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1

 

 

 

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김성중(소설가)

 

 

 

 

 

   1.

 

   눈뜨고도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비현실적이어서. 지금이 정확히 그렇다. 불 꺼진 밤비행기 안에서 맥주를 쏟지 않으려 조심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쿠바행이 결정된 것은 거의 일 년 전이다. 일찌감치 흥분을 소진한 탓에, 막상 떠날 때는 뚱하게 가라앉아 있다가 허둥지둥 비행기를 탔다.

   외국 작가들의 연보를 읽다 보면 나라의 지원으로 어디어디를 다녀와 무슨 글을 썼다는 말이 간혹 나오는데, 외국이니까 그렇겠지 했다. 한데 우리나라에도 작가들을 해외에 보내 주는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운 좋게 지원한 나라에 선정되었다. 3개월간 내가 머물게 된 나라는 무려 쿠바. 맙소사! 쿠바라니. 행운의 신이 졸다가 가지고 있던 대야를 내 머리에 쏟은 모양이다. 천문학적(내 기준에서) 액수의 항공료와 체류비가 주어지자 차가운 이성이 밀려들어, 나는 남미행 4개월을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지구 반대쪽으로 날아갈 기회가 왔는데, 쿠바에서 지내다 항공료 쪼끔 더 보태면 남미로 내려갈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남미는 배낭여행자의 로망 아닌가. 항공료가 굳었으니 여비를 만들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수전노라 여기며 결코 손대지 않던 철옹성 같은 내 통장. 그 견고한 성벽이 여리고의 함성으로 무너질 때가 온 것이다. 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생활비로 녹느니 ‘여비’로 변하는 것이 네게도 영광일 터.

   정신을 차려 보니 문우들의 환송회다. 어느새 내 손엔 침낭, 해먹, 보디크림, 선크림 등등이 들려 있었고 성중아 잘 다녀와, 까를로스 조심해. 언니 겁먹지 말아요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술자리’라는 꽃의 봉오리가 이윽고 한 장 한 장 만개해 활짝 피어나자 쿠바 가지 말고 이차나 가자, 아니다 겨울에 다 같이 통영이나 놀러가자는 흰소리들이 낭자한 가운데 나 혼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날 황열병 예방 접종 주사를 맞기 위해서다. 택시 창문 밖으로 취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내가 먼 나라로 떠난다는 실감이 난다.

   이제 인천 공항. 에어 캐나다에서 규정한 수하물 무게가 약간 넘치는 바람에 짐을 조정한다. 3개월은 쿠바에 ‘살러’ 가는 것이고 그 후 4개월은 남미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보니 짐이 많을뿐더러 복잡하다. 캐리어 하나와 38리터짜리 큰 배낭, 23리터짜리 작은 배낭 하나, 요렇게 셋으로 짐을 꾸리기까지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지. 매사 대충인 나와 꼼꼼한 엄마가 절충한 모종의 협상물을 부치고 마침내 국제선 입국장 앞에 섰다.

   커다란 배낭은 등에, 작은 배낭을 앞으로 멘 내 꼬라지가 우스운데 엄마 잘 다녀올게요, 하는 순간 둘 다 눈에 압력이 밀려온다. 울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와 당황스럽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자식인데도 어디 멀리 가는 순간이 오자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인지, 우리는 급격히 축축해진다. 군대를 갔다 온 남동생만 꿋꿋하다. 여권을 든 채 줄줄 울면서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일시적이라도 작별은 작별이라는 것이다…….

 

 

   2.

 

   가는 길이 정말이지 멀긴 멀다. 아홉 시간 비행하고, 밴쿠버에서 한 번 갈아타고 다시 다섯 시간가량 날아와서 토론토 공항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다. 다음날 오후 4시 40분이 돼서야 아바나행 비행기를 타는데, 내 앞에 야구복을 입은 남자들이 시커멓게 줄을 서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쿠바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이었다. 여기저기서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난 아바나 공항에 내려서야 그들이 국가대표 선수인 걸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구 좋아하는 박성원 선배를 위해 사인을 받아 두는 건데.

   밤 아홉 시에 아바나에 떨어졌다. 마침내 쿠바에 왔지만 컴컴해서 그런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 코디네이터를 맡아 준 암뻴로스 그룹 직원이 마중 나와 있다. 한인 4.5세대인 세르기오 씨도 함께 있는데 이분이 호세마르티 문화원 직원으로 내 비자 문제며 기타 제반 상황을 도와주실 것이다.

   일행과 함께 세르기오 씨가 잡아 놨다는 숙소로 이동한다. 아침저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 달 방값이 우리 돈으로 약 백만 원가량이다. 쿠바는 이중환율제를 택하고 있어 외국인과 내국인의 물가를 다르게 적용한다. 한국에서 내 예상은, 방값이 비싸니 엄청 호화찬란한 숙소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골방도 이런 골방이 없다! 부엌 앞이라 요리하는 냄새가 진동하는 데다 가구라고는 달랑 침대 두 개가 전부. 창문이 없어 어두운 데다 결정적으로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 이런 고시원 같은 곳에 살면서 백만 원씩 내라고! 이박삼일 걸려 날아온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딱 삼일만 이곳에서 지냈다. 이 숙소에는 아바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권봉철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분의 통역으로 집을 나가겠다고 한 후 근처 골목의 빈 방을 뒤지기 시작해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냈다. 아바나 대학 후문 쪽의 아름다운 스페인풍 건물로, 안에 서재도 있고 흔들의자가 잔뜩 놓여 있는 응접실도 있다. 집주인은 ‘아나’라고 하는 여자 변호사로, 이혼한 전남편 아스뚜르발 아저씨와 함께 살고 있다.(이혼 후에도 함께 사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 직업이 소설가라는 말을 들은 아나는 자기의 인생이야말로 소설이라고 했다) 점잖은 개 루나와 니뇨, 앵무새 한 마리와 이 집에서 밥을 주되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네 마리도 있다. 요컨대 처음 숙소에 비해 한결 집다운 집이랄까. 방값도 훨씬 싸서 아침 포함 우리 돈 65만 원 정도다.

   이 집에서 나는 ‘훌리’로 불리고 있다. 내 천주교 본명인 율리아나를 줄여서 스페인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쿠바에 온 지 나흘이 흘렀다. 지금 내 눈앞에 말레꼰 방파제가 있고 그 너머 푸른 하늘과 카리브 해가 펼쳐져 있다. 눈뜨고도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의 시간이 차차 현실로 바뀌어 갈 것이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아직 멍하지만, 나는 지금 쿠바에 있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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