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認識과 억견臆見

 

인식認識과 억견臆見




조경란




연일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하는 질문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진보적이다’ 혹은 ‘진보주의’라는 말은 사회 모순을 변혁하려는 전진적인 사상이나 또는 그렇게 점차 발달하고 있는 모양을 가리키지요. 반면 ‘보수적이다’ 혹은 ‘보수주의’라는 말은 있던 그대로의 습관이나 전통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지키려는 경향을 뜻합니다. 얼핏 들으면 둘 다 그럴 듯하여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 이 질문을 진보와 보수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 바꾸어봅니다. 어떤 사람은 진보를, 어떤 사람은 보수의 성향을 선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해도 결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의무는 서로 다른 편에 서서 칼을 겨누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회적인 의무가 있다면 진보와 개선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지금은 서로 그런 것에 대해서 대화해야 할 시간입니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는 ‘인간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노력이 집단적으로 혹은 협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지요. 이‘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일은 우리의 바람대로 언제나 즉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시간’이라는 뛰어난 조력자를 얻는다면 단계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명확히 구분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인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인식인가 억견인가, 억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진짜 억견에 불과한 것일까. 반증에 의해 반박될 수 있다면 그건 ‘억견’일 게 틀림없고 또한 추측을 착각한다면 그것 역시 억견일 게 분명합니다. 반면에 자기 비판적인 반증과 질문에도 반박될 수 없다면 그건 ‘인식’, 즉 일치함home-logein이 따르는 ‘지혜’가 되는 것이지요. 수많은 회의적인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은 ‘완전한 것’, ‘최선의 것’에 도달할 수 없을지언정, 우리는 진보함으로써 이‘보다 나은 것’에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견디기 어려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틈에도 어느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고, 《문장 웹진》에서는 7월호를 준비하였습니다.


우선 소설란에서는 송하춘 작가가 「자전거」라는 단편소설을 오랜만에 선보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전복되는 그 짧은 순간, 그 삶의 불가해성을 작가 특유의 절제된 언어로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김휘의 「목격자」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이며 고전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번호 시란에서는 문인수, 박경원, 손택수, 유희경, 이사라, 이제니, 정다혜, 최정례 시인들이 신작을 선보입니다. <문제작탐구>에서는 김수이 평론가가 「식탁, 세계화되는 몸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생태시’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주었고 <문학의 사생활> 코너에는 투병중인 김양헌 평론가에 관해서 쓴 이규리 시인의 글이, 그리고 이번호 역시 <권리의 세계여행기>와 <조경란이 만난 사람> 연재가 이어집니다. 또한 <작가와 작가>에서는 김신용 시인의 삶과 문학을, <멀티미디어 낭송시>에서는 신동옥 시인의 작품을 동영상과 육성 시낭송 등으로 흥미롭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인식하고, 사회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건강하게 사고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은 철학자들도 많습니다. 그 중 헤라클레이토스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어떤 문제에 대해 ‘마치 잠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혐오했습니다. 보다 나은 것, 최선의 것을 향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보다 ‘정확한 것’에, 지금보다는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진보’가 가장 긍정하는 힘은 인간의 자유와 이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달에 실린 최정례 시인의 시 ‘우리나라’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상하다 내 안에 심은 나라 메마른 흙 위에 쓰라린 파밭 대신 개양귀비 무리지어 흔들리다니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문장 웹진/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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