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의자의 가로 막대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긴 의자의 가로 막대

 

김혜나(소설가)

 

 

 

 

살금살금 걸어서 공원 가장자리에 설치된 긴 의자에 앉았다.

긴 의자는 네 사람이 앉을 만한 길이였고 중간쯤에 얼핏 봐서는

팔걸이처럼 보이는 딱딱한 가로 막대가 붙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눠 놓았을까요, 라고 묻자

눕지 말라는 의미죠, 라면서 무재 씨는 의미 모르게 웃었다.

 

_황정은, 『百의 그림자』 (민음사, 2010) 중에서

 

 

   기다란 벤치에 뚝뚝 박아놓은 가로 막대를 볼 때마다 소설 『百의 그림자』 속 은교와 무재의 대화가 떠오르곤 한다. 도심 한복판에 사십 년 된 전자상가는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공원의 벤치에는 딱딱한 가로막대가 생겨난다. 그것이 도시미화정책에 의해 노숙인들을 몰아내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느낌이 남았다.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민들레 문학 특강을 하게 되어 두레사랑의 쉼터를 찾았다. 서울역, 영등포, 명동, 충정로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노숙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이면에 어떠한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그들이 그곳에 있기까지의 과정이라든가,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한 것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직접 다가가 말을 걸거나 이야기 나눌 정도의 용기가 없어 늘 망설이기만 했다. 이런 나에게, 노숙인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퍽이나 매력적인 일로 다가왔다.

   쉼터의 강의실에 들어서니 사각형으로 마주보게끔 놓아둔 책상에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자 속속들이 수강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남자였고,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보였다. 그들 모두는 길거리에서 잠깐씩 보았던 노숙인들처럼 지저분하거나 위협적인 인상은 전혀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다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조용히 앉아 상대와는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글쓰기와 관련된 문학적인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며 30여 분 정도를 혼자서 떠들어댔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내 역량의 문제가 큰 탓이겠지만, 수강생들 대부분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며 이름이나 나이조차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까닭이기도 했다.

   특강은 총 4주간 진행되는 것으로 수강생들이 ‘민들레 문학상’에 응모할 수 있게끔 돕는 일이기도 했다. ‘나에게 집이란’으로 주제가 정해져 있는 상인데, 아무래도 응모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현재로서 집이 없는 노숙인들에게 집에 대해서 쓰라니…… 더군다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분들에게 ‘나’와 ‘집’에 대해 글을 쓰라고 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서영은 선생님의 「침낭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복사해 가 함께 읽으며, ‘집’이 주제라고 해서 꼭 물리적인 형태의 집에 대해서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거하는 장소는 어느 한 곳에 터를 잡고, 벽을 올리고, 지붕을 덮은 물리적인 의미의 집일 수 있지만, 내 영혼이 거하는 집, 즉 ‘나’의 몸에 대해서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담담하게 ‘나’에 대해서 쓰면 될 뿐이며, 그것이 ‘집’이라는 매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 드렸다.

   3주차 수업이 되어 각자 응모할 원고를 써서 수업 전에 미리 제출하는 과제를 냈다. 그러나 수업을 듣던 이들 중 글을 써온 사람은 세 명밖에 없었다. 그중 두 명이 시를 써와서 모두 다함께 읽었다. 먼저 한 명은 실재의 집이 아닌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꿈꿔온 집의 이미지를 운율에 맞게 써와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파도에 휩쓸리는 게 껍데기를 보며 자신의 현실과 마음을 이입하는 방식이 돋보이는 시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문을 써온 한 명은…… 아무런 수사도 이미지도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만 쭉 써온 것이었다.

   안양의 사글세방에 살면서 일용직 건설 막노동 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가 허리를 다쳐 일을 못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돈이 떨어지자 집 주인에게 쫓겨나고, 배낭 하나 짊어진 채 정처 없이 걷다가 그저 막연히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 걷기만 하다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잠시나마 누울 곳을 찾아 공원으로 갔다. 그러나 공원의 벤치 위에는 철심과도 같은 가로 막대가 뚝뚝 박혀 있었다. 그는 그 앞을 계속 서성이다가 차디찬 맨 바닥에 아픈 몸을 누이고 밤을 보냈다.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는 동안 왜 그토록이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길에서, 공원에서, 도시에서, 집도 없고 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을 몰아내고,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 설치된 벤치의 가로 막대. 돈이 있고,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누군가에게 그 벤치는 쾌적함이고 편안함일 수 있지만, 집도 돈도 가족도 없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그분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 살면서 읽어온 문학 작품들 중에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쓰인 소설도 있었고, 주인공 자체가 노숙인인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한 작가가 노숙인을 바라보거나 상상하며 쓴 것들이었다. 아니면 노숙 경험이 있는 이들을 취재하거나 며칠 정도 노숙 생활을 체험하여 쓰는 정도일 뿐이었다. 실제로 노숙인인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읽어본 일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분의 글에 화려한 문학적 수사나 기발한 발상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진실하고 투명한 ‘진짜’ 이야기였다.

   표현이 서툴거나 흐름이 어색한 부분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게끔 조언해 드리자 일주일 뒤 직접 퇴고한 글을 이메일로 보내 주시는 성의까지 보이셨다. 퇴고를 거치자 글은 이전보다 훨씬 더 읽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문학 특강을 통해 공적으로 만났던 분들이라 앞으로 다시 인연이 닿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건 어째서일까.

   쉼터에서 만난 분들의 글이 민들레 문학상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 하며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야기는 벤치 위에 막대처럼 우리를 가로막지 않고 이 세계에 남아 당신과 나를 끊임없이 이어줄 테니까 말이다.

 

   긴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우리를 가로막는 막대기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당신은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는다. 눈을 감는다. 나는 몸을 돌려 모로 눕고, 당신은 이야기 한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다. 나도 보이지 않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다. 당신이 없고, 나도 없는 밤.

 

 

   * 서영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문학동네, 2010) 수록

 

   《문장웹진 11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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