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고독과 4월

 

열린 고독과 4월




조경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저는 주로 ‘자서전’들을 읽고는 합니다. 고독하긴 해도 역시 관심은 ‘다른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에 관한 질문에 깊은 몽상에 빠져들게 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최후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은 그런 잠 못 이루는 밤, 고독한 밤에 읽기 딱 좋은 책입니다. 융의 말에 따르면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신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고독이란 건 반드시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지요. 고독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란 집단이나 공동체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공동체라는 것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인정하고 기억하며,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게 마련이니까요. 우리는 혼자일 때도 있고 혼자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고독할 때도 있고 잠시 그 고독의 순간을 잊게 되는 때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나의 경험, 그리고 나에게 그 경험을 하게 한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로 이루어진 삶은 아닐까요. 밖으로는 연일 티벳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예슬, 혜진 어린이 납치 살해 사건, 그리고 미국 아이오아주에서 발생한 한국 입양아들의 참사 등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폭력과 흉흉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봄을 맞은 꽃들이 툭툭 피어나고 태양은 더 뜨거워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밀로 가득 찬 이 세계가 우리 삶의 또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문장, 웹진 4월호의 창작 란을 소개해드립니다. 원인과 결과가 딱 맞지 않는 일, 그런 일을 우리는 ‘불가해하다’라고 표현하지요. 생의 신비한 불빛을 본 자, 그 불빛을 따라 묵묵히 걷는 자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김을해의 소설 「불빛을 보며 걷는다」, 요즘 같은 봄날, 자원봉사자와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옛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박경철의 「우리 집」,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갖게 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봄꽃처럼 짧은 만남을 그린 정길연의 「Delete」, 귀농을 한 한 남자의 첫사랑 이야기, 최용탁의 「첫사랑」까지, 이번호 소설 란은 드문드문 꿈을 꾸며 힘든 삶을 견뎌가는 군상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들의 일상처럼 친밀하고 생생하게 재현 돼 있는 듯합니다. 시인 고현정, 곽재구, 김윤이, 노춘기, 문동만, 심보선, 유강희, 이재무, 장철문, 최두석의 시편들도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멀티미디어 낭송시>를 통해 우대식 시인의 낭송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시인 유형진이 들려주는 <악 취미들>과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가 권리의 여행기, <조경란이 만난 사람> 등 산문 란도 다채롭고 풍성합니다. 양심도 지성도 불안할 때가 많지만 문학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마음만큼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4월. 인디언들이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부른 계절입니다. 《문장 웹진》과 함께 이 봄, 희망을 갖고 시작한 어려운 일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그런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문장 웹진/2008년 4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