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친교

 

식탁친교

 

이양구

 

 

 

 

 

허름한 아파트.

거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어지럽다.

안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다.

화장실 문은 닫혀 있다.

TV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소파.

소파 앞에는 탁자.

입식 부엌이 보인다.

가스레인지에 냄비 하나.

 

베란다로 통하는 창에는 커튼이 쳐 있다.

 

무대 위에 정적 한동안.

 

남자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초등학교 사학년쯤으로 보인다.

오래 빨지 않은 티가 나는 옷을 입었다.

 

 

아이   학교 다녀왔습니다.

 

아이,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식탁으로 간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를 열어본다.

상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아이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 같다.

 

아이   또 콩나물국이야?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에서도 반찬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나 아이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 같다.

아이는 반찬을 식탁에 꺼내놓는다.

김치, 콩자반, 김… 모두 썩어서 곰팡이가 피었다.

밥도 한 그릇 푼다.

식탁에 앉는다.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맛있게 먹는다.

꼭꼭 씹어서 먹는다.

 

안방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아이   엄마. 전화 왔어.

 

아무도 받지 않는다.

 

아이 다시 한 숟가락 퍼 먹으려다가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아이   엄마. 전화 왔다니까.

 

아이,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휴대폰을 가지고 나온다.

휴대폰을 TV 앞 탁자 위에 둔다.

TV에 엄마의 지갑이 놓여있다.

 

아이 지갑을 열어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만원을 꺼낸다.

도로 집어넣는다.

식탁으로 간다.

 

밥을 한 숟가락 퍼 먹는다.

꼭꼭 씹어서 먹는다.

 

아이 지갑 쪽으로 눈이 간다.

다시 한 숟가락 퍼 먹는다.

꼭꼭 씹어 먹는다.

밥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지갑 쪽으로 간다.

만원을 꺼낸다.

 

아이   엄마. 나 자장면 한 그릇 시켜 먹는다. (사이) 응?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이   시켜 먹는다.

 

아이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아이   여기 성산 41-2번지 3통 2반인데요… 자장면 한 그릇 배달해 주세요. 한 그릇은 안돼요? (사이. 만원을 본다.) 그럼. 두 그릇 갖다 주세요.

 

전화를 끊는다.

 

아이   엄마. 두 그릇 시켰다.

 

아이 식탁으로 가서 반찬통의 뚜껑을 닫고 냉장고 속에 넣는다.

밥은 도로 솥에 넣는다.

 

아이 식탁 밑으로 들어간다.

식탁 밑에는 이불이 깔려있다.

아이는 밤이 되면 그곳에서 잠을 잔다.

아이 식탁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거실 쪽을 응시한다.

 

정적.

 

초인종이 울린다.

아이 현관을 본다.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아이 현관으로 간다.

 

아이   누구세요?

 

문이 열린다.

양복을 입은 사내가 급히 들어온다.

언뜻 보아도 조직 폭력배다.

그는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들어온다.

 

사내   아빠. 어디 있어?

아이   누구세요?

 

아이 거의 무표정하게 사내의 눈을 보고 있다.

 

사내   아빠. 어디 있냐구? 엄마는?

 

아이 식탁 밑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식탁 밑에서 사내의 눈을 응시한다.

 

사내   사람 말이 안 들려?

 

사이

 

아이   엄마.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어.

 

사내 안방에 들어가 본다.

아무도 없다.

다시 거실로 나온다.

 

사내   엄마가 어디 있어?

아이   엄마. 어떤 아저씨가 엄마 찾는다.

 

사내 갸우뚱해서 아이의 눈을 본다.

 

사내   (부드러운 목소리) 너… 이름이 뭐니?

 

아이, 물끄러미 사내를 본다.

사내 식탁쪽으로 다가가서 부드럽게 묻는다.

 

사내   이름이 뭐니?

 

아이, 여전히 텅 빈 눈동자.

 

사내   아빠를 만나려고 하는데… 아빠가 자꾸 전화를 안 받아서 집으로 찾아왔어요.

 

아이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본다.

 

사내   이름 멋있다.

아이   …….

사내   아빠… 집에 없어?

 

사내 다시 한 번 안방을 뒤져본다.

아무도 없다.

다시 나온다.

 

사내   엄마는?

아이   …….

사내   일 나가셨니?

아이   엄마. 찾는다니까.

 

사내, 아이를 본다.

아이, 사내의 눈을 본다.

 

사내, 소파로 와서 앉는다.

TV를 켠다.

채널을 바꾼다.

 

사내   (전화를 걸어서) 형님. 없습니다. 기다릴까요? (사이) ……네.

 

사내, 전화기의 카메라 기능을 실행한다.

아이에게 다가간다.

 

사내   사진 한 장 찍을래?

