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재와 문학

 

공통재와 문학




김미정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법적 소유권 문제라든지 한 작가의 창조의 고충을 모른 척해도 된다는 식의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혹자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말들을 덧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전기적, 역사적 사실과 작품을 분리시켜야 한다’, ‘독자, 수용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공히 생산―소비식 이분법의 사이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 문화 등을 소유와 교환과 소비의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개인의 전유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문화를 배타적인 사유재의 자리에 놓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눈으로 좇아 읽고 감응하고 공명하는 그것들은 ‘나’들의 수만큼 무수히 분절되어 소유되고 그저 소비될 뿐일 따름일까요.

우리는 물과 공기, 자연과 같은 것을 공공재 혹은 집단재라고 말합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 알게 모르게 향유하고 자연스레 습득되고 있는 문화, 창조하고 감상하고 표현되고 실현되는 취향, 예술, 삶들……. 나열한 것들도 사실 물이나 공기와 같이 본래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모두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우리찌오 랏자라토라는 사람은 이런 지적이고 정서적인 활동들을 ‘공통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술 활동, 문학 활동도 사실 반은 작가의 활동과 노고의 결과이지만, 나머지 반은 그것을 보고, 읽고, 듣는 사람들의 활동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모두의 것(공통재)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나’만의 음률과 정서와 취향을 창조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질적으로는 타인에게 이해될 수 없는 이 ‘나’의 불가해함이 반전을 겪으며 다시 공명하고 소통되는 이 상황들은, 새삼 경이롭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곧,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모두와 통하고, 단독자의 그것이 공통의 그것과 연결되는 역설 앞에서 우리는 고무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궁극의 같은 꿈?언어들이, 단독적 언어와 꿈들로 만개하는 역설들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불립문자, 염화미소의 말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는 <웹>이라고 하는 공통재적 가능성을 많이 가진 매체 위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웹진 문장》에는 작가, 작품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고 작품의 의미를 보탤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보태어지는 의미가 많아질수록 작품은 더 커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무한의 텍스트가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고, 여러분은 그것의 조력자, 계승자, 또 다른 창조자, 주인입니다.

이번 8월호 시는 류인서, 문혜진, 박남준, 양애경, 엄원태, 우대식, 이용임, 이재훈, 정재학, 허혜정 시인의 옥고로 꾸며보았습니다. 다양한 세대가 보여주는 시의 창조 순간들이 흥미롭습니다. 류인서의 시들은 「접시거미」로부터 한 우주를 엿보고, 뼈 ‘骨’자의 형상 속에서 그 지워진 흔적들을 상상합니다. 어쩌면 글쓰기란 이처럼 ‘부재’하는 것들의 ‘흔적’을 찾아 그것을 ‘추적’하고 나아가 ‘주석’을 다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재하는 것과 그 흔적에 대해서라면 엄원태의 시도 일독을 권합니다. 그의 시 속에서 ‘햇볕’은 ‘땡볕’으로 치환되거나 ‘낭자하다’고 서술됩니다. 따뜻해야 할 햇볕이 왠지 비정해 보입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이들도 어딘지 쓸쓸합니다. 이주노동자나 텃밭의 노인은 어딘지 우리가 눈감고 있던 진실의 한 자락인 것도 같습니다. 그들의 흔적 앞에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약간은 서럽기도, 치욕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파트와 공장의 틈새에서도 어딘가에 텃밭 하나쯤은 남아 있다고 여기는 부분이며, 희망 없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는 소멸되지 못한다는 것(「햇볕 아래 1」)입니다.

한편 바람구두를 신고 땅과 허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부유하는 랭보의 흔적(우대식, 「청춘―랭보를 추억함」)도 있고, 더러움과 달콤함이 하나의 근원을 갖고 있다는 아포리즘(양애경, 「맛을 보다」)도 있으며, 하나로 얽힌 남녀의 황홀경과 아픔과 위로와 삶에 대한 그림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시편(이용임, 「키스」)도 있습니다. 이재훈의 시편들 속에는 뜨거운 격전의 흔적을 지닌 차가운 고요함이 있습니다. 혼절 후의 깨어남, 폭우 뒤의 고요함 속에서 때때로 시인은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각사각” “비늘 부딪히는 소리”는 글쓰기가 막 시작되는 순간의 환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재학의 시 속에는, 특정 이미지와 감각의 조건들을 재배치하려는 욕망이 있고, 그 재배치된 세계의 창조자가 되기 원하는(「「Edges of illusion(part Ⅱ)」)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제 막 어떤 세계의 개시를 엿본 듯하여 흥미롭습니다.

