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만나 웃고 생각하는 곳

 

또 다른 ‘나’를 만나 웃고 생각하는 곳




신용목




가끔 세상 어디엔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나와 같은 또 다른 나. 그도 면발에 김치를 감아 국수를 먹고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둥근 잠을 잘 것입니다. 어느 추억에선 그도 첫사랑을 했을 것이고, 별리의 아픔에 홀로 울었을 것입니다.

약간은 도덕적이고 약간은 비도덕적인, 그리고 약간은 순정하고 약간은 타락한 나처럼 약간은 잘난 체하고 약간은 비굴하게 살고 있을 그. 나 아닌 나. 그가 나의 분신이라 생각다가도 가끔은 내가 그의 분신이 아닐까. 먼 곳에 걸어둔 거울처럼 그를, 또는 이곳에 걸린 거울처럼 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침 어제 그를 보았습니다. 늦은 귀갓길 깜빡 잠에 종점까지 가 내렸을 때입니다. 기사아저씨의 눈빛은 눈여길 짬도 없었습니다. 지갑 속에서 간당간당하는, 심야할증이 붙은 택시비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도로변 밤바람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습니다. 스무 걸음 남짓 너머 그도 택시를 잡고 있었습니다. 슬몃 그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나와 같은 또 다른 나.

첫 만남 후로는 쉽게 그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창 안에서 열심히 김밥을 마는 그. 서류가방에 걸음 바쁜 넥타이의 그. 노란 차를 몰고 골목을 도는 그. 그, 그, 그들. 수많은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그’일 ‘나’가 거리마다 분주했습니다. 한 몸이면서 다른 몸 혹은 여러 몸이 된 나와 나가 그득그득 둑방까지 차오른 어둠처럼 함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7월호에서는 작가들의 문체를 따라 읽는 재미가 남다를 것입니다. 삶의 태도에 미장된 허식을 긁어내면서도 전통 건축물 등에 관련된 고유어를 살려 쓴 솜씨가 돋보이는 이현수와 실직자의 다단계 회사 탐방기를 경쾌하게 그린 노경실, 지구의 지붕 에베레스트에서 삶을 들여다보는 해이수, 고모들을 병치시킨 독특한 구성으로 아픈 가족사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김지현의 소설이 각각의 무늬로 독자들을 기다립니다.

풀꽃 위의 잠을 꿈꾸는 송수권, 연못 속에 우주를 담갔다 꺼내는 이문재, 앵두가 빨간 화이바를 쓰고 스쿠터를 타고 왔다는 고영민, 그리고 이기인, 김태형, 함명춘, 안현미, 신동욱, 하재연, 송승환 시인이 생의 아픔을 따스하게 보듬는 시편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평론가 서지영이 쓴 ‘문제작 탐구’는 백석 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시인의 전기적 사실에 비추어 재해석했습니다. 시인의 유목적 삶과 사랑, 그것이 동반하는 타자의 형식을 흥미롭게 풀었습니다. ‘문화의 창’은 연극배우 백은정이 5월 여주 세종대왕릉에서 열린 <문학나눔큰잔치>에 참가한 경험을 장면 장면 생생한 느낌으로 전하며, ‘책장을 덮으며’에는 오랜만에 ‘네티즌 서평’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은경(필명 indian)의 김지우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에 대한 서평이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

 

이번호부터 젊은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김미정 씨와 함께 편집위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을 여는 일부터 지금까지 훌륭하게 《문장 웹진》을 이끌어오신 서경석, 장철문 두 분 선배님의 노고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간 웹진의 이력에 기대어 수많은 ‘나’들과 즐거이 나누겠다는 다짐이, 두 분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층 창가에서 이 글을 보는 ‘나’와 지하 단칸에서 이 글을 읽는 ‘나’, 도서관에서 사무실에서 우리는 거울 앞처럼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멀리 있는 나를 만나 떠들고 웃고 생각하는 곳, 그곳이 인터넷이며 이곳 《문장 웹진》일 것입니다.

새삼 바람이 있다면, 《문장 웹진》이 수많은 주체인 ‘나’들의 눈과 귀와 목소리가 노는 곳이기를. 떠드는 곳, 웃는 곳, 생각하는 곳. 화장도 치장도 없는 맨얼굴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편집위원>이 되고 문인이 되고 평론가가 되는, 그래서 거울 속에 있는 ‘나’를 편안하게 만나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때문에 《문장 웹진》은 수다와 서툼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종이를 편 채로는 멀리 보낼 수 없듯 접어 비행기를 만들거나 구겨 던질 때만 멀리 날아가듯, 종이비행기일 때도 구겨졌을 때도 그 주름 하나하나가 담고 가는 하늘을 오래도록 함께 바라보는 곳이기를. 나와 같은 또 다른 나. 여러분들이 ‘스쿠터를 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고영민,「앵두」중에서) 오시길 기다립니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