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타자에 대한 마음가짐

미지의 타자에 대한 마음가짐



김미정




글로벌리제이션과 디지털 문명은 현재 우리 삶의 막강한 외적, 물질적 조건입니다. 자본과 기술은 어디에나 편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그것들은 국경과 인종과 성을 자유로이 넘어서 통합·분리시키는 유연한, 그리하여 매혹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매체는 세계를 실시간적으로 현상하고 우리는 시차 없이 그것에 반응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균질적이고 매끄러운 표면에 감싸이게 되고, 우리는 목하 세계와의 세련된 소통에 가까이 닿아 있다고 여기곤 합니다. 노마드(nomad)라는 말은 이런 식으로 재전유되곤 하고, 우리는 글로벌리제이션과 디지털 문명의 환상에 은연중에 감화되고 있던 중입니다.

그러나 사실 세계는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많은 미지의 땅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산(遺産)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현재형의 모순과,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잔해에 여기저기 움푹 패여 있습니다. 글로벌리제이션과 디지털의 구호들은, 세계의 이러한 울퉁불퉁한 지점들을 설명해 줄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매끄러운 표면을 편집하고 선택적으로 조명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앎도 관성적으로 거기에 머물곤 합니다.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지역과 민족과 나라의 문학이 일종의 전범(典範)으로 혹은 정전(正典)으로 자리매김해 오는 동안, 그 한편에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문학들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글로벌리제이션과 디지털의 구호는 넘쳐도, 그 수혜를 얻는 영역은 제한적입니다. 근래 우리가 국가나 민족이나 언어를 초월하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그 관심 역시도 정서적 종속성을 반영하거나 혹은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특정 지역에 편중, 한정되어 왔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이번 11월에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제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 큰 규모의 행사가 서울이 아니라 지방의 한 도시(전주)에서 열린다는 것도 상징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아시아 범위 내에서만 상상해 온 소통과 교류의 움직임을 ‘아프리카’라고 하는, 우리와 교감할 수 있는 역사를 지닌, 그러나 거의 개시(開示)되지 않아 온 미지의 시공간으로 확대한다고 한 것은 크게 기대할 만한 일입니다.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잊어 버리고 묻어 버린 우리의 역사적, 지정학적 의미,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문학의 변화들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낡은 이분법으로 치부되는 제국과 식민의 구도, 혹은 역시 진부한 개념으로 전락한 ‘제3세계’라는 말들과 우리는 완전히 결별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폐기해도 되는 것인지 잠시 떠올려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희 웹진 ‘문장’ 11월호에서는 ‘아프리카 문학’ 특집을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소개되는 몇몇 작품은 무궁무진한 세계 속 하나의 파편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침 아프리카 문학에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이석호 선생의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을 둘러싼 몇 가지 단상’은, 좋은 길잡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미지의 그들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가 그들을 오리엔탈리스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호에는 김태수, 성기완, 신현림, 이나명, 이상인, 이승하, 이용한, 이종수, 조인호, 한길수 시인이, 그리고 김주희, 송영, 이우현, 이재웅 소설가께서 보내주신 귀한 원고로 작품코너를 풍성하게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밖에, 「처용 강정」(‘문학의 사생활’)에서는 절제된 톤 속에서 묘하게 배어나오는 강정 시인에 대한 애정과 막역함을, 또 이동하, 이명랑 작가의 대담(‘작가와 작가’)에서는 세대를 넘는 입담 속에서 1960~70년대풍 문학의 한 자락을 슬쩍 엿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조경란이 만난 사람’이 오랜만에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이번 달의 ‘멀티미디어 낭송시’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낭송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땅위를 포복하는 이야기로부터 공중으로 부양하는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내밀한 서정에서부터 공공의 기억들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경쾌하고 스피디하게 때로는 장중하게, ‘문장’의 11월은 이렇게 시작합니다.문장 웹진/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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