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의 지점

 

도약의 지점




조경란




철 지난 관광지에 와 있습니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가방 속에 챙겨왔던 책들도 어쩐지 열심히 안 읽게 되고 밥도 맛이 없어지고 주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술을 마셔도 금세 취기가 오릅니다. 그리곤 숙소 발코니에 나가서 멍하게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죠. 이 ‘생각’이란 걸 잠시 하지 말자, 하고 떠나온 여행인데도 말입니다. 지난 한 달간은 우리 사회에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요. 두 사람을 잃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되어 있던 우리 인질 열아홉 명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된 건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명인사의 허위 학력 사건 같은 것들도 이제 곧 이 여름처럼 지나가게 될까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문득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르키메데스 생각까지 하게 돼서 슬며시 웃음이 다 나는군요. 

서로 다른 사상에서 출발했겠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점(点)’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약의 지점’은 유사한 데가 있어 보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움직이지 않는 한 점’만 주어진다면 그 점을 받침점으로 삼아 긴 막대기를 지렛대로 이용하여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생겨난 말입니다. 이때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지식의 기초, 모든 지식을 떠받치고 있는 근본적인 토대를 일컫는 말로 쓰이지요. ‘도약의 지점’은 학문과 철학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동물계를 탐구하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대한 동물학 저서 『동물의 역사』에서 알의 흰자 속에 앞으로 태어날 새의 심장이 ‘하나의 핏자국’으로 나타나 있다고 기술하면서 ‘이것이 생물이 펄쩍 뛰어오르는 지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훗날 이 라틴어 문장은 ‘동물을 움직이고 뛰게 하는 지점’으로 번역되었고 다시 ‘도약의 지점’으로 축약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나 문제의 핵심을 말하고자 할 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철학적 명제가 그렇긴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나 ‘도약의 지점’이 갖는 공통점은 일단 그것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사색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이 둘의 질문은 우리에게 진리 혹은 본질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와 본질은 존재하는가 아닌가,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러나 어떤 학문이나 세계도 이 질문에 해답을 내려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제기를 하거나 순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진리가 아닌 것은 가려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니 ‘도약의 지점’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는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요.

《문장 웹진》9월호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이상운의 「와인 한 상자」는 ‘정사’를 구체적인 ‘죽음’의 실체와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단편소설입니다.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아간 주인공이 거기서 보게 된 것은 결국 나의 ‘생(生)’이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는 이화경의 「개밥바라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주 먼 곳, 킬리만자로를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함정임의 「킬리만자로의 눈(目)」, ‘영화’를 통해 ‘혁명’ 꿈꾸는 주인공이 지난 생의 국면마다 ‘운명’을 바꿔 놓았던 인물들의 ‘눈빛’들을 떠올려 보는「눈빛」으로 소설 란은 더욱 새롭습니다. 박라연, 송종규, 위선환, 이세기, 장경린, 정기복, 정양, 정한아, 진은영, 허수경의 신작시들로 사색의 계절인 가을을 한껏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밖에도, 「인공자연의 경계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문학의 흐름을 짚어 보는 김미정의 글과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에서 나타난 ‘배반과 복수’라는 큰 화두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통로’를 제시한 이수형의 「배반과 복수의 곤경을 넘어서」, 그리고 ‘책벌레 손홍규’에 관한 소설가 김종광의 글들 역시 9월호 웹진을 빛내 주고 있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다 보면 때로 오류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쩌면 ‘진리’ 같은 것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생각만 하고 있다 보면 인생이 너무 지루하고 엄숙해지겠죠? 가까운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플라톤이 ‘책 읽는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책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안락한 삶’을 중요시하기도 했다는군요. 이를테면 좋은 옷과 말끔한 머리, 멋진 반지도 그에게는 삶의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9월을 맞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러분들은 또 어떤 ‘안락한 삶’을 갖고 계시는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책상을 떠나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설악 밑에서의 적요한 닷새가 저의 또 다른 ‘안락한 삶’이랍니다. 문장 ‘웹진’과 더불어 도토리나무처럼 풍성한 가을 맞으시기 바랍니다.《문장 웹진/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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