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충분하지 않을 때

 

말로써 충분하지 않을 때



조경란




르네 마그리트 전시를 보러갔다가,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로베르 콩바스의 전시를 우연히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마그리트 전시가 기대에 못 미친 것도 아니었는데 이, 삼 층을 둘러본 후 그만 전시장을 나가려던 걸음을 돌려 별 기대 없이 일층에 들어선 순간, 어쩐지 눈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선 콩바스의 강렬한 색상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파리의 크고 작은 미술관에서 그의 몇몇 작품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강렬한 색상과 화려한 색채 때문인지 다른 그림들과 함께 있어도 콩바스의 그림은 언제나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곤 합니다. 눈에 안 띄는 그림이 좋을 때도 있지만 기분에 따라서는 이런 그림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로베르 콩바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언제나 캔버스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침대 시트나 간판, 악기, 가구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그는 캔버스로 사용하고 거기에 생의 즐거움과 여유, 너그러움과 유머를 그리는 것입니다. 형상들을 둘러싸고 있는 굵고 검은 테두리와 화려한 색체, 원근법과 부피감이 한데 섞인 그림을 보게 된다면, 거기서 흥분과 활력, 아이러니와 패러디, 즐겁고 유쾌한 망상들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아마 로베르 콩바스의 그림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 의식과는 달리 그는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사교 활동 같은 것에서 벗어나 오직 홀로 작업하면서 예술에 있어서의 자신만의 특색, 정체성 같은 것들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그림 속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림의 크기로부터도. 그것은 자신의 그림이 아주 자유롭기 때문이고, 그것이 자신이 정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해봐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림을 잘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괴테는 ‘우리는 보다 적게 말하고 보다 많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스스로 언어를 전부 포기하고, 타고난 본성과 어울리게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을 스케치로 전달하고 싶다’라고 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글을 쓰는 것,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입니다. 여기 《문장 웹진》의 독자들은 무엇보다 ‘언어’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 않을 때 우리가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방법,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언어’가 없이, 그것이 삶에서 가능한 순간이 있었을까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은 나무들이 알파벳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롤랑 바르트는 모든 나무들 중에서 종려나무가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뻗어 나오는 종려 잎처럼 풍부하고 윤곽이 뚜렷한 글쓰기에 대해. 종려나무는 ‘늘어짐’이라는 중요한 효과를 갖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늘어짐. 이것이 바로 글쓰기에 있어서의 자유로움이 아닐까요. 다다이즘과 나이브 아트, 록 문화, 표현주의, 인상주의, 만화, 이 모든 것을 뒤섞은 콩바스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자유 구상이란 자신의 원초적인 본능과 문화에 대한 의지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그의 말이 저절로 공감이 갑니다. 말로써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2월호 ‘신작 소설’은 세계와의 충돌을 이야기합니다. 김남일은 「망」에서 망으로 포박된 이 세계 허구의 실체를 리얼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명지현은 「입안의 송곳」에서 닳아버린 야성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벼리고 있습니다. 김재영은 「달을 향하여」에서 생의 존재를 말살하는 실직의 고통이 얼마나 참담한지 보여줍니다.

‘신작시’는 이규리, 이병률, 이원, 박후기, 유승도, 표광소, 김민정, 이승원, 박흥식, 박영희 시인과 함께 합니다.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경계, 삶과 상상력의 혼융을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멀티미디어 낭송시’는 황학주 시인입니다. 저음의 매혹적인 사랑시가 은근히 봄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문제작 탐구’에서는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서 보이는 허수경 시인의 심화된 시세계의 변모를 이경수 평론가가 탐색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창’은 문학의 위기를 출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김성신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무대에 올리는 채윤일 선생이 열어 줍니다.

2월 15일쯤 업데이트 될 ‘조경란이 만난 사람’은 민병훈 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작품 「벌이 날다」부터 최근작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이르기까지의 한 젊은 독립영화감독의 세계를 엿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엔 우수와 설날뿐만 아니라 ‘입춘’이 함께 들어있는 달입니다. 절기상으로 서서히 ‘봄’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던 순간에 한 결심들,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문장 웹진/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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