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어제는 겨울 산을 오르다 뜬금없이, 도토리의 키를 재보고 싶었습니다. 높은 구름의 시름을 바지랑대로 받쳐주고도 싶었고, 겨울 해의 기울기를 낚시대로 건져올리고도 싶었지만, 정말 도토리라고 다 고만고만하기야 할까! 기어이 도토리를 찾았습니다. 도토리들이 참나무 발치에 송글송글 흩어져 있더군요. 우리가 다 똑같다고 치부한 것들이 사실은 논리와 논증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무기력과 자포자기를 심어놓은 원인은 아닐까. 사안의 경중과 대안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그것이 그것일 뿐’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을 무력화한 것은 아닐까. 도토리를 한 움큼 쥐고 정말 도토리 키를 쟀습니다. 참 흡족하게도, 모양도 빛깔도 키도 어느 하나 같지 않았습니다. “봐라! 저 붉은 표지판처럼 도토리도 하나하나 다람쥐의 귀한 양식이란 말이다!” 소리치고 싶던 순간, 찬 손바닥 겨울바람에 뺨을 한 대 맞았습니다. 어리석어라, 자를 들고 곡식을 재려 하니 방법이 없습니다. 곡식은 되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매일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모든 사안들이 ‘균형 잡힌 시각’의 명목 아래 적당한 기준과 양비론으로 갈음되고 있습니다. ‘이러든 저러든 다 똑같다는’ 편이한 생각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존엄을 내리찍는 날들입니다. 우리는 실리와 효율 앞에 어쩔 수 없는 도구가 될 뿐이겠지요. 독재의 유령이 개발의 송환장을 보내 과거의 현장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앞뒤도 경중도 없는 시멘트반죽이 되어 빙빙 도는 레미콘의 굉음에 맞춰 어느 강물 제방에 쏟아지겠지요. 분명 강물엔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의 수심에는 숱한 모래와 자갈들이 자신의 무게를 안고,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뜰 것은 떠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가파름을 감당하며 현재가 일궈내는 역사의 무늬가 아닐는지요. 새해 시작부터 물지게를 지고 막막한 언덕을 보는 심사입니다. 그러나 막막한 언덕도 분명 ‘너머’를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저 화산 같은 첫 태양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해 첫 호를 장식하는 문장웹진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뜨거운 눈을 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들은 약속한 듯 시대의 유비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하며 젊은 문단을 이끌고 있는 박금산과 조해진의 소설도 그러하지만, 이번 호는 역시 문장웹진의 첫 장편연재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흥미 있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리는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은, 독자들로 하여금 매달 날짜를 보채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월간 연재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신 소설가 강영숙 선생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강형철, 김명철, 김왕노, 박지웅, 신미나, 이근일, 이흔복, 최금진 등 역량 있는 중견과 젊은 시인들이 새해 첫 시의 울음을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유주 소설가가 쓴 <문학의사생활> 「훔침과 감춤」은 조연호 시인의 시와 산문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주이면서 오마주를 넘어선 선율을 펼쳐 보입니다. 이제는 대학로의 아랫목이 된 이음책방의 한상준 대표가 <문화의 창>에 지핀 군불 앞에 손바닥을 펼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새해 첫날에 첫 호를 여는 유일한 매체인 문장웹진을 통해, 문학만이 드릴 수 있는 ‘가능성의 복주머니’를 여러분께 배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문장 웹진/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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