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3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김성중(소설가)

 

 

 

 

 

   3. 문화생활

 

   1) 출판기념회

   집주인 아나의 친구가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한다. 쿠바에서는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매우 소박했다. 강당이 있는 건물(간판이 없어 아직도 그곳이 학교인지 뭔지 모르겠다)에 사람을 모아 놓고 몇 마디 축사와 저자의 말을 들은 후 콜라를 탄 럼주를 나눠 마신다.

   그럼 글쓴이가 무명씨냐, 그렇지 않다. 60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마르타는 쿠바와 칠레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 대사를 비롯해 국제관계를 가르치는 교수님, 또 무슨무슨 교수님, 기타 ‘선생님들의 선생님’들로 그득하고, 기자도 두어 명 와 있다.

   책 표지에는 바지와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뒷모습, 그 뒤로 작게 표현된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목은 『Yo Sola(나는 혼자다)』. 표지 분위기가 작가 연보에서 겨우 건져낸 소수의 단어로 추측컨대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

   강연 후에는 책을 사고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이곳에서 산 최초의 책이 여성 사회학자의 책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기자가 와서 찰칵, 나를 찍어 간다. 동양인이 있으니 신기해서 찍는 것이다. 난 읽을 수 없는 책을 펼치고 맹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쿠바는 노년층일수록 영어도 잘 쓰고 지식인이 많은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덜 궁핍했고, 혁명세대라는 자부심도 강할 테니까. 반면 젊은이들은 어디에나 그렇듯 유행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어 놓고 따라하는 청년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봤다.

 

 

   2) 영화

   12월 둘째 주가 되자 중남미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집 근처에 극장이 세 개나 있어서 나도 가보았다. 관람료는 우리 돈 백 원 정도? 거저나 다름없다. 그 앞에서 파는 팝콘이 관람료의 2.5배인데 말이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게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쿠바의 의자들은 유달리 딱딱하고 불편하다. 일단 쿠션 있는 의자가 많지 않고 각도는 대체로 90도다. 극장 의자도 예상대로 작고 불편했다. 첫날 본 영화가 하필이면 세 시간짜리라서 벌서듯 본 다음부터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쿠션을 가져갔다. 그랬더니 한결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영화를 볼 때마다 반은 자버리니까. 근데도 영화관에서 여러 명 사이에 끼어서 자면 달콤하단 말이지. 이상한 꿈도 꾸고…….

 

   3) 파티

   아스뚜르발 아저씨의 생일이다. 저녁부터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깜짝 파티라더니 그건 아닌가 보네?’라고 생각한 순간 커다란 초코 케이크가 나온다. ‘옳지, 저게 비밀이었구나.’ 얼음을 사오라고 일부러 내보낸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온 순간, 불을 끄고 기다리다가 일제히 노래를 불러 준다.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촛불을 껐다. 전남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큰돈을 쓴(모르긴 몰라도 저 케이크는 매우 비쌀 것이다) 아나 아줌마나, 캐나다에 있는 딸을 보러 가기 위해 비자가 나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때가 되면 아나는 새로운 노비오(남자친구)를 찾겠지.”라고 말하는 아스뚜르발 아저씨의 관계가 내게는 오묘하기만 하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만난 지 보름 만에 함께 살고,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만날 당시 아스뚜르발에게는 딸과 아내가 있었고, 아나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난리가 났지만 이십 년을 행복하게 살다가…… 오 년 전에 이혼했다.(이 러브 스토리는 앨범을 보다가 들은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아줌마는 1층에서, 아저씨는 2층 다락방에서. 여전히 사이는 좋다.

   접시를 들고 서서 먹는 소박한 식사가 끝나자 음악의 볼륨이 높이 올라간다. 한마디로 이 날은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다들 입이 쩍 벌어지게 춤을 잘 춘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플로리가 그렇게 춤꾼일 줄 미처 몰랐다! 살사 선수 수준으로 춤을 추는데 그 사이에 다섯 살짜리 알레한드로도 엄청나게 잘 춘다. 어릴 때부터 이런 춤판에 끼어 노니 리듬이 몸에 밸 수밖에. 모두들 지치지도 않는다. 땀을 흘리면서도 음악만 맘에 들면 계속 춤을 춘다. 이대로 밤이라도 샐 기세다.

   한국에 있을 때, 쿠바에 갈 거라고 하자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충고했었다.

   “넌 지금 스페인어를 배울 때가 아냐. 살사를 배워야 해. 그 편이 친구를 사귀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알겠다. 다들 끌어당겨 할 수 없이 나도 추는데 나무토막 같은 내 모습이 창피해서 혼났다. 진땀이 나서 죽겠는데 내 손을 잡고 이끄는 곤잘레스 할아버지는 내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둥, 신비한 눈을 가졌다는 둥 흰소리를 한다. 이봐요 할아버지! 난 지금 죽을 지경이라고요……. 신비한 눈을 모로 뜨고 아무리 내 의견을 전달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4. 몽상

 

   외국인들에게 쿠바의 대표적 혁명가는 체 게바라겠지만, 막상 와보니 이곳은 호세 마르띠의 나라다. 호세 마르띠는 쿠바의 독립운동을 이끈 사람으로 뛰어난 문필가에, 교육자에, 외교관에, 16살부터 6년간 옥살이를 하지 않나, 자기보다 열 살은 많은 장군들에게 추대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않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독립전쟁 중 전사함으로써 영원히 신화가 되었고, 어디를 가나 호세 마르띠의 흉상을 볼 수 있다.

   쿠바 혁명은 그 이전의 쿠바 독립운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둘 다 너무 치열해서 핵심 세력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았다. 호세 마르띠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대단한 인물로 성장하기란 얼마나 드문 확률이겠는가. 전설이 되기 위해, 신화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이들이 숱하게 죽어서 거리의 동상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자 ‘대통령의 거리’에 즐비한 한낱 돌덩어리였던 동상들이, 갑자기 격렬하고 눈부신 삶을 품고 있는 것으로 뒤바뀐다.

   마끼나(합승택시)를 타고 깜삐똘리오로 간다. 엘 모로 성의 외곽이 노을에 물들고 있다. 천혜의 만을 끼고 있는 이 바다는 한때 멕시코의 금과 잉카의 은이 모두 모여 스페인으로 보내지는 집결지였다. 이곳에서 범선을 띄우면 바람 길을 따라 스페인으로 간다고 한다. 나는 모든 황금을 모으는 바람을, 그 바람에 휩쓸리는 배와 군인과 해적을 상상한다. 난파된 해적선과 저 유명한 ‘스페인 금화’ 이야기는 할리우드에 남았지만 지금 이 바다는 담담하기만 하지 않은가. 바다는 일종의 유적지다. 터만 남은 신전에서 남은 공간을 떠올려 볼 때처럼 텅 빈 바다를 가득 채우는 범선들을 상상해 본다.

   교민 한 분이 ‘쿠바는 외국이 아니라 외계’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호오(好惡)를 떠나 쿠바는 이상하고 신기하다. 고작 3개월 머물면서 이 나라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은하에 와 있는가. 살사 음악이 귀를 찌른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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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

'외국'이 아니라 '외계'라는 말이 와 닿네요. ㅎ 쿠바인들 틈에 홀로 눈에 띄실 작가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요. ㅎ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