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오르다

 

뛰어오르다




조경란




제가 요즘 관심 있게 읽고 있는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매그넘 매그넘』이라는 사진집입니다. 한 권은 소설책이고 한 권은 사진집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지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쓴 할레드 호세이니는 카불에서 태어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한, 의사로 활동하는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들」도 그러했지만 이 소설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작가의 소설을 주목하는 것은 전란을 겪고 있는 억압당하고 소외당한 사람들, 전쟁과 기아 같은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픽션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작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은 난민국과 더불어 난민국을 돕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매그넘 매그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30년대의 정치적 격동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진가들이 창립한, 일종의 세계사진위원회 같은 기구입니다. ‘매그넘’이라는 기관이 유명해진 것은 로버트 카파라는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죽어 가는 순간의 스페인 군인을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지요. 이 회원들의 사진은 전쟁과 분쟁의 장소, 혹은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우리 인간들의 찰나를 주로 ‘르포르타주’ 기법을 이용해서 찍고 있습니다. 이것을 ‘결정적 순간’ 혹은 ‘참여하는 사진’의 수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이든 ‘매그넘’ 회원들의 사진이든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 환경은 다르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지요. 그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그것이 이들로 하여금 이처럼 용감하고 고결하며 대범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게 한 것은 아닐까요.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과 테러들, 기아, 난민, 이상기온 같은 문제들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건 새해가 시작되어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십 년 만에 정부가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우리의 일상은 지속되겠지요. 그 일상의 일부분 중, 새해에는 오직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관해 생각하는 마음을 지금보다 더 갖는다면 어떨까요. 설령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틀림없이 어떤 변화가 찾아오진 않을까요? 우리의 일상에, 우리의 예술작품에 말입니다.    


《문장 웹진》의 1월호 창작란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느낌입니다. 우선 소설란에는 김도언, 박형숙, 손홍규, 하재영 같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소설이, 그리고 강기원, 강은교, 김충규, 박철, 안효희, 여태천, 유안진, 이성부, 이현승, 최정진의 시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소설가 권리의 ‘유럽 여행기’ 연재도 1월호부터 시작됩니다. 또 오랜만에 선보이는 ‘우리 문학의 흐름’에서는 평론가 고봉준씨가 2007년 한국문학을 결산한 글이, ‘작가와 작가’에서는 김형수씨가, 국제 문학계에 가장 널리 소개되고 있는 고은 선생과 나눈 흥미로운 대담이 실렸습니다. 이밖에도 장이지 시인이 직접 낭송한 ‘멀티미디어 낭송시’와 소설가 한창훈이 전하는 ‘문학의 사생활’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월호 특집으로는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김남일, 이나미, 김중혁, 윤이형, 시인 조용미, 이원, 손택수, 길상호의 영감과 질투, 혹은 정말 자신이 쓰고 싶었으나 이미 어떤 다른 작가가 쓴 작품들에 관한 진솔한 산문들로 꾸몄습니다. 여기 실린 글 한 편 한 편, 어느 것 하나 소중한 것이 없겠으나 독자 여러분의 관심이 없다면 어쩌면 그저 정체된 에너지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요. 많은 관심 바랍니다.


『매그넘 매그넘』을 넘겨보다가 필립 할스만이라는 사진작가의 아주 흥미로운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초현실주의 미술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을 37년 동안이나 찍어 유명해진 그는, 모델을 촬영한 뒤 마지막으로 모델에게 자신의 카메라 앞에서 공중으로 훌쩍 뛰어오르라고 주문하고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치만점의 힘찬 이미지는 그의 사진이 남긴 중요한 유산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작업을 ‘점프하는 초상 연작’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살바도르 달리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뛰어오를 때의 그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얼굴과 몸의 근육들 때문인지 가면이 벗겨진 것처럼 솔직하고 진솔해 보이는군요. 사람은 순간적인 힘으로 힘차게 뛰어오를 때 중력을 이겨내기도 하겠지요. 그것을 ‘도약’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자, 2008년 무자년(戊子年) 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쑥스럽겠지만, 거울이나 카메라 앞에서 공중으로 힘차게 한번 뛰어오르면서 새해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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