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초입에서

 

2월의 초입에서




김미정




2월을 맞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음력설을 앞두고 있으므로 2008년을 한 번 더 맞이하는 기분을 느끼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가올 음력설을 핑계 삼아 잠시 지난 연말 잡감(雜感)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2007년은 한국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사뭇 비장하게 고민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례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민족문학’에서 ‘한국문학’으로 명칭을 바꾸었던 것도, 현판을 새 것으로 바꾸는 것 이상의 상징성을 띤 사건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연말에 몇몇 주요 문예지들이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화두로 삼았던 것도 이런 맥락과 함께 놓고 보면 흥미롭습니다. ‘왜 새삼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방금 저는 흥미롭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것은 단지 ‘흥미’를 느끼는 방관자의 시선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의 문학적 관심이 이제, 혈연의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이라는 기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근대 네이션의 경계 안팎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우리 문학이 어떻게 경계, 국경의 바깥에서 소통되고 유통될 수 있을지의 문제도 함께 대두됩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원론적으로 창작의 수준을 강조하거나 번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거나, 제도적 보완책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각 나라의 문학들을 능동적으로 의식하면서 실시간 경합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히 한국문학 르네상스를 위한 고군분투 태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과 세계라고 하는 관계 설정 자체가, 예의 그 특수vs보편의 도식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이 경우 가장 흔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혹은 ‘주체화의 욕망(강박) 때문에 끊임없이 타자와의 분할선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일 것입니다.

문학은 분명 인간의 지적, 정서적, 감각적 교류형식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꺼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때, 다음과 같은 질문은 우리의 기대감을 가로막고 있는 알파와 오메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문학은 언어, 자본, 국경의 존재구속성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 문제를 이 자리에서 제가 언급할 능력은 없습니다.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르고, 영구적인 미해결 과제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족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을 사유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들이 좀더 많아지고 복잡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거창한 화두로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여러분이 지금 모니터를 통해 보고 계시는 여러 모양의 작품들 속에도 우리의 달라진 삶의 조건들, 문학의 양상들이 내밀하게 반영되고 있을 것이고, 스스로도 의식치 못해 온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면들이 조금씩 그 배경을 달리하며 전개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2월호에는 서유미, 이은조, 윤효, 정도상 소설가의 소설들과, 김소연, 김이듬, 나종영, 오봉옥, 이명윤, 이은림, 장옥관, 전동균, 정호승, 최명진 시인의 시들이 여러분과의 설레는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원균 선생께서는, 지난 호 ‘작가와 작가’에서 뵌 고은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서, ‘고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친절하면서 심도 깊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권리 소설가의 세계여행기는 이번에 중동,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종횡무진 이어집니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안고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는 소설가 조경란의 ‘조경란이 만난 사람’, 윤재철 시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멀티미디어 낭송시’도 2월을 더 풍성하게 합니다.

네이션의 언어와 자본과 국경의 감옥에서 자유로운, 그것이 설령 제약 없는 공명과 소통에 대한 백일몽에 불과할지라도, 《문장 웹진》의 2월호가 그 첫걸음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문장 웹진/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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