 

아이 여전히 무표정한 눈동자.

사내, 아이의 얼굴 가까이에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사내   웃어봐. 응?

 

아이, 무표정.

 

 사내, 사진을 찍는다.

 

사내   사진 찍을 땐 웃는 거야. 아빠한테 보낼 사진인데.

 

사내, 아이를 밀쳐버린다.

사내, 아이의 사진을 아이의 아빠 휴대폰으로 전송한다.

다시 소파로 가서 앉는다.

TV를 본다.

아이, 다시 제자리에 앉아서 남자의 눈을 응시한다.

 

사내   뭘 봐. 재수 없게.

아이   ……,

 

사내 냉장고로 간다.

 

사내   물 좀 있냐?

 

냉장고 문을 연다.

 

사내   뭐야, 이거.

아이   …….

사내   냄새가…….

 

사내 반찬통 하나를 열어본다.

 

사내   도대체 집안 꼬라지가… 아후, 다 썩었네. 이 새끼들 도대체 뭘 먹고 사는 거야?

아이   …….

 

사내 아이 엄마의 지갑에 눈이 간다.

지갑쪽으로 간다.

 

사내   뭐야, 이건. (사이) 엄마도 집 나갔냐?

 

사내 얼굴을 찌푸린다. 생각에 잠긴다.

다시 냉장고로 온다.

 

사내   (갑자기 토가 나온다.) 윽, 윽…….

 

사내 화장실로 달려간다.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

사내 화장실에서 뛰쳐나온다.

 

사내   (급하게 전화를 건다.) 혀, 혀, 형님…….

아이   …….

사내   화, 화, 화장실에…… 애 엄마가 목을 맸습니다.

 

화장실 문이 열린 사이로, 목을 맨 아이의 어머니가 보인다.

죽은 지 꽤 오래 되었는지 썩어가고 있다.

 

사내   어, 어, 어떻게 하죠?

 

사내 토한다.

 

사내   알겠습니다.

 

사내 도망치듯 나가려는데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멈춘다.

다시 나가려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사내   …….

아이   …….

 

다시 초인종 소리.

 

사내 현관 옆벽으로 바싹 붙는다.

문이 열리고 고등학교 삼학년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자장면 철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소년   자장면 왔습니다. (아이를 보고) 오늘도 혼자야? 엄마는?

 

소년, 자장면을 탁자 위에 놓는다.

자장면 두 그릇과 군만두.

 

소년   군만두는 내가 주방장한테 말해서 서비스로 갖고 왔다.

아이   …….

소년   야, 안 먹어?

아이   …….

소년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아이   …….

 

아이의 눈은 벽에 붙은 사내의 눈을 보고 있다.

소년, 아이의 눈길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다.

사내를 본다.

 

소년, 순간 자장면 가방을 그에게 던지고 화장실로 도망친다.

문을 건다.

 

정적

 

비명소리가 들린다.

소년 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바깥에 사내가 서 있다.

소년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건다.

 

사내 화장실 문앞에서 왔다갔다 한다.

빠르게 생각한다.

 

사내 현관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온다.

 

사내   씨발…….

 

사내 화장실 문을 두어 번 세게 찬다.

화장실 문이 부서진다.

 

사내 화장실로 들어간다.

사내 소년의 휴대폰을 뺏어서 화장실 밖으로 던진다.

 

소년   (반항) 놔, 놔, 개새끼야…… 이거 놔.

 

사내가 소년의 목을 조른다.

 

소년의 컥컥 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정적.

 

사내, 발걸음을 휘청거리며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씽크대로 가서 토한다.

손과 얼굴을 씻는다.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사내와 아이 서로 눈을 마주본다.

 

사내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사내 넥타이를 푼다.

아이에게 간다.

아이의 목을 조른다.

 

아이가 죽는다.

 

사내 소파로 와서 앉는다.

TV를 켠다.

 

한동안 멍하니 TV를 본다.

 

전화벨이 울린다.

사내 물끄러미 휴대폰을 바라본다.

전화를 받는다.

 

사내   네, 형님. 애 아빠를 찾았다고요? ……죽었어요? (사이) 애 엄마요? ……아직 안 들어왔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누가 죽어요? 애요? ……밥 먹고 있어요. 자 장면을 시켰어요. 두 그릇요. 저도 자장면을 좋아해요. 형님도 좋아하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자장면. 어릴 때. 육백원 할 때부터. 형님도 한 그릇 시켜드릴까요? 여 기 자장면 배달하는 애가 있으니까. 네? 아뇨. 안 미쳤어요. 그냥 자장면이 한 그 릇 먹고 싶어서요. 아뇨. 시켰어요. 자장면 여기 있어요.

 

사내, 전화를 끊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사내 받지 않는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사내 받지 않는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사내 받지 않는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전화벨이 울리고 다시 끊어지고……

 

사내는 잠속으로 빠져든다.

