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인터넷

 

권지예(소설가)


Q 인터넷 소설 등 인터넷을 통한 일반 대중의 글(文)에 대한 욕구의 분출이 아주 높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면에 버금가게 긍정적인 점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있는 것 같다. 선생께서도, 인터넷의 출현을 반기든 그렇지 않든, 생활의 필요 혹은 불가피한 상황 하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시리라 생각하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또 작품을 창작할 때나 기타 다른 글을 쓰게 될 때 인터넷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인터넷을 활용하는 범위나 인터넷을 통한 독자들의 반응 같은 것도 염두에 두는지? 이 점에 대해서 기술해주고,  덧붙여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인터넷에 대한 생각을 포함해도 좋을 듯싶다.


컴맹 시절


A 내가 컴맹에서 벗어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하긴 나는 여태 컴퓨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으니 컴도사들이 볼 때는 아직도 나는 컴맹인지 모른다. 그래도 어쨌거나 나는 컴퓨터를 두드리고 인터넷 서핑 시간이 일반인보다 많은 편이니 내 딴에는 컴맹이 아니라고 악착같이 우기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나는 몇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독수리타법의 달인(?)이다. 사람들은 그런 요상한 손놀림으로도 펑크 내지 않고 적지 않은 소설을 써대니 신기한가 보다. 아니다. 제법 소설을 많이 썼을 텐데도 아직도 독수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나의 아둔함이 이해가 안 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리게 쳐대서 무슨 능률이 있냐고 걱정해준다. 하지만 아무 불편 없다. 내가 타자수도 아니고, 인용문이 많은 논문을 쓰는 학자도 아니고 나는 내 생각의 흐름만큼 딱 그 정도의 속도만큼,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하지 않다.


습작 시절엔 노트에 깨알같이 썼다. 원고지에 바로 쓰면 왜 그리 파지가 많이 나던지. 그러다 처음으로 컴퓨터의 워드를 사용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96년이었다. 프랑스에서 살 때 남편이 쓰던 고물 노트북을 물려받았다. 장난감 삼아 볼펜 끝으로 습작소설을 한 자 한 자 십자수 놓듯 입력했다. 거의 보름이 걸려 단편 한 편을 저장했다. 겨우 알고 있는 컴퓨터의 몇 가지 기능만 숙지하고도 나는 내가 굉장히 유능한 작가가 된 것처럼 뿌듯했다. 겨우 워드 사용을 가지고 그 정도였으니 정보화가 상대적으로 미개한 프랑스에서 2000년도에 한국에 돌아와 겪게 된 인터넷 세상은 내 작가생활에 쿠데타나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 대한 애증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인터넷이 있어 참 좋다. 한마디로 참 든든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작가가 못되는 편이다. 발품을 팔아 글을 써야만 한다면 나는 소설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인터넷은 내 발이 되어주고 내 눈이 되어주었다. 인터넷 세상엔 없는 게 없다.

소설을 쓸 때 구상단계에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엿본다. 만약 현실세계에서 소설쓰기를 목적으로 사람들을 취재한답시고 그들 앞에서 수첩을 꺼내 들고 캐묻고 한다면, 그리 사교적이지 못하고 마음이 여린 내게는 얼마나 고문일 것인가. 나는 남 앞에서 내가 소설가연하는 게 무척 쑥스럽다. 구상이 되어 머릿속에서 소설의 모양새가 그려지면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중에 지식 검색은 물론, 사용하는 단어를 확인하는 것도 인터넷이다. 두꺼운 종이 사전도 갖고 있지만 언제부턴가는 인터넷 사전을 검색한다.


궁금증이 이는 사안이 있으면 지식 검색에 올려놓고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이 완성되면 간혹 모니터링을 위해 친구나 독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첨부파일로 보내기도 한다.

발표된 소설이나 출간된 책의 반응 또한 온라인서점 사이트의 독자 서평이나 모 문학 사이트에 마련된 내 방 게시판에서 확인한다. 그리고 요즘은 개인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 소설의 문구들이나 반응들을 통해서 그들의 문학적 트렌드도 감지한다.


그러나 작가적 자격지심으로 인터넷에 대한 거부 반응도 없지 않다. 대부분 보통 사람들, 특히 아직 세상사와 인생에 대해 그리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취향과 감각이 주름 잡고 세를 이루는 곳이 또한 인터넷 세상이다. 진지하고 머리 아픈 것보다 가볍고 간단하고 빠른 것이 판치는 것이 바로 또 그 세상이다. 문화의 수준이 하향되고 있다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격조 높은 문향이 배인 책보다는 감각적이고 이미지가 승한 모니터상의 글들이 패스트푸드처럼 독자들의 입맛을 버려놓는 것 같아서다.


인터넷에 의해 바뀌는 것들


이제 인터넷은 커다란 권력이 되어버렸다. 대통령도 뽑을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이고 하루아침에 스타도 영웅도 만들어내는 것이 인터넷이고 멀쩡한 사람을 폐인을 만드는 것도 인터넷이다. 사시미 칼보다도 더 무서운, 얼굴 없는 세치 혀가 무차별적으로 난무하여 독설과 개인적 분노의 배설장이 되는 곳도 그곳이다. 어쩌다 간혹 그런 누리꾼들의 글을 읽을 때가 있다. 분노가 확 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덤덤해졌다. 분노할 가치가 있는 것만 분노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내가 사냥할 것만 정확히 총을 겨눠 취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나는 인터넷에 단단히 중독된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 큰맘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아무 생각 없이 방황할 때가 많다. 그저 심심해서, 작업 전에 워밍업으로 또는 습관상, 핑계는 이것저것 대지만 인터넷이 깔려 있는 컴퓨터가 오히려 글쓰는 작업을 방해할 때가 더 많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작년에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리는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한국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곳 숙소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았다. 그래도 수십 명의 다른 나라 작가들은 불평이 없는 듯했다. 나를 비롯한 또 다른 한국 작가와 몇 작가들이 불평을 해서 결국 일주일 만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며칠간 나는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인터넷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두절된 곳에 있다는 게 무인도에 갇힌 것처럼 너무도 외롭고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것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 내가 홀로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방에 홀로 있어도 인터넷만 있다면 나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인터넷만이 나의 위안자고 동반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런 중독 증상은 핸드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끔 내 핸드폰이 가방 안에서 부르르 떠는 환상에 몸을 떨었다. 길을 가다가도 내 핸드폰 음악 벨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주머니를 마구 뒤지기도 했다. 내 핸드폰은 한국에서 얌전히 자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때 보면 내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 나를 이용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취하기는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내가 인터넷으로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내 소설을 파는 사이트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별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진 못했다. 간혹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점점 종이책의 운명을 우려하는 이때 인터넷을 통해 작가로서 성공하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젊은 인터넷 소설 작가처럼 내 체질이 바뀌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살다 죽을래, 그러기에는 살날은 많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바뀌니까 말이다.《문장 웹진/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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