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문학특강 소감, 그리고…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민들레문학특강 소감, 그리고…

 

황규관(시인)

 

 

 

 

   노숙인들에게 창작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약간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창작 강의에 대한 약간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도중에 후회를 했던 기억도 떠올랐고, 무엇보다도 노숙인들의 세계와 대면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쩐지 그쪽 세계에 대해 한동안 무지 상태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내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지만 그분들에게 전해드릴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가 별도로 있을 리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심만 하다가 드디어 때를 맞았다.

  우리가 만나야 할 장소로 가는 길에서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 늘 그렇듯 어떤 두려움까지 생겼다. 일단 첫 시간은 내가 먼저 나를 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과연 그 분들이 내 상처의 개봉을 얼마만큼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고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밝지 않은 눈으로는 우리가 소통하고 있다는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기득권자가 아닌가 말이다. 모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내 무의식에 도사린 계몽 의지를 먼저 읽었을지도 모르고.

   글쓰기는 바로 상처에서 시작된다는 일반론을 나는 내내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집을 버렸건 아니면 집에서 버려졌건 바로 그 사태 자체도 삶이고, 그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서 글은 시작된다고. 우리의 삶은 생명이 외화된 형식일 뿐이며 글이란 것도 결국 자신이 겪은 사건과 시간을 언어로 받아 적는 것이라고. 문장 한 줄 한 줄을 만드는 지도는 피하고 싶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이 계기가 되어 글쓰기에 대한 능동성을 발현시켜 주고 싶었지만 결국 내 기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공모전의 형식을 통해서 동기부여를 주는 것에는 현실적으로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다만 4회의 만남으로 글을 쓰게 하고, 또 문장을 지도하는 일이 내게는 무척 버거웠다. 문학을 시작할 때 나 또한 세속적인 욕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기쁨이라는 정념이 강렬했던 탓인지 그것을 맛보지 못하는 글은 쓰지 않는 게 낫다는 오랜 소신이 내겐 있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뭔가 헛발질을 했다는 느낌이 온 건 세 번째 강의를 마치고서였다. 우리 학급은 못난 선생에게 아무도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았다. 주중에 한 분이 시를 한 편 메일로 보내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까? 사실 글쓰기 역시 발심이 문제다. 아니 발심의 문제라기보다는 밖으로 분출하지 않을 수 없는 내면의 화산이 얼마나 절절하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분출 방식이 꼭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한 글쓰기는 가장 원초적인 자기표현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가장 즉흥적인 게 노래이긴 하지만, 감정의 고양을 넘어 이성적인 사유까지 가능한 것으로는 글쓰기만한 게 없을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가늠해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러니까 그리 과장된 망상만은 아니다.

   4회에 걸쳐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며 누구나 잠재적으로 시를 품고 산다는 것이었다. 시는 확실히 문학 이전이다. 시는 확실히 문학의 대지와 같은 것이다. 왜냐면 잠재된 상태의 시는 방향 없는 회오리와 같은 것이고, 멜로디 없는 음악과 같은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그것의 질료는 바로 우리들이 가진 상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글을 쓸 자격과 준비가 충분한 것이라고. 그러나 확실히 글을 쓰기 시작하려면 많은 고민과 번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그것을 이끌어내는 게 교사의 책무인데 우리 학급은 확실히 초보 교사를 만난 것이다.

   강의 마지막 날, 나는 약간의 홀가분함과 약간의 몸살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날 내게 제출된 과제물은 세 건이었다. 이제 이것을 직접적으로 이끌어주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대신 우리는 왜 우리가 이렇게 모여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지, 또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절반은 교사에 대해서 또 절반은 현 프로그램에 대해서 성토(?)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조금 더 강한 지도를 원했으나 거꾸로 교사는 학생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던 어긋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혼자 생각하기를, 우리가 작품을 향유하는 과정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기록하게 하는 의도를 갖고 있음은 깊이 공감하는 바였지만 뭔가가 우리들 사이를 휑한 간극으로 채우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마지막 시간은 이러한 상념이 가슴을 가득 메웠으니 명백하게, 그리고 더더욱 지난 시간보다 실패한 수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삶을 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며 동시에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도 확인하였다. 아마도 이게 내가 이번 프로그램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집을 잃어버린 삶과 집에 악착같은 애착을 가진 사람의 정서는 그 차이가 너무도 크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집에 대한 관념 자체도 본질적으로 다를 터이고. 여기서 내 혼돈이 시작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러한 토대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만은 아무리 폄훼하려 해도 그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그 토대가 얼마나 넓고 또 얼마나 깊은지는 서로 숙고해볼 문제로 남았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왜냐면 쓰기에 대한 간절함의 강도랄까, 아니면 삶에서 우선순위 같은 게 각자 다를 수밖에 없는 게 또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시간은 갔고 어떤 시간은 왔다. 그러나 또 미지의 시간은 우리의 삶 저 안쪽에서 으르렁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누는 계기를 갖는 것이 연대의 요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혜나 가르침이나 명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가파르게 맞세워보는 것. 그 차이로 인해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을 던져보는 것. 그 어지러움 속에서 해방의 기미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등등이.

 

   《문장웹진 11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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