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2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

 

김성중(소설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내 행동은 다른 영역에 끼어든 동물과 유사해진다. 우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고, 근거리에 화장실을 눈여겨봐 둔 후(문짝이 없는 화장실도 더러 있기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과 노점을 물색한다. 그 다음엔 반경 2킬로미터 내의 골목을 살살 다니며 지형지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활에 틀이 생긴다. 오전에는 아바나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하릴없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영화관에 간다. 주말에는 한국 사람을 만나거나 올드 아바나에 가서 중국 음식을 먹고 온다.

   이곳에 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품과 미디어를 호흡하며 살았는지 알겠다. 쿠바에 와서 쿠바에 대해 알아 간다기보다 그동안의 내 생활에 대해 거꾸로 깨닫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다’라는 문장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여긴 마트가 없다. 없진 않지만 차를 타고 나가야 드물게 나온다. 그리고 물건이 없다. 있긴 한데 가짓수가 적을뿐더러 사고 싶은 상품은 거의 없다. 일례로 나는 이곳 가정집에서 ‘책상’을 본 적이 없다. 가구도 귀하고 케첩도 귀하고 모든 물자가 다 귀하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지만 배급으로 생존은 가능하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돈 쓸 일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하나 만들었다)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으니 달리 ‘욕망’할 무언가가 없다. 이국에서의 망망대해 같은 하루하루는 금세 일상이 된다.

 

 

   1. 먹는 일

 

   ‘꼬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멋진 바닷가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자들이 소설의 무대를 둘러보기 위해 온다. 그러나 내게는 이 해변이 ‘세계에서 삼겹살 구워먹기에 가장 좋은 곳’쯤으로 입력되고 말았다.

   첫 주 주말에 나는 한국 교민의 초대를 받았다. 코트라 부관장 내외와 쿠바에서 7년간 지내 온 경화 언니네 부부다. 마을 건너편 해변에 차를 대고 숯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와 삼겹살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꼬히마르에 온 나는, 헤밍웨이고 뭐고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기와 김치와 파채(채소는 경화 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언니는 심지어 동치미까지 담갔다)를 정신없이 먹었다.

   쿠바에 온 첫 일주일은 굶주림의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은 먹자마자 배가 꺼지는 거친 빵에 과일 약간이 전부. 심지어 달걀도 없다. 달걀은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열 개씩 배급받는데, 그나마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피해지역으로 모두 보내졌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은 40만 원 수준인데 이 돈으로 모자라는 달걀도 사고 배급만으로 부족한 이것저것을 사는 것이다. 우리 집 앞에 잉크젯 프린터 한 대 놓고 출력과 코팅을 해주는 가게가 있는데, 그 주인은 원래 대학교수를 하던 사람이다. 교수 월급보다 이 구멍가게가 낫다고 하니 어찌 보면 직업의 귀천이 정말로 없는 셈이고, 달리 보면 아까운 인력들이 재능을 낭비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한편 나에게는 말 못 한 고민이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볶음 고추장, 깻잎과 더불어 인심 좋은 경화 언니가 준 총각김치가 손님용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한 날은 아나가 “음식이 썩고 있어!”라고 비명을 질렀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게 발효라는 건데……. 전날 고구마를 삶아 김치랑 맛나게(방에서 창문 열고 선풍기 틀어 놓고) 먹은 나는 뜨끔했다.

   그러다 정전이 왔다. 집 앞 나무 전봇대를 갈아 끼우느라 종일 전기가 나갔다. 저녁에 몰래 냉장고 안을 점검한 나는 폭탄을 해치웠다. 깻잎을 빨고, 내친김에 김치도 빨았다. 이것들이 음식이지 빨래가 아니건만 냄새를 피워내는 파, 마늘, 고춧가루 같은 양념은 물에 헹궈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구 아까워라…….

   차차 외국인이 가는 레스토랑 대신 싸고 맛있는 현지 식당을 뚫었고, 숙소 주인에게 가정식 백반(맛있는 수프와 생선 요리, 콩 요리 등등. 역시 ‘집밥’의 위력이란!)을 얻어먹는 날도 늘었으며, 적당히 요리도 해먹으며 초기의 식량난은 해결됐다. 더구나 오늘은 운 좋게 달걀을 한 판이나 사놓았다!

 

 

   2. 하는 일

 

   숙소에서 3분 거리인 아바나 대학 도서관. 나는 이곳을 내 서재쯤으로 여기고 있다. 출입증도 따로 없고 1층에서 가방만 맡기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쿠바의 대학은 5년제이고 학생들은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다 좋은데, 소리 내서 한다. 이 시끄러운 곳이 도서관이라니.

   떠들며 토론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은 탓에 천장 높은 실내는 소음으로 왕왕 울린다. 나는 이어플러그로 귀를 막고 킨들에 담아 온 이북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서 작업을 하거나, 적당히 경사진 책상에 엎드려 졸면서 시간을 보낸다.

   엄청나게 많은 메모를 할 것이라는 예상(당연히 빗나갔지만) 하에, 그리고 쿠바에는 볼펜이 귀해 선물용으로 좋다는 풍월을 들었기에, 필기류를 잔뜩 가져왔다.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비롯해 목에 걸 수 있는 볼펜, 형광펜, 네임펜, 12색 사인펜(이건 마음에 드는 꼬맹이를 만나면 선물로 주려고), 4색 볼펜, 연필 3자루 등등.

   다만 평소에 즐겨 쓰는, 하나에 이천오백 원이나 하는 컬러 수성펜을 사오지 못했다. 수성펜 주제에 이천오백 원이라는 가격이 부당하게 느껴져서 한 번에 하나씩만, 짙은 카키색이나 갈색, 자주색으로 골라 쓰곤 했다. 이미 문구류에 많은 돈을 써버린 탓에 세일 중인 갈색펜(개당 오백 원)을 세 자루 집어왔는데 젠장, 하나같이 조금만 나오다 아예 나오지 않는다. 불량품인 것이다!

   노트를 온통 검은색으로만 채우려니 내가 얼마나 컬러 수성펜을 좋아했는지 그제야 알겠다. 착상이 떠오르거나 책을 읽다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나오면 없는 펜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쉬운 대로 빨간 볼펜을 집어 들지만, 볼펜은 수성펜과 달리 종이를 미세하게 물들이는 맛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뭘 애써 구하려 하기보다 맞춰서 사는 게 빠를뿐더러, 불편에 적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을 터득한 후에 크게 낙담하진 않았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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