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뭔 놈의 글?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글은 뭔 놈의 글?

 

김해자(시인)

 

 

 

 

 

   “뭔 집이요? 나는 평생 집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자라가지고 13살부터 객지로 사방팔방 돌았어요. 배를 25년 타고 노가다 건설현장 일을 몇 년 하고 몸이 다쳐가지고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어서 이렇게 쪽방에서 하루하루 사는 목숨인데…. ‘집’ 하면은 내 마음속에 머리끝까지 신경이 솟아요. 이 세상 살면서 나는 지금까지 뭐했나? 내가 바보여서 지금 내 처지가 이렇게 되어 있질 않나? 이런 생각이 나서 화가 많이 나요.”

   우리의 첫 만남은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화’라는 장벽에 부딪쳤다.

 

   “임대주택에 대해 알려 준다고 해서 왔거든요.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임대주택이나 아파트나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하지, 어디 들어갈래도 보증금이라도 필요하거든요. 근데 하루하루 살다 보면 한 달에 5만 원도 저축이 힘들어요, 그러기 때문에 보증금 없는 사람도 지원이 가능한가 그런 것도 물어보고 싶어서 왔는데 뭔 집이요? 집이 있고 없고 그런 거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나는 할 말이 없을 거 같습니다. 자기 살았던 집에 대해 써야 하는데 여기 그런 경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어요?”

   우리의 첫 만남은 서로의 기대가 달랐기 때문에 ‘좌절’이라는 장벽에 부딪쳤다.

 

   “우리는 집하고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요. 그라고 시하고 수필이란 건 배우고 안 배운 걸 떠나서 어렵다니까.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써봐야 휴지조각밖에 안 돼. 그런 건 가방끈도 길고 연구도 많이 한 사람들이 하는 거지, 그런 재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다고 글을 가르친다고 그라요? 우리가 쓴다고 하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랑께.”

   우리의 첫 만남은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문턱에 세게 부딪쳤다.

 

   “여기 와가지고 말이야, 정치하는 그런 높은 사람들이 말이야, 휙 둘러보고, 악수하고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면서 말이야, 국수가 천 원이면 배부르고 맛있게 먹는다고 말이야,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고들 말들을 하더라고. 봤으면 제대로 보고 말해야지 말이야, 그거 국수 하나 먹고 말이야, 내 참 말이야, 그 사람들이 뭘 보고 간 건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수없이 겹쳐지는 “말이야” 앞에서 나도 몇 번 왔다 가고 이럴까봐, 어차피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자의식이라는 장벽과 세상 제대로 보는 놈 없다는 불신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울 역 맞은편에 있는 쪽방 상담소에 둘러앉았다.

 

   어차피 글을 쓰는 기술이랄지 방법이랄지 하는 고상한 것들은 펼칠 계제가 아니었던 고로, 자연스럽게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으로 강의는 대체되었고, 당연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녹음하고 받아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단 꽁무니를 살짝 건드리니 실이 끝도 갓도 없이 이어지는데 예정했던 2시간 3시간을 훌쩍 넘어가버려서, 자를 수 없는 실타래를 잡고 우리 중 가장 원로였던 ‘은발’님의 쪽방으로 자리를 옮겨 라면을 끓여 먹어가며 이어졌다.

 

   허공에 쓰던, 말로 된 글쓰기는 두 번째 만남에서 종이 위로 이사를 왔다. 첫 만남에서 집 책상 서랍에서 놀던 수첩을 열댓 권 가져가 맘에 드는 크기 색깔로 각자 골라갔는데, 귀가 잘 안 들리는 ‘쪽방 시인’ 한 분이 시 몇 편을 그 노트에 써온 것이었다. 가로 세로 2.5미터짜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방과,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옆집에서 부침개를 하고 찌개를 하면 먹는 것보다 냄새 때문에 더 환장한다는 구수한 음식 이야기를 듣더니 ‘지팡이’님이 고개를 계속 끄덕끄덕했다. 지팡이님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노트 위에 뭔가를 계속 끄적이는데, ‘은발’님이 갑자기 시 낭송 하나 하겠다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가 결연히 눈을 감자, 우리도 따라서 눈을 감았다. 엊그제 죽은 젊디젊은 진철이 문상을 공원에서 했다고 했다. 공원 맞은편에 텐트를 치고 자던 진철이가 갔다고 했다.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갔다고 했다. 돈도 없는데 어찌 갔는가, 응곤이 성님, 만 원만 빌려 주씨요, 해서 노잣돈을 보태줬다고 했다. 한동안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셋씩 차례차례, “우리가 쓴다고 하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라던 글을 쓰고 말았다.

