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

 

김기택(시인)

 

 

 

 

 

   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감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후자의 예를 잘 보여주는 예가 나치스 장교로서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로 위장하면서 수십 년을 지내다가 이스라엘 경찰에게 발각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유태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이나 유태계 사람들을 학살 현장으로 보낸 책임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고 지독할 정도로 말하기에 무능한 사람이었다. 학살을 담당하는 군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감성적으로 느끼게 되면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독일군은 유대인 학살을 하면서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 학살이라고 말하는 대신 최종해결책, 완전 소개, 특별취급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언어 규칙을 만들었다. 이런 언어 규칙은 군인들의 현실적인 감각을 마비시켜 그들을 정신적인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이러한 일을 오랫동안 해온 나머지 상투어와 관용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관용적인 상투어만을 사용했고 심지어 사형이 확정되어 최후 진술을 할 때조차도 마음에서 진정으로 나오는 말을 하는 대신 목사가 죽은 자에게 해주는 형식적인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써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어 버린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된 것이다. 현실적인 감각과 자신의 감성을 언어로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인면수심의 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를 쓰고 읽는 일은 학습된 말이나 상투적인 말을 관습적으로 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에서 시작된다. 상투어와 관습적인 말은 감각을 마비시키고 감성과 정서를 마비시키고 사물이나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하는 능력을 마비시키고 결국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능력도 마비시킨다. 시적 언어는 상투적인 관습에 균열을 가하고 그 균열 속에서 살아 있는 말, 생명의 탄력이 있는 말, 나 자신과 세계가 풍부하게 감춰진 말을 꺼내고자 한다. 내가 시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이 낯설고 새로운 말, 본래 자신의 말이었지만 잊고 있는 이 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민들레문학상 응모자들을 위한 문학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공익성을 먼저 생각하고 승낙했다. 수강자들은 노숙인 시설에 거주하거나 쪽방, 고시원, 여인숙 생활자 등 정상적인 가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작품의 주제도 「집이란」으로 정해져 있었다. 정릉사회복지관 강의실에서 수강자들을 만나 보니 모두 남자였으며, 나이가 들었으며, 삶의 고달픔이 얼굴에 짙게 나타나 있었다.

   교실에서 배우는 게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 하는 소리라는 게 그악스러운 삶과 현실에 비해 얼마나 편하고 한가한 소리인가. 그들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을 견디는 일에 단련이 잘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반 동안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시간을 잘 견디기 위해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농담에도 웃지 않았으며 읽어주는 시나 해설에 대해 어떠한 표정의 변화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삶에서 속을 만큼 속아 왔으며 당할 만큼 당해 왔으며 눌릴 만큼 눌려 왔으니 이런 정도의 지루한 자극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강의의 목표는 그들이 글쓰기를 통해서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첫 강의에서는 현실에서 겪은 상처를 내면에서 변화시켜 아름다움으로 바꾸거나 웃음으로 반전시킨 시들을 읽으며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했다. 문학도 영화나 드라마 못지않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문학은 바로 자신의 삶이라는 재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 따위였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시든 수필이든 한 편씩 글을 써올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말은 한 마디도 못 했다는 것이 첫 강의를 마친 솔직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두 번째 수업에서는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서너 명이 작품을 써왔다. 반가웠지만 그 글에는 자신들의 삶과 현실이 없었다. 유년기나 고향집 또는 어머니에 대한 판에 박힌 그리움만 있었다. 내면에 숨겨진 말을 솔직하게 꺼내는 능력이 그들에게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글에는 수치스러운 삶과 현실 같은 건 결코 꺼내고 싶지 않다는 완강한 태도와 방어 자세도 있었다. 그 글들은 세상에 마음을 닫아걸고 있었다. 아이히만이나 그 휘하의 군인들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 취했던 공식적인 상투어들과는 다르지만, 자신의 진정한 말을 마음에서 꺼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도 있었다.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나 술자리에서 욕지거리하며 터놓고 말할 때 쓰는 바로 그런 자유롭고 솔직한 말로 쓰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강조했으나 세 차례의 수업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 틈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마지막 수업에서 한 수강자가 써온 시에 감추고 싶은 고시원 생활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고달픈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지만, 괴로움을 웃음으로 만드는 블랙 유머가 있었다. “늦은 밤 쓰러지듯 누우면 발바닥이 벽에 붙어서/ 나는 지금 서서 자는 건가”, “귓가를 스쳐가는 바퀴벌레마저 친구가 돼 버리는 공간/ 오늘 밤도 유일하게 반겨주는 모기 친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헌혈하면서 오늘 하루도 마감한다”. 유머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나온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마비된 규격화된 공식적인 방어적인 말이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즐기는 글이 나온 것이다. 틀에 박힌 말과 마비된 감성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말을 찾은 것은 큰 변화였다. 동시에 나도 그들에게 무언가 가르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문장웹진 11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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