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 자라는 풀처럼

풀밭에 자라는 풀처럼




신용목




모든 사물은 어떤 위치에서도 한눈에 부감되지 않습니다. 전방위적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해도 바라봄의 행위가 만드는 시간과 공간의 편차로 인해 우리의 인식과 시선이 배제시킨 범주 밖은 늘 존재합니다. 그 범주 밖의 영역이 문학을 불러일으킵니다. 끝없이 확정성의 감옥을 탈옥하는 것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이며 세계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발견 속에서만 제 형상을 드러냅니다.

자본화된 사회에서 사람살이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경제로 지칭됩니다. 따라서 행복한 삶은 경제적 빈곤과 소외로부터 일정한 자유가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제적 토대 구축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고 진행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의 과장은 모든 것들을 경제로 규정하거나 경제 변방을 부수로 다루는 편견을 분만합니다. 화패의 구분처럼 분할과 분해, 구획에 익숙한 경제(논리 혹은 주의)는 문화의 키를 재고 순서대로 줄을 세웁니다.


이번호 소설은 현대 사회의 문제적 처소들을 잰걸음으로 찾아나서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윤영수)은 폭력화된 타자의 한 극단을 보여준 사건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쫓아갑니다. 「퍼플레인」(김규나)은 상처받은 개인의 특수 렌즈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오에게」(조해진)는 점점 커져 가는 외국인(교포) 노동자 문제를 연민과 이해의 과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산, 김주대, 문충성, 박형권, 박형준, 송기역, 이장욱, 채호기, 최치언, 하상만 시인이 귀한 원고를 주셨습니다. 현실의 시에서부터 서정시, 실험시까지 지속적으로 다양한 현대시의 면모를 체험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작가와 작가>는 더욱 특별합니다. 문학나눔사업추진위가 2007년 올해의 시/소설로 선정한 장옥관, 이동하 두 분을 모시고 문학과 문학 환경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문학의 사생활은 들꽃 같은 시인 박남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권리의 여행도 계속됩니다.


새 봄, 새 정부가 꾸려지면서 우리는 안팎으로 새로움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즈음 문득, 우리 문학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다름 혹은 새로움에 대해서도 반문해 봅니다. 새로움의 추구는 아무래도 서구 미학에 뿌리를 둔 것일 터입니다. 그러나,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관념이자 강박이 되어 버린 서구적 인식틀 속에서 이제 ‘변화’는 새로움이 아니라 변화의 ‘습관’일 뿐 삶의 ‘일상성 자체’를 구원하거나 갱신시킬 힘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한편 현실은 명확합니다. 속도의 감옥에 갇혀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자들은, 주관적인 심정주의자들이나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혹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삶의 성취로 여기는 분열적 자아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들이 만드는 변화는 모두가 동의하는 ‘과정’의 산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무자비한 일방주의를 효율로 포장하고 계몽하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배치한 이기적인 광장이 있습니다.

풀밭에 풀이 자라는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풀은 어느새 자라고, 잎과 줄기와 뿌리로 분할하기 전에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낮게 나누며 함께 자랍니다. 경제와 문화가 자라는 풀밭, 풀처럼 일으켜 세우면 모두가 국보1호일 수 있을 것입니다. 불 탄 자리에도 봄이 올 것입니다. 《문장 웹진/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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