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정원과 글쓰기의 미

 

   사유의 드로잉_제3회

 

 

일본식 정원과 글쓰기의 미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내가 교토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혹은 도시 전체가 일본 전통문화의 정수로 정교하게 꾸려진 그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곳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길가 하수도를 덮고 있는 대나무 덮개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참 아름다웠다고. 직사각형 하수도 구멍에 딱 맞는 길이로 잘린 중간 두께의 대나무들이 군더더기 없이 일렬로 반듯하게 묶여 있는 그 덮개에서 나는 일본인들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취향을 보았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 문화를 표상하는 하나의 기표처럼, 여름 끝자락 어느 날 대낮의 햇볕 아래를 걷고 있는 이방인 여행자에게 다가왔다. 물론 그것은 하찮은 하수도 덮개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아니라 자연물을 조금 이용해 생활의 때 끼고 그늘진 곳을 가리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꽤 미세하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날것의 상태를 인공의 상태로 심미화하는 일본인들의 오래되고 독특한 감수성이 그 하찮은 것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나는 당시 대나무 하수도 덮개를 하나의 미학적 지표로 삼아 교토의 금각사 금칠(金漆)을 보고, 은각사 모래정원과 뒷산 소나무들 사이에 숨은 듯 전시된 이끼들을 봤는지 모른다. 혹은 후자, 즉 조바심 날 정도로 조심스럽고 예민한 인간의 손길로 빚어진 건축물, 사물, 심지어 풍경 전체에 충분히 기가 질린 나머지, 주택가 여느 집 앞에 조용히 깔린 대나무 하수구 덮개에서도 다소 우스운 일이지만 어떤 미학을 발견했던 것인지 모른다.

   일본 헤이안 시대인 11세기 중반 궁궐 건축과 수리 담당 관료였던 다치바나노 도시쓰나(橋俊綱)가 정원 만드는 기술을 모아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사쿠테이키(作庭記)』(김승윤 역, 연암서가, 2012)가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 덕분에 시공과 언어의 다름을 넘어 지금 여기서 한국어로 편안히 그 책을 읽게 된 내게 꽤 인상 깊게 새겨진 문구는 ‘돌을 놓는 법’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일본어로 ‘이시오타텐코토(石をたてん事)’를 번역한 이 말은 직역으로는 “돌을 세우는 일(石立)”이란다. 다만 정원 일에서는 돌을 가지고 단지 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눕히는 등 여러 작업 방식이 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놓는다’는 역어를 선택했다 한다.

   그런데 중세 일본인 저자 또는 당시 건축과 조경을 관장하던 이들 사이에 ‘세우다’라는 동사가 쓰였을 때는 그만한 맥락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령 ‘세우다’는 단지 정원에 돌 하나 배치하는 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그보다는 인간 행위자가 이미 있는 것에 따르되, 특별한 뜻을 세워 대상에 의도를 갖고 인위적인 변화를 가하고, 그렇게 해서 산수(山水)가 ‘그저 그렇게 있는 것(自然)’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文化)가 되도록 하는 것, 그 일련의 태도와 정신과 실천을 ‘세우다’에 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책에서 마주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러한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땅과 연못의 모양에 따라 각 장소에 맞는 풍정(風情)을 구상하면서 자연풍경(生得の山水)을 회상하여, ‘그 장소는 이와 같았구나’ 하고 견주어 생각하면서 정원을 만들라.”(33쪽)라든가 “소나무 껍질 모양은 소나무 껍질 찍기처럼 파편 모양들 사이에 홈이 있어야 한다. 돌이나 식물을 배치하는 것은 작정자[정원 만드는 이]의 뜻에 달렸다.”(51쪽)가 그렇다.

   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있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 최선”(53쪽)이라고 조언하는 대목이나 “‘도망가는’ 돌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쫓아가는’ 돌이 있어야 한다. 기대는 돌이 있다면 그것을 지지해 주는 돌이 있어야 한다. 몇몇 돌이 위를 향한다면 다른 돌은 아래로 향해야 한다. 서 있는 돌이 있다면 누운 돌이 있어야 한다.”(71쪽)고 가르치는 대목이 그렇다.

