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스컹크!

 

오, 스컹크!




심보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겨울에 사랑에 빠지고 겨울에 이별하곤 했다. 엄살조로 말하자면, 겨울이란 내게 '시간의 시간성'을 고통스럽게 일깨워 주는 계절이었다. 이별이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만남이라면 시간이 영원히 정지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겨울의 시간은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빨리 내 의지를 거슬러 흘러가며 마음의 기슭에 뚜렷한 손톱자국들을 새겨 넣었다. 나는 겨울에 어설픈 운명론자가 되곤 했다. 폭설이 내릴 때, 나는 세계가 지워지고 있다는 절망감과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는 기대감에 뒤섞여 창밖을 바라보곤 하였다. 나와 무관하게 변화하는 세계의 색조와 무게와 결 앞에서 깜박깜박 점멸하며 절감하던 '어찌할 수 없음'. 그리고 가장 밝고 가볍고 부드러운 세계의 일부로 나타났다가 가장 어둡고 무겁고 날카로운 세계의 일부로 사라지던 그대.

 

 


나는 겨울에 집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온종일 거리를 쏘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물론 시간보다 더 빨리 낭비되는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다. 그해 겨울, 유학생이던 나는 뉴욕에서 소진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이별을 겪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학위논문이라는, 그때까지 인생에서 그나마 가장 중요한 노동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나는 제 몸에서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조금씩 물속으로 가라앉는 물오리처럼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그러나 절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스턴의 캠브리지에서 유학중이던 절친한 후배가 보다 못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형,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말고 나랑 지내면서 논문에 전념하시죠." 후배의 말에 나는 군말 없이 짐을 쌌다.


캠브리지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렌트카에서 내려 후배 집으로 향할 때, 이민가방의 돌돌거리는 바퀴소리는 낯선 밤거리의 침묵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뭔가가 잰걸음으로 눈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새까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두 줄의 선명한 흰색을 보고 나는 그것이 스컹크임을 직감했다. 나는 후배에게 "오, 스컹크!"하고 외쳤지만, 후배는 "여기 다람쥐가 좀 뚱뚱해요. 별거 아닌 거에 뭘 그리 흥분하세요."라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캠브리지에서의 첫날 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목격한 스컹크를 그려 보려 애썼다. 그러나 눈앞에는 두 줄기의 선만이 희뿌옇게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자고 있는 후배를 깨워 "아까 그거 스컹크가 분명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날 밤 꿈에선, 스컹크의 등으로부터 뻗어 나온 두 줄기의 하얀 선이 하염없이 어딘가를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캠브리지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또 다른 거대하고 적막한 도시로. 그날 밤 나는 어떤 지독한 냄새의 길로 연결된 기이한 세계를 상상하며 깜박깜박 점멸하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캠브리지에서의 생활은 단순했다. 논문쓰기, TV시청, 독서. 가끔 극장에 가고 외식을 했다. 유일한 소일거리는 사진이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오븐 속의 채 익지 않은 닭, 나뭇가지 사이로 얼보이는 달, 밤길에 담뱃불을 붙이느라 잠시 환해진 후배의 얼굴 등의 사소하고 친근한 대상들이 피사체가 돼 주었다.


사진이란 뭐랄까. 사물이 꿈이 되고 꿈이 사물이 되는 순간,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그 사이에서 깜박깜박 점멸하는 순간의 기록 같은 것이다. 위의 사진은 그러한 사진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해 겨울 캠브리지에 첫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우리는 나름 감격에 젖어 외출을 감행했는데 때마침 집 앞에 누군가 버린 구식 TV가 놓여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TV 위에는 어느새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순백의 눈은 마치 수의(壽衣) 같았다. 그것은 TV가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식인 동시에 어떤 초연하고도 아늑한 분위기로 TV를 감싸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전파와 단절됐지만 우연이라는 시간의 비밀스런 채널을 타고 전송되는 저 TV의 사후(死後)의 영상은 참으로 신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진 찍기와 논문쓰기를 번갈아가며 그해 겨울을 캠브리지에서 보냈다. 사진은 나를 치유해줬고 논문은 나를 살게 해줬다. 그리고 봄이 채 시작되기 전에 나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두 달 가량의 집중적인 노동은 성과가 있었다. 논문 쓰기는 그 시기 동안 탄력을 받았고 1년 후 나는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뉴욕으로 돌아올 즈음 나는 스컹크와 다시 조우할 기회를 가졌다. 어느 날 밤 우리는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쓰레기 봉지에 고개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뭔가를 훔쳐 먹고 있는 녀석을 보았다. 등줄기에는 예의 그 흰 선이 뚜렷했다. "오, 스컹크!" 과연 스컹크였다. 후배는 적잖이 흥분한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어, 정말, 그러네요." 스컹크는 예상치 않은 소란에 당황한 듯 총총히 자리를 떴다. 나는 괜한 장난기로 녀석을 좇아갔다. 내가 가까워지면 녀석은 멈춰 서서 꼬리를 세웠다. 나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그 악명 높은 방귀 세례를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녀석은 다시 달아나고, 나는 다시 좇아가고, 꼬리 세우고, 뒤로 물러나고. 이러기를 몇 차례, 결국 녀석은 제 갈 길을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나는 생각했다. 만약 스컹크를 계속 좇아갔다면 앨리스나 도로시처럼 이상한 나라를 방문하게 됐을까? 거기서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거기선 내가 스컹크만큼 지독한 방귀를 뿡뿡 뀌어대도 그녀는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실은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 꿈이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문장 웹진/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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