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 있다

 

세계가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 있다



장철문 




세계가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우리가 부산, 광주, 대전, 대구를 발음하듯이 하노이, 울란바토르, 방콕, 파리, 프랑크푸르트, LA, 뉴욕을 발음하고 있다. 거기에 더 이상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은 담겨 있지 않기 쉽다. 우리의 생활이며 생계 속에서 그러한 지명들은 발음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지명들과 관련하여 여행자가 아니다. 그곳과 우리의 문화와 생활과 생계와 교육과 정치가 더 깊이깊이 얽혀들고 있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이 땅에 들어와서 낯섦과 설움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의지를 불태우며 그곳으로 떠나고 있다. 우리의 이웃들은 그곳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고 있다. 끊임없이 가방을 챙겨 비행기 표를 끊고, 살림을 챙겨 살러 오고, 살러 가고, 매일같이 그곳을 향해서 메일과 메신저의 창을 연다. 세계가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니, ‘우리’와 ‘세계’(또는 그들)라고 말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몽골로, 독일로, 실크로드로, 캄보디아로, 페루로, 부탄으로, 케냐로 떠나고 있다. 누구는 베트남에서 몇 년, 누구는 카자흐스탄에서 몇 달, 누구는 부탄으로 떠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작가들의 무대는 더 이상 한반도의 남쪽이 아니며, 독자들의 사유와 상상의 공간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읽는 소설에 다른 나라의 지명과 다른 언어로 된 이름만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번역 소설이라는 보장은 더 이상 없다. 우리의 작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어로만 문학대회를 하지 않으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작가들끼리만 문학대담을 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이제 한글로만 씌어진 문학지를 한국에서만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한글이 나란히 인쇄된 잡지를 그들이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고민하는 작가들이 사는 나라와 한국에서 동시 발행하고 싶어 한다. 영어는 헐수할수없는 선택일 뿐, 할 수 있다면 서로의 모국어를 공유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서로의 모국어 안에는 서로의 역사와 생활과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제3의 언어가 그들의 만남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것이다.


작가들은 묻고 있을 것이다. 아니,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삶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럴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 내부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깊숙이 들어감으로써만이 진정한 만남은 가능하고, 또 우리의 삶은 더 깊고 넓고 높아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는가? 이것은 다만 한 잡지의 편집후기를 멋지게 쓰기 위한 수사에 불과한 것일까? 이제 그것을 물어야 할 때다. 우리 웹진은 우리의 작가들이 그것을 묻기 위하여 떠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돌아오고, 통신하고, 함께 책을 내고, 전화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묻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신뢰’란 ‘질문’이라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문장 웹진》만 해도 조경란 씨가 우리 작가들을 만나듯이 독일의 작가를 만나고 왔으며, 머지않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외국 작가들의 특집을 내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번호에는 최재봉 기자가 ‘우리 문학의 흐름’에서 「한국소설 속 아시아 담론」을 다루고 있으며, 소설가 김재영 씨는 이주노동자와의 달콤한 설악산 행을 써주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교류를 점점 넓혀갈 것이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행보가 우리의 삶에 얼마만한 의미를 가져올 수 있으며, ‘우리’가 ‘한반도’나 ‘한반도의 남쪽’이 아닌 아시아와 세계가 될 때 우리의 만남과 교류, 그리고 삶이 얼마나 깊고 풍부해질 수 있는지 묻는 작업을 작가들과 함께 할 것이다. 우리 웹진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이, 문화가 진정으로 세계 곳곳의 우리 이웃들과 만나고 있으며, 그 만남 속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묻고 있는지, 그들에게 더욱더 다가감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우리 자신에게 더욱더 깊이 다가서고 있는지 물을 것이다. 《문장 웹진/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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