   자연 질서를 따른다는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독특한 분위기를 인간 상상력으로 구상해서 그것을 다시 자연과 비교하라 하고, 대상의 외관을 모방해 만들되 전체는 만드는 이의 뜻에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떨어지는 방식처럼 지극히 물리적인 현상조차 개인의 취향을 강조하며, 그저 존재하는 돌들에 인간적인 의미와 의지를 투사해 관계를 엮어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쿠테이키』의 저자는 그 문장들을 통해 정원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배워 세상에 뜻을 세우며, 자신의 의지와 취향에 따라 삶을 조직하고, 여러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사는 인간 기술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순히 언어 표현법상의 차이에 주목하든, 아니면 해석의 차이를 통해 오늘날 거기서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든 간에 ‘돌을 놓는다’ 또는 ‘돌을 세운다’는 것은 천 년 전 일본식 정원 만들기에서는 금과옥조, 알파이자 오메가였음에 틀림없다.

   나는 일본식 정원 만들기를 다룬 일본 고전 문헌을 읽으며, 새삼 수년 전 교토라는 도시의 풍경과 문화를 경험할 때 들었던 생각의 편린을 다시 꺼내 본다. 이 글의 첫머리 얘기는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내 글은 한편으로는,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교토 자체, 명승지 풍경 일반, 주택가의 그 대나무 덮개)에 특정한 인상을 받고 그 대상들에 대해 내 뜻을 세우고 일정한 언어들로 글짓기를 해 만든 질서(‘일본의 미학에 관하여’ 따위)의 세계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과거에 직접 경험한 세계와, 시공간을 초월해 정원 기술을 담은 책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내게 경험시켜 준 세계의 공존 ? 융합 ? 교차 속에서 내가 이러저러한 의미부여를 시작하고, 전체 맥락을 구상하며, 어떤 기억의 단어는 선택하고 어떤 문장 형식은 기피하면서 짜나간 직물(텍스트)이다. 요컨대 그 글쓰기 과정은 굳이 ‘일본’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고전 일본 정원을 만드는 이의 작업방식이나 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내가 일본식 정원 만들기와 글쓰기를 비교했다면, 흥미롭게도 1960년대 말 바르트는 일본의 식사 양태를 글쓰기와 유비시켰다. 일본을 기호학적으로 푼 한 책에서 그는 두 행위가 “우주에 위계질서를 부여하는 심오한 공간”에서 행해진다고 주장한 것이다(Roland Barthes, L'empire des Signes, 김주환 ? 한은경 역, 『기호의 제국』, 민음사, 1997, 22쪽).

   바르트는 일본 문화에서의 식사가 물질의 축소된 세계 안에서 ‘흔들리는 기표’를 취사선택하고 음미하는 행위라면, 글쓰기는 ‘불확실한 언어에 기초’하면서 그 모호하고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쾌락적 행위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음식 섭취 행위는 최소한의 손질만 가해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 평평한 상에 오른 올망졸망한 요리들을, 먹는 이가 젓가락질로 먹는 순서나 양을 정하고,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외면하는 선택을 해가며 완성하는 다층적 공간이자 ‘흔들리는 기표’의 자리 잡기다. 또 글쓰기는 그런 평면(그러니까 밥상 같은 평면이자 원고지의 평면이고, 모니터의 평면인) 공간 위에서 글 쓰는 이가 언어를 맛보고, 선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공간을 다층화하고 특정한 기표들을 붙잡는 일이다. 그 점에서 둘은 ‘우주에 위계질서를 부여하는 심오한 공간’을 무대로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우주까지 들먹이는 바르트의 주장은 과장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글 쓰는 입장에서 말하건대, 사실 그 행위의 공간은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보편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시제(時制)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이거나,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 직접적이든 은유적이든, 모방이든 내 뜻을 세워서든, 파편이든 관계를 구성하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식과 지각 행위가 실행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주에 버금간다. 마치 일본의 길거리 하수구 위로 대나무 덮개가 놓이듯이, 일본식 정원에서 돌이 놓이듯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쓰고 있듯이.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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