한편, ‘직수입한 산소’에 의존하는 도시의 무기력과, 언더그라운드 록커의 위풍당당한 샤우팅 사이(문혜진)나, 화려한 개관식 뒷자리나 퇴색한 백합의 모습(허혜정)에서 우리의 초상을 확인하다 보면, 그 반대편에서는 박남준 시들의 서경과 서정의 정취가 우리를 위로해줍니다.

김서령, 남상순, 안성호, 이병천 작가께서 보내주신 소설들 속에서도 다종다양한 세계들을 엿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서령의 「오래된 입덧」은 엄마의 억울함과 응어리를 통해 한 가족의 상처와 치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상처와 마주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대면해야만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불가피한 숙명일 것입니다. 음식을 매개로 연결된 관계, 음식과 생로병사의 유비도 의미심장합니다.

남상순의 「매듭」에는 집안 내력 탓인지는 몰라도 일찌감치 이혼한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이 10여 년 만에 재결합한다고 합니다. 시골 집안 어르신들의 염려와 채근과 기대 속에서 이 둘의 재결합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긴 세월 동안 뒤틀린 인연의 매듭은 과연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스포일러는 피하겠습니다. 단, 쾌도난마만 방법인가, 어떤 순리의 힘에 인생사를 내맡길 겸허함을 갖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슬쩍 흘려도 좋을 듯합니다.

안성호의 「물색환」은 독특합니다. ‘한 알만 먹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단박에 문학의 도에 이르게 하는 약’을 만들기 위해 스승과 제자가 고심합니다. 문학의 도가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이 사제지간은 너무도 진지합니다. 때로는 알레고리처럼 때로는 소설가 소설처럼도 읽히지만, 간간이 부조리한 상황과 대화들 속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감각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병천의 「귀비(楊貴妃), 배꽃에 지다」는 일종의 팩션(faction)입니다. 역사상 실존 인물인 양귀비의 죽음(fact)을 둘러싸고 역사서마다 설이 분분합니다만, 작가는 배꽃 아래에서 비장하게 스러지기까지의 과정(fiction)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미(美)가 배꽃의 흩날림과 오버랩되며 사라지는 결말이 어떤 픽션(fiction)보다도 더 픽션같이, 더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한편, <문화의 창>은 미술인 김남희 씨가 일반인들에게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미술 옥션, 옥션 파티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젊은 미술인들의 고뇌와 패기와 소통에의 의지 등과 함께 호흡해보시기 바랍니다.

<문제작 탐구>에서는 평론가 복도훈 씨가 염상섭의 장편소설 『사랑과 죄』를 다시 읽어 주셨습니다. 리얼리즘 작가, 균형감각 등의 수사를 거느리곤 하는 작가 염상섭이, 192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근대적 연애와 사랑의 풍속 속에서 어떻게 배제와 교정의 시선을 작동시키고 있었는지에 대해 밀도 높은 논의를 보태주셨습니다. 공들여 정독해보시기를 권하는 글입니다. 오랜만에 독자들을 찾아가는 <조경란이 만난 사람>에서는 소설가 조성기를 선배 문인이자, ‘우리동네’주민으로서 따뜻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8월호에서는 새로운 코너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樂, 취미들>에서는 이진명 시인께서 ‘바위’와의 운명적 만남(시인은 ‘우연’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만), 암벽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셨습니다. 작가들이 남몰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취미, 취향 등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함이 기대되는 코너입니다. <문학의 사생활>에서는 시인 김근이 동료시인 김경주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작품 바깥의 김경주는 어떤 모습인지 김근은 조각퍼즐을 맞추듯 살짝살짝 보여줍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모두의 것입니다. 《웹진 문장》과 함께 망서(忘暑)의 경지를 누리는 8월 되시기 바랍니다. 문장 웹진/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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