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선우

 

 

 

달을 보았습니다. 신정도 구정도 다 지났고, 살아남았으니 또 한 살 나이를 먹었습니다. 응당 그런 것이려니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삼 그 의미를 새기게 되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일까요. 삶이란 죽음의 연속이고 죽음 역시 삶의 하나라는 말이 잔망스레 느껴질 정도로 잔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난무했던 세밑이었습니다. 한 오라기 얼굴 내민 달을 보니 지구도 참 서정적인 곳임에 분명한데,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낭만적인 상상력을 한순간에 박살냅니다. 비현실적인 것이 잘 벼린 뼈처럼 아름다운 저 달이냐, 공권력의 불길에 휩싸인 우리의 오늘이냐 자꾸만 물어보게 되는 음력 초사흘입니다. 하여 기어이,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 판에 박힌 안부인사까지 하고 맙니다.

 

2월호 <이달의 시>에 마련된 김선우, 김승일, 김은숙, 문정희, 문태준, 박미영, 이경교, 임곤택 시인의 시편들도 오늘의 안부를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는다”(이경교, 「내 이름」) 했으니, 새해에는 “마른 씨앗처럼 누운 사람에게”도 “버들 같은 새살”(문태준, 불만 때다 왔다)이 돋고, “입 하나가 욕망의 전부”인 “물의 나라”사람들처럼 “흐르며 흐르며 희희낙락에 당도”(문정희, 물의 나라)하시기를, 새날 새아침의 햇살마저 “새벽꿈에 울다 깬 목소리처럼”(박미영, Facade) 느껴지신다면 “어깨가 까무룩 어두워지기 전 냉동 저장한 햇빛을 꺼내”(김선우, 햇빛 오일―당신을 위한 마술) 녹여 바르고 다시 한 번 “꺾인 무릎을 짚고 일어”(임곤택, 거인)서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강영숙의 장편연재소설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도 어김없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살벌하지만 익숙했던 풍경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저 어린 화자의 날것 같은 시선 때문일까요. 문득 내 옆에도 ‘자이언트’가 버티고 서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달의 소설> 박진규의 국수와 원종국의 나는 달리다도 일독을 권합니다. <작가박물지>에서는 정호웅 평론가가, ‘필경 54년을 맞은 이호철 문학세계’의 큰 맥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54년이라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참 의미를 여기서 알아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박해람 시인의 <악취미들>, 김경미 시인의 <멀티미디어 낭송작>에도 가만히 눈과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이다.”

후보 시절 한 TV 토론회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젊어서일까요, 그는 자주 경험 부족을 지적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이를 먹고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고 되묻더군요. 순간,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고집만 센 한 늙은이가 떠올랐고,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면서 저는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비웃음이었겠죠. 그 웃음이 이제 나를 멈춰 세웁니다. 한 살 더 먹은 만큼 내 판단력도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자신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무엇을 경험했느냐보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해 어떤 경험들을 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요. 그 깨달음이 화인처럼 새겨져 여러분의 삶을 매일 새롭게 구성하고, 뜨겁게 추동하는 힘이 되고 있는지요?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어갑니다. 죽은 자에게도 삶이 있었고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처럼, 살아남은 자에게도 삶의 비참은 계속됩니다. 무엇을 경험했느냐보다 무엇을 배웠느냐가 더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배운 대로 우리는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대로, 우리의 삶이 내일이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부디 나의 안녕이 당신의 비참을 담보로 하지 않기를, 나의 삶이 당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초사흘 저녁입니다.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문장웹진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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