 결과물의 행방에 아랑곳하지 않고 “값진 것은 과정일 뿐”(「쏭바」)이라는 경지에 이르면 대답은 달라진다. 꽃(자연)과 더불어 깊어지는 지평으로 나아간 마당에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존재의 전회(轉回)란 이러한 순간을 가리킨다. 자, 보라. 도종환은 전회의 길을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누구도 살아서 완성을 이루는 이 없습니다/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미진선의 길입니다”(「새벽 초당」).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는 꽃밭을 향해 깊고 멀리 팬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떤 어둠도 이를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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