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웹진》과 함께, 따박따박 가을 복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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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나무로부터 가장 멀어진 가지 하나가 어둠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찌르는 저녁입니다. 그러므로, 나로부터 가장 멀어진 생각 하나가 세상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찌르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늘은 가을로부터 가장 멀어진 오늘입니다. 순간순간이 그 끝이고 난간 같습니다. 그 난간에서 파르르 떨며 세계가 찔려 있습니다. 머지않아 기억이 붕대를 들고 저마다의 세계에 문안을 가겠지요. 기꺼이, 환부를 보이며 웃어 줄 순간순간의 저녁이 지나갑니다. 

누구는 잘못된 인연에 세상을 들었다 놓기도 합니다. 사랑과 치정의 묘한 경계가 저마다의 가십으로 다시 태어나, 물린 차례상 앞에서 음복의 안주로 질겅거리더군요. 또 멀리에선 큰바람이 휘젓고 간 가슴들끼리 뽑혀 나간 생활을 다지느라 분주하고, 정치의 계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웅들이 서너 장면도 버티지 못할 화면 속을 뛰어다닙니다. 이것도 모두 환부가 될까요? 움츠렸다 달뜨고 달떴다 사그라드는 마음의 격랑. 어쨌든 가을이 익었습니다.


그러나 기억이 어제의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는 아니었나 봅니다. 단편소설 「일기를 쓰는 이유」(문순태)는 내일을 값지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기록한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여자’도 잃어버려 주기를 바랍니다. 아니, 기억이 여자를 놓아 주려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새의 목소리」(송경아)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연가입니다. 모두가 처음엔 순진한(?) 여대생이었다가 우연히 알게 된 (그러나 어떤 필연의 각색이 끼어든) 새로운 세계, 그곳에 점점 빠져들었을 때 사라져 가는 것.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그 모든 배반과 회귀불능을 상징하듯 (배반으로 새가 된 친구의) ‘삐요로로 삐요오’ 무서운 목소리입니다.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한지혜)도 ‘영원한 이별보다 영원한 만남이 더 잔인한 것 같다’라는 명제로 시작합니다. 옆집여자가 남편을 죽였다는 (혹은 죽였을 거라는) 사실에서 시작된 온갖 추론들. 그리고 반전으로 완성되는 관계와 시각의 어긋남을 아프게 그립니다. 그럼에도 삶은 따뜻할 수 있을까요? 「댄스 댄스」(정한아)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꾸려가는 가계에는 동생의 난산과 오랜 어머니의 입원생활, 자신의 고아원행과 아버지의 실직으로 이어지는 고난이 있습니다. 전화 판매로 생계를 꾸미는 엄마의 연정도 결코 삶을 부정하게 하는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한쪽 발로 자아 가는 자전거처럼 삶은 위태롭지만 때로 수줍은 춤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올 추석엔 「갖바치 김영갑 씨」(시, 김경윤) 같은 고향 ‘읍내 사거리 귀퉁이 구두수선소 안에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명물 어른들에게 안부를 여쭈었는지 궁금합니다. 나란한 「11」(김경후)이라는 숫자처럼 시간은 늘 ‘시간’만을 가지고 찾아와 삶에 짙은 고독의 걸레질만 남길 테고, 「기쁘거나 슬프거나」(김지녀) ‘내 머릿속에는 하루에도 수천번 비가 내리고’, 그리하여 삶이 「비」( 조말선) 오는 날처럼 ‘고독과 고독과 고독이 함께 끓는’ 일일지도 모르고, 「애호박을 뒤지는 철」(박해람)에 어느 구석에 ‘숨어서 썩어 가는 한 열매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생의 비밀은 ‘어린 시절 목도한 부모의 교합장면’(「두 마리 물고기」, 박연준 시)처럼 느닷없이도 ‘슬픔 몸부림을 빌어’ 태어나는 ‘동생’을 보여 줄 것입니다. ‘지평선까지 온 길들 중 다른 길 속으로 시나브로 숨어 버리는 길의 꽁지를 보는’ 일(「지평선 휴게소」, 송재학 시). 어쩌면 우리 모두이기도 한 「사자를 위하여」(문정희) 문득문득 ‘살아 있는 것들을 물어뜯고 싶고 네 발로 달리고 싶을’(, 문정희 시) 때가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100%의 집」(신해욱), 이 완벽한 세계에서 ‘눈 코 입을 환하게 그리며 사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태연하게 ‘누구니, 라고 묻는다면/나야, 라고 대답할 것’.

 

이렇게 쓰고 보니 10월은 또 계절로부터 가장 멀어진 달입니다. <문화의 창>에서 ‘신정아 사건’을 계기로 학벌사회의 백신에 대해 고민한 문화평론가 김종휘의 글, <작가박물지>의 주인공 천양희 선생님에 대한 평론가 송승환의 작품론, <문제작탐구>에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쓰인 고유명을 통해 시인들이 구축하는 세계의 특성을 반추한 평론가 김수림의 글과 함께, 이 가을로부터 가장 멀어진 가을까지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겨울 까마귀가 노는 정자, 한아정’에서 맞는 ‘적적함’(「樂, 취미들」 장석남)일 수도 있겠지만.문장 웹진/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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