 

   “밥 좀 주세요” “밥 없어” “반찬 좀 주세요” “반찬 없어” “김치라도 주세요. 김치가 없으면 쌀이나 보리라도 좀 주세요” 깡통과 공갈배(숟가락)를 들고 걸밥을 치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미군이 먹다 남은 음식 얻어온 짠밥 버무려 사카린하고 소다 넣고 끓여먹은 일명 꿀꿀이죽도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간혹 튀어나오는 전문 용어들 다음에는 반드시 주석을 달아주며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비닐하우스와 갓바 그리고 토굴에서 불을 피우고 자는 난장을 치던(한뎃잠) 이야기를 서로 교정 보완해 줘가며 했다. 디디미 깨꾸 닦고, 넝마주이하고 꼬지 하던 일을 엊그제 일인 듯 소상하게 신나게 이야기했다. 장소 시간 사람 풍경 등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디테일하고 실감나는 에피소드를 듣다가 엄청난 기억력의 비결이 뭐냐고 주책없이 묻고 말았다. 뭐 별 거 없다고 했다. 딴 세상을 살아야 잊어버리지, 맨날 평생을 이렇게 사는데 영화가 상영되듯 필름이 맨날 돌아가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느냐 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인생을 요약하면 식의주로 정리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비싸고 어려운 ‘집’이라는 주제를 우린 잊지 말아야만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잠시 글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하지만, 사실 그들에겐 늘 잊을 수 없는 주제인 것이다. 겨울엔 냉장고보다 방이 더 차가워 음식도 밖에 내놓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 쪽방을 벗어나기 위해 통원치료 끝나면 지팡이를 짚고 먼 골목을 돌아 양은과 신쭈와 구리와 스뎅을 주우러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 밥솥이나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쓰면서 부탄가스를 절약하자니 네 개 들이 한 묶음에 4400원 하던 부탄가스가 추석 며칠 전에 4800원으로 오르는 걸 잊을 수가 없다. 신발이 발에 안 맞아 아프고 힘드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나이 많고 가장 많이 아프고 가장 추운 방에서 사는 분이 임대아파트 키를 받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고맙지만, 사실 나는 그들과 만나면서 임대아파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공기나 햇빛이나 물처럼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상처와 좌절을 맛보아야 하기에. 선택적인 것이 이 세상의 질서와 생리지만 나는 글을 쓰면 모두에게 부탄가스 몇 묶음씩 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인연은 다 이상하지만, 글을 안 쓰겠다는 사람들 몇 앉혀두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면 녹음해온 걸 다섯 시간 여섯 시간 풀어쓰며 애썼던 이상한 인연이었다.

 

   ‘영원과 하루’라는 영화를 보면 내전과 전쟁과 혁명을 피해 망명했던 노시인이 고국에 돌아와 저자거리를 다니며 시어를 돈 주고 사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느끼기에, 시어의 압권은 집 없이 부모 없이 거리에서 떠돌던 아이가 함께 어울려 다니던 동네 형의 비참한 주검 앞에서 읊조리던 “음, 쌀마 아 쌀마 오 쌀마….” 소리였다, 한없이 부르던 그 이름, 오 쌀마 오 쌀마, 그 소리가 내 꿈에까지 쳐들어온 적이 있다. 배고픔과 추위와 수모와 슬픔이라는 언어들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몸에 새겨진 언어들은 이미 고통이라는 인두질을 통과해서 나온 것이기에. 그들이 이미 치른 대가에 대해 미안해하면서 받아 적으려 할 때 삶은 별안간 바뀐다. 구호물자가 아니라 바로 상대가 겪고 견디고 있는 삶이 구원이 솟아나오는 자리임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불현듯 깨어난다, 인생의 많은 순간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란 걸, 이 이상한 인연을 통해 실감했다.

 

 

   《문장웹진 12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