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아, 입이 없는···

 

이혜경(소설가)

 

 

 

 

   내가 노숙인의 막막함에 그나마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여행을 마칠 무렵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를 쏘다니다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꾸릴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일 지금 내게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러면 어쩐지 찬바람 부는 저녁, 외기를 차단한 천 조각 하나 없이 한데에 나앉은 듯 스산해진다. 추운 날 길에 웅크린 노숙인을 볼 때보다 그럴 때 마음의 파장이 더 큰 것은 노숙인의 처지에 나를 대입하기 때문인 듯하다.

 

   서울 나들이에서 《빅이슈》를 사 볼 때면 나도 글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쉬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밀린 일도 감당 못 하는 터에 또 다른 일까지 벌여? 너펄거리는 오지랖 안 잘라내면 이 오지랖이 나를 휘감아 옴쭉도 못 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민들레 문학 특강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채무감과 오지랖 단속 사이의 절묘한 타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내게 배정된 곳이 교회 안의 센터라는 걸 듣자 기껏 즐겁던 마음이 주춤 물러났다. 밥이 절실한 사람에게 밥을 주는 대신 믿음을 강요하는 한국 교회의 어떤 속성에 대한 반감을 채 떨치지 못한 까닭이었다. 오랜 세월 쌓여온 선입견에 멈칫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나섰다.

   영등포역 파출소 뒤편의 광야교회로 가는 길, 노숙인 몇이 길바닥에 몸을 뉜 채 잠들어 있었다. 9월 하순, 유독 무덥던 여름의 뒤끝이라선지 반갑던 바람결의 선선함이 마음에 걸렸다. 어떤 절망이 한데에서 저토록 질펀하게 몸을 뉘게 하는 걸까. 공연히 뼈가 시렸다.

   두 평 남짓한 광야교회의 도서실에서 첫 시간을 맞았다. 노숙인이라는 선입견을 씻어주려는 듯 단정한 차림새로 모인 다섯 명의 수강생. 통성명을 한 뒤에 우선 준비해간 프린트를 나누어주고 각자 읽게 했다.

   한데에서 생활한 지 오래된 노숙인들에게 집은 절절한 그리움일 수도 있지만 노숙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화산재에 묻혀버린 유적 같은 것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첫 시간을 준비하며, 집에 관한 동시와 시를 찾아 프린트한 건 그 때문이었다.

   집을 소재로 한 동시와 시는 많고도 많았다. 하기야,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고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에도 필수불가결한 공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권정생 선생의 「우리집」, 이준관의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등의 동시와 안도현의 「내 살던 옛집 마당에」, 정우영의 「집이 떠나갔다」 등 20여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열어놓은 창에선 대로변의 찻소리가 바람에 섞였다.

   시를 읽고 난 뒤, 각자 ‘집’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을 말해 보라고 부탁했다. 말을 꺼내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특강 참가를 결정한 뒤, 서울역 노숙인 센터에서 일하는 친구를 둔 후배에게 물었다. 노숙인들을 대할 때 삼가야 할 게 무엇인지. 후배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들은 자기에 대해서 누가 묻는 걸 싫어한다고. 자기 이야기를 안 하려 한다고. 그럴 법한 일이라고 수긍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그럴까?’ 싶기도 했다. 피붙이와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졌기 십상인, 그야말로 혈혈단신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말하기 싫어한다는 건 말로 꺼내는 순간 마음을 배신하는 말에 대한 실망 때문이거나, 온전히 들어줄 귀를 만나지 못한 때문일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글을 쓰기보다는 말하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았다.

   머릿속에 꿈꾸는 집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보낸 어릴 적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가수를 닮았다는 말에 “내가 상처가 많아서 남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던 한 수강생은 막상 입을 열자 어릴 적 고향에서의 기억을 남들보다 더 길게 늘어놓았다. 자기 상처가 하도 아파서, 다른 이들도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걸 채 깨닫지 못하는 시기를 사는 이는 말.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이런 말 안 하는데, 그래도 말하고 나니 속 시원하다”는 그에게, 내 말이 그의 가슴 표면에서 퉁겨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말하고 있었다. 상처는 글쓰기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그러니 상처가 많다는 것은 글을 쓸 때 유리할 거라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 짧게나마 글을 쓰게 했다.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는 청년은 A4 용지를 두 번 접은 뒤 한쪽 면에다 ‘집’에 관한 글을 썼다. 기사문 같은 글이었다. 몇 마디 언급하고 그 뒷면에 다시 써보라고 했더니 이번엔 자기감정을 실은 글이 나왔다. 아주 작은 물꼬만 터줘도 쏟아져 나올 감정을 단단히 가둔 채 사는 이들. 집에 관한 글을 과제로 내주었다. 특강 담당자에게 쓴 글을 넘기면 담당자가 내게 이메일로 보내주는 형식이었다. 지난 시간에 길게 말을 했던 수강생은 A4용지 5매나 되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수정해 갖고 간 다음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센터의 합숙소에 있던 그가 센터를 나가버렸다고 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덮어두려 했던 기억을 일깨운 게 그를 촉발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어림짐작 때문이었다.

   두 번째 시간에 처음 나타난 수강생은 아주 작고 마른 청년이었다. 앞니 두 개가 다 썩어서 뿌리만 남아 있었다. 어릴 적의 가정폭력과 가출, 학교에서의 왕따, 보육원에서 겪은 폭력, 그리고 구걸과 절도. 그런 경험을 담담히 털어놓던 청년은 말하는 것을 글로 쓰라고 하자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짜더니 첫 문장을 썼다. “집이라고 하면 나는 가출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때려서 가출했다는 두세 줄짜리 글. 그 짧은 글 갈피에 어린 숱한 감정들, 채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그것을 끄집어내는 일은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왜 때린 것 같아요?” “맞을 때 무슨 생각 했어요?” “집 나올 땐 어땠어요?”

   첫 시간, A4 용지를 접어서 글을 썼던 청년은 두 번째 시간에 스스로 주제를 정했다.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고. 다른 수강생이 가볍게 놀렸지만, 그는 진지하게 써나갔다. 특강은 4회뿐인데, 그 중의 한 번은 내가 번역원 행사로 미국에 가느라, 한 번은 광야교회 쪽의 장례식 때문에 결강했으니, 두 번째 강좌가 마지막 강좌가 되어버렸다. 겨우 두 시간, 처음의 멈칫거림에서 입을 열고, 그 말을 정리하며 글로 쓰는 수강생들.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가듯(이성복의 시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서) 잠깐 스친 그들. 들을 귀가 없어서 입을 닫고 사는 이들이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기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문장웹진 12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