서서히 밤이 온다.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린다.

사방이 캄캄해지고 TV 화면만이 방안에 빛을 비추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들어온다.

옷에 핏자국이 흥건하다.

그는 피자와 치킨을 사들고 왔다.

 

남자, 집으로 들어와서 식탁으로 간다.

피자와 치킨을 놓는다.

 

남자   아빠, 왔다. 여보, 나왔어.

 

남자 불을 켠다.

식탁 밑에 죽은 아이가 누워 있다.

남자 아이를 깨운다.

 

남자   그만 일어나. 아빠가 피자 사왔다. 치킨도 먹어.

 

아이가 일어나서 눈을 부빈다.

 

남자   배 안 고파?

아이   배고파.

 

아이 식탁으로 가서 피자를 풀어서 한 조각 먹기 시작한다.

 

남자 화장실로 간다.

 

남자   여보. 피자 먹어.

 

여자 썩은 모습 그대로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여자   목 막혀. 물하고 같이 먹어.

 

여자 눈을 부비며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낸다.

아이에게 한 컵 따라준다.

식탁 앞에 아이와 마주 앉아서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본다.

 

여자   맛있어?

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썩은 얼굴에 환한 웃음.

화장실에서 소년이 눈을 부비며 나온다.

 

소년   그릇 갖다 줘야 되는데.

남자   천천히 먹고 가.

아이   이거.

 

소년 아이가 내민 피자 한 조각을 먹는다.

 

소년   저 아저씨는…….

여자   가서 깨워드려.

 

소년 소파로 와서 사내를 깨운다.

 

소년   일어나세요.

 

사내 눈을 부비고 일어난다.

눈앞의 풍경이 이상하다.

그러나 그는 이 풍경이 왜 그런지 편안하다.

 

소년   피자 드세요.

 

사내, 소년이 내민 피자 한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년 이상하다는 듯이 물러나서 여자에게 간다.

 

여자 피자를 들고 다가와서 사내에게 말한다.

 

여자   먹어. 너 피자 좋아하잖아.

 

사내 갑자기 눈물이 난다.

 

여자   왜 울어?

사내   …….

여자   응?

사내   모르겠어요.

 

사내 그 자리에서 그냥 무엇이 서러운지 계속 운다.

소리 없이 눈물만. 오랫동안.

 

여자   이제 그만 울고. 먹어. 얼른.

사내   네…….

 

사내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먹는다.

 

아이   맛있어?

사내   으응…….

 

사내 웃는다.

 

남자   다 같이 먹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다 같이 피자며, 치킨이며 먹기 시작한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정적.

 

문이 열리고 사내의 두목(주먹)이 들어온다.

 

사내   (반갑게) 형님.

 

정적

 

주먹, 그 자리에 서 있다.

 

남자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주먹   정전이다.

 

소년, 커튼을 친다.

바깥은 캄캄한 어둠.

 

사내   언제 정전이 된 거죠?

주먹   모르겠다. 너랑 전화가 끊어진 뒤로 갑자기 정전이 됐다.

사내   그럼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주먹   모르겠다. 며칠은 지난 것 같은데 해도 뜨지 않았어.

사내   그럼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주먹   모르겠다. 커튼틈으로 빛이 조금 보였다.

남자   아무튼 앉으시오.

소년   와서 한 조각 드세요.

아이   얼른 앉아요.

여자   그래. 너두 와서 먹어. 배고플텐데.

 

주먹 그 자리에 서 있다.

 

여자   얼른 와서 먹어라.

주먹   사람들이 이리로 올 거요.

여자   괜찮다. 곧 해가 뜨겠지. 그때까지는 여기 있는 것들 먹고 한 숨 푹 쉬어라.

남자   그래. 어서 와서 앉아.

사내   그래요, 형님. 여기까지 오느라 고단하실 텐데.

소년   와서 앉으세요.

아이   얼른!

주먹   나는 죄인이다. 너희들을 죽였다.

 

아이가 웃으며 피자 한 조각을 내민다. 여자가 받아서 주먹에게 준다.

 

여자   먹어. 얼른. 엄마가 주는 거야. 너두 먹어야지.

 

주먹 피자 한 조각을 먹는다.

사람들 다 같이 먹는다.

—막.

 

《문장웹진 12월호》

 

 

 

창작 노트
  
 
 
원수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살면서 요즘 고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꽤 오래 전에 우리 집에 다녀간 조직폭력배들. 내 마음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그 사람들 무슨 마음의 상처가 있었기에 그렇게 살았을까. 자장면 한 그릇 시켜서 먹으라고 그들에게 주고 싶다. 그러나 다시 마주하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풋,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시간 누군가 내가 사는 동안 당신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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