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에 건다

 

그의 이름에 건다

 

 

신용목

 

 

이 참담이 아스피린처럼 스며들어 콘크리트 차가운 두께를 허무는 날이 오겠지요. 그 틈에서 외계의 빛깔처럼 돋아나는 새싹을 우리는 다시 신앙 삼을 작정입니다. 그 미학의 신통함 앞에서 하루하루 거행되는 개종의 세례는 진정 달가울 것입니다.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영원히 흔들리고 부유하는 물컹한 육신으로 저 딱딱하고 각진 세계에 실금 하나를 만드는 것.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경운기 한 대 선 추레한 마당에 촌로인 그의 친지가 브라운관에 들어왔을 때, 딱히 환호하지 않았던 내 얼굴도 뜨거운 고랑이 되었던 적. 오랫동안 통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일은 애당초 다른 마을에 살며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생각을 하는 치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로소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 그리하여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지난 통치자의 새 주소를 적고는 부끄러운 시집을 동봉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을 이장 선거에 출마해주세요”라는 실없는 인사와 함께.  

모든 미학은 좌파적이라고 믿습니다. 미학은 사람의 삶과 영혼에 입 맞추는 것. 잘린 풀들이 더 많은 향기를 지피듯 다치고 버려진 육신이 더욱 선 굵은 인간의 입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미학은 발바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는 인간의 호흡으로 먼 별자리의 더께를 닦아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의 사치일 뿐이겠지요. 콘크리트를 나르는 레미콘의 위용과 레미콘을 돌리는 자본의 연료통 위에 씌우는 페인트칠 같은 것. 우리는 세계가 미학의 꽃 한 송이를 받아주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그 꽃들이 콘크리트의 바닥 사이에서도 꽃씨를 틔울 수 있기를. 철거민의 신발을 닮은 꽃과 비정규직의 소매를 닮은 꽃과 저임금 노동자의 모자를 닮은 꽃과 독거노인의 주름을 닮은 꽃과 무엇보다도 목 아래 파란 잎새를 단 희망의 꽃말들. 그때 그가 왼손에 닳은 모종삽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한, 그는 가장 미학적인 통치자였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참담함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목숨 못지않은 산 자의 목숨으로. 과식증에 걸린 권력과 불감증에 걸린 정책들. 그 아래 용산의 꽃밭이 뭉개졌던 것처럼 수많은 꽃잎들이 하늘을 잃어버린 것을. 이제 점점 커지는 저들의 정원 바깥은 모두 절벽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더는 뛰어내려선 안 됩니다. 다만 이 콘크리트의 절벽 앞에 다시 꽃 한 송이를 던지러 가기를. 절망을 앞세우면 절망밖에 남지 않으므로. 언제나 미학은 시대를 앞서 와 불우를 감당하며 역사를 지탱해왔으므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실천의 첫 페이지에 끼우고 맹인처럼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나날이 새로운 역사를 거는 이 행군은 영원히 목적지를 배신하겠지요. 넘어진 무릎마다 앞서 떨어진 꽃들의 봄물이 스미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까맣게 타는 심지가 환하게 켜놓은 얼굴처럼. 촛불의 영혼은 눈물이지만 촛불의 운명은 희망이니까요.

이 아픈 인사를 문학나눔 사무국과 문장웹진 편집위원들도 함께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책에 따라 문학나눔 사무국의 폐지가 예고되었고 따라서 문장웹진 편집위원들도 마땅히 그간의 책임자들과 함께 자리를 비우기로 하였습니다. 접시에 국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체제를 달리하여 문학나눔사업과 문장웹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문학의 운명처럼. 그것을 이번 호의 빛나는 작품들이 또한 증명해줄 거라 믿습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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