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진실의 따뜻한 옷

 

겨울, 진실의 따뜻한 옷




신용목




세월은 그 처음부터 한덩어리 한무리로 흘러가고 있을 뿐, 연대와 날짜와 시간을 새긴 것은 숫자를 휘두르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겠지요. 그로부터 과거와 현재가 생겨나고 안과 밖이 구분되고 거짓과 진실이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오래 함께 살아온 땅에 밴 살내를 일러 나라라고 부를 뿐, 특정 연대와 산천을 잘라 국가를 구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광고와 선전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지 않았고, 대리점이나 상점에서 사랑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억 밑바닥에 웅크린 허기를 함께 아파하고 쓰다듬고 나누었을 뿐입니다.

내가 먼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마음의 미끄럼틀 덕분입니다. 푸줏간의 고기처럼 썰리기 전, 덩어리진 시간과 공간이 당신과 나를 그립게 하였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웅들은 다릅니다. 번호표를 달고 거리의 한쪽 벽을 차지한 저들은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어떤 말을 하고 무슨 물건을 내놓는 것일까요? 입바르게 포장한 서사가 가가호호에서 모은 표로 페이지를 엮어 허구의 책을 만든다면, 오히려 문학이 현실인가요? 가장 분명한 현실을 대변하는 정치가 가장 불분명한 인간을 이야기하는 문학과 뒤바뀌는 못된 상상.


세계는 매일 등장인물을 필요로 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채색하는 하루를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대는 세계이기도 텍스트 안이기도 합니다. 대선이 있는 2007년 마지막 달의 특집은 젊은 희곡작가들의 무대로 꾸밉니다. 「햄릿」의 후반부를 빌려와 삶의 태도에 대해 되묻고 있는 「거트루드」(배삼식)는 가정형의 상황들을 통해 필연에 의문을 던집니다. 세상의 끝에 서서 삶의 끝을 맞는 「입맞춤」(최창근)은 운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제목은 어머니, 운명과의 입맞춤을 뜻하겠지요. 「선유도」(백하룡)는 기억의 이편과 저편, 시간의 이편과 저편에 놓인 다리 너머입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사랑을 잃은 우리는 영원히 추울지도 모릅니다. 「사막」(장유정)은 막다른 공간에 도달한 모래알 같은 사람들의 사연을 아껴 펼칩니다. 그곳에도 사연과 욕망이 선인장처럼 자란다는 것을.


김하경의 소설을 오랜만에 만납니다. 「누가 죽었어요?」는 어디서부터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지, 또 남은 자의 예는 어디서부터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김병언의 「미나리꽝」은 미나리가 발 내린 진창이 피워올린 미나리향을 피워올립니다. 김숨의 「흑문조」는 묻습니다. 우리는 어떤 계단 위에 살고 있고 몇 개의 다리로 서 있으며 그것들이 지탱하는 삶은 또 어떤 모습인지. 배지영의 「몽타주」는 기억의 총체성과 분리의 허상, 곧 조각의 허상과 진실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상의 견고함을 서정의 떨림으로 허무는 또는 일상을 일상 아닌 곳으로 잡아끄는 양정자, 신달자, 한영옥, 이창기, 맹문재, 정남식, 고영, 이근화, 신정민, 김언의 시편들은 익숙한 세계에 낯선 존재론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동하 선생의 작가박물지는, 이동하와 그의 소설에 관한 평론가 신철하의 단상으로 꽉 차 있습니다. <악, 취미들>에서 김해화 시인은 꽃을 통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집니다.


이것으로 한 해 인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늘 우리를 앞지릅니다. 얼만큼의 조급함과 무기력이 일상을 미꾸라지 함지박처럼 흔들어 놓는 것을 멍하니 지킬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팔 한짝을 내놓을 각오’는 이로써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은 시침에 따라 절단되지 않으므로 세월이 희망을 공개처형할 순 없겠지요. 겨울의 시작에 장만할 것은 진실의 따뜻한 옷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한 땀 한 땀 그 옷을 뜨고 계실 여러 필자들과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문장 웹진/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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