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백일몽

 

호수의 백일몽




김이듬




지금 나는 여태껏 보아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늙고 커다랗고 비만한 남자와 마주앉아 있다. 그는 어두침침한 실내의 다다미 위에 입을 반쯤 벌린 채 거의 20년을 그대로 앉아있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흰 머리 위쪽에 달린 거무스름한 선반 위에는 국수 그릇과 성경, 담배와 나이프와 마스크, 알록달록한 약병 따위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넘어진 우스타소스병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가 죽음에 가까운 음울한 사람의 얼굴 위로 흘러내리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처음으로 이곳에 왔던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가 훨씬 더 뚱뚱해졌고 말수가 적어진 것 정도다. 역겨운 냄새가 퍼지고 모차르트의 C장조 푸가 K. 394가 울려 퍼지던 게스트하우스. 미치지 않았다면 누가 그토록 미끄러운 언덕을 따라 올라와 오두막집의 삐걱거리는 문을 두드렸을 것인가? 그때도 그는 100살은 족히 넘어보였고 몸무게는 150킬로그램을 왔다 갔다 할 것은 확실했고, 만약 제대로 일어선다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파스타를 말아서 그의 입에 넣어주었을 때 쥐들이 찍찍거렸다. 달빛이 스며들어도 어두운 집안에는 시원찮은 난로와 새끼 쥐와 우리들의 하얀 입김이 엉망진창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자세히 봐도 미남형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웃을 때마다 쥐꼬리 같은 주름살이 늘어났지만, 그가 꾀죄죄한 손님 때문에 붙박이 욕조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데우느라 죽은 육체를 옮기듯 움직이는 걸 보며 쓰윽 내 입 꼬리는 끝없이 올라갔었다.

그와 헤어져 눈 덮인 언덕을 내려오는 내내 난 펑펑 울었다. 열차 검표원에게 표를 내밀며 눈물을 닦았고 이후로 내 뺨은 한 번도 젖지 않았다. 악의로 가득한 미소를 띤 채 어깨를 몇 번 으쓱했을 뿐인데 나는 일 년 후로 되돌아왔다. 지금 그는 산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 보시죠! 발부리산이라는 지명은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그는 조용히 오랫동안 나를 쳐다본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처럼 뒤틀린 얼굴이 벼루 색으로 변해간다. 지난해에도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태풍의 이름이라고 우기며 예술과 분리될 수 없는 천체의 정의로움에 대해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결코 그런 태풍은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벌레를 쫓는다. 사지를 뻗고 방바닥에 눕는다. 머리카락이 언제 젖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살핀다. 창밖으로 바위모양의 구름이 흘러가고 새에서 코끼리로 변하고 있는 바위 옆에는 큰 나무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를 보러 떠나야지. 그러나 발부리산은 어디 있는가? 그가 간 적은 없지만 줄곧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는 그 산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나 하는가?

변두리, 호수가 보이는 언덕, 오두막에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어둠이 다가오는 저녁, 노인은 잠들고 난 내가 갈망하고 호소했던 것들로부터 튕겨 나와 나의 피난처로부터 쫓겨나 내가 거부했던 것에 대해 생각한다.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의미들을 캐는 이 우둔한 머리여! 사라지는 것, 도주하는 것들에의 편애여!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모차르트는 너무 오래 살았다.’고 중얼거리는 밤. 겨울 한 철은 극권 너머 어둡고 어두운 땅에서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피아노 연주자의 최후를 떠올리느라 내 마음은 온통 휘저어 놓은 호수처럼 황홀경에 빠진다.

“곧 할 수 없다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거라네. 그리곤 다른 것을 선택하겠지.” 깊은 밤의 간이침대 위로 두꺼운 손목이 올라온다. 그의 손은 피아노 뚜껑을 연다. 어김없이 손가락의 떨림으로 건반의 울림을 보존한다. 내 관절의 단단함을, 그 느낌이나 음향이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눈을 감고 극도로 예민한 손놀림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를 본다. 다시 울 수 있을까? 내년이 왔을 때 그는 더 이상 여기 없을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손끝으로 스치는 정도의 접촉으로 우리는 평생토록 우정을 나눠버리는 게 아닌가.

엉겨 붙은 머리칼을 자른다. 턱수염은 그대로 두고 얼굴을 닦아준다. 내가 그의 두껍고 지저분한 발에 구멍 난 양말을 신길 때에도 그는 팔짱을 낀 채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양모스웨터를 입히고 가죽장갑을 끼우고 그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온다. 그는 내 어깨를 나무판자처럼 의지하고 눈발 속의 파도 위를 표류하는 사람 같다. 우리는 발부리산을 향해 가는지 모른다. 그의 흐릿한 눈은 기쁨으로 과도하게 일그러지고 침이 흐르는 입술을 벌렸다 오므렸다하지만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수리에 들어간 지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소식이 없는 그의 피아노처럼. 그가 두 발짝 걷고는 꽝 하고 넘어진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겠어요?” 나는 그의 배 위에 올라탄다. 나는 잔인한 미소를 띤 채 마치 세계가 여기서 시작되거나 멈출 수 있다는 듯 그를 어루만진다. 가슴을 축으로 완전한 소용돌이가 그려질 것이다. 우리는 몸을 운전해서 언덕을 내려간다. 공포를 통과한다. 우회를 통해 정수에 도달할 것이다.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는 보호 기어도 변속 장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언덕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되며 마찰할 수밖에. 다 내려왔을 쯤엔 어지러운 변주가 끝나고 나선으로 빙글빙글 돌던 몸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몸이 마음보다 더 빨리 지각하고 도착하고 싶다면 그곳을 보아야한다. 그가 여기서 멈추었기 때문에 여기 특별할 것 없는 호숫가는 특별한 곳이 된다.

혀끝에 맴도는 그의 이름, 추월하려다 당한 교통사고로 완전히 뒤틀려 참혹하게 아름다운 얼굴. 처음엔 병균이 옮을까봐 악수도 할 수 없었지. 노래하거나 연주하지 않게 된 후 음악을 찾았다고 말하는 한물간 피아니스트는 막무가내다. 나를 바오밥도 아닌 이상하게 생긴 나무 앞에 세워두고 한 컷의 사진을 찍는다. 이윽고 내 손을 감싸 쥔 채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간다. 우리는 몇 개의 물구덩이를 지난다. 나는 지쳐 털썩 주저앉는다. 길게 엎드린다. 나는 팔을 뻗어 물 아래 매달아놓은 쇠사슬을 끌어올린다. 쇠사슬 끝에서 얼굴을 감싸 쥔 채 얼어붙은 소녀가 끌려 올라온다. "네 발 아래서 암살이 이뤄졌고 부드러운 과실들이 다 썩었어. 발부리를 조심해." 맙소사, 내가 캄캄한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미명 속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노인과 소녀는? 내 나무와 주먹과 사슬은 어디로 갔나? 여행 중의 침상에서도 떨칠 수 없는 시공간이 어긋난 느낌. 얇은 얼음장에 귀를 대고 웅크린다. 겁먹은 쥐들은 찍찍거리고 노인의 기침소리, 문짝이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비밀스럽고 가운데가 엉켜 붙은 두 눈이 뚫어져라 나를 본다. 나는 목덜미에서 무릎까지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에 휩싸인다. 산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진동, 언제까지 이 불연속의 의미 없는 우연은 지속될 것인가?《문장 웹진/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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