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인간

 

[연재 에세이]

 

 

고독한 인간

― 사막의 미학 1

 

김태형 (글/사진)

 

 

 

 

 

  어워, 고대의 존재론

 

  아무런 감동도 설렘도 없이 보낸 지난밤의 불편한 잠자리 때문이었는지 한시라도 빨리 울란바토르를 벗어나고 싶었다. 웃통을 벗어부친 덩치 큰 사내들이 문을 열어 놓고 마작을 치는 모습도, 밤늦게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튀어나온 어느 유럽 여자의 앙칼진 외국어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좁은 발코니에서 녹슨 철제 난간에 기대지도 못한 채 바라본 밤하늘도 역시 그저 철거를 기다리는 빈 건물처럼 어둠 속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매연과 공장지대 굴뚝에서 뿜어대는 온갖 오염된 공기로 가득한 울란바토르를 빠져나오자 둥근 언덕이 솟아 있었다. 언덕 너머로 초원과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길이 이어져 있었다. 언덕은 다른 세계와 만날 때 경계를 이룬다. 그러나 이쪽도 저쪽도 어느 곳으로든 구분 없이 넓고 아득히만 멀어질 때 언덕은 홀로 솟아오른다.

  언덕 위에 커다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어워’라고 부르는 돌무더기 한가운데에 버드나무를 세우고 푸른색의 천 하닥(Hadag)을 묶어 놓았다. 하늘과 땅의 정령 로스 사브다크(Lus-Savdag)가 머무는 곳이었다. 어워는 다른 세계와의 경계 지점이다. 지나가는 이들이 남긴 기원과 이미 지나간 이들의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언덕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성한 장소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어떤 초월적인 실재에 참여하고 있는 한에서만 자기동일성과 실재성을 획득한다.”(『영원회귀의 신화』) 원초적인 것, 이미 이루어져 완결된 행위들을 지금 다시 영원토록 반복해야만 삶의 의미를 얻게 된다. 이 고대의 존재론은 자율성과 내재적 가치를 부정한다.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부여된다.

  그렇듯이 나 역시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많은 돌들 중에서 어떤 돌 하나가 신성해지는 것은―그럼으로써 즉각 존재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그 돌이 신성의 현현(顯現)이거나 마나(Mana)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돌을 하나 들었을 때, 기억은 완강하게도 내가 알지 못했던 실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작은 돌을 하나 옮겨다 놓으며 나는 영원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바쁜 이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대체로 이 어워를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고서 길을 지나간다. 인공호수 둘레를 거꾸로 도는 파워워킹과 반대 방향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왜곡하려는 것이 문명이듯이 늙고 병들고 소멸하는 그 생명의 원리를 부정하는 인간의 욕망이 거꾸로 도는 방향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워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난석(亂石)들 사이에 말의 머리뼈, 빈 보드카 병, 색 바랜 지전, 목발 등이 함께 쌓여 있었다. 말을 타고 밤새 먼 길을 내달리다가 돌아오던 지난날의 기억이 햇빛 속에 가득했다. 어젯밤의 흥겨운 취정(醉情)도 간절한 기원도 사랑도 슬픔도 모두 고요히 놓여 있었다. 푸른 하닥은 하늘이 떠밀려가지 않도록 세찬 바람을 붙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파른 것은 햇빛뿐이었다. 누군가 죽은 말의 뼈를 등에 이고서 이 바람 한 점 없는 햇빛 속을 걸어왔을 것이다. 다시는 밤의 그 푸른 바람을 타고 내달리지 못하겠지만, 다 해진 말꼬리 몇 가닥이 바람소리를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바람은 고요해지고, 그 가파른 자리를 높은 햇빛이 대신하고 있었다.

  바람이 고요해진 자리에 낮은 풀이 돋아날 것이다. 버드나무를 세우고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하닥을 걸어 놓았으니 하늘도 바람 부는 곳으로 떠밀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퉁구스어도 튀르크어도 모두 작은 돌을 하나씩 들어 바람을 눌러 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가져간 게 없었다. 버려야 할 것도, 용서할 것도, 그 어느 것도, 어쩌면 영원이어야 했을 사랑마저도, 이제는 내게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대신 돌을 하나 들어 옮겨 놓았다. 해가 뜨고 지는 만큼만 갈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그리움처럼 침묵해야만 된다고 먼 구름만 바라보고 있었다.

  옹고드(Ongod)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모태와 기원을 의미하는 ‘옹고(ongo)’에 복수형 접미사 ‘-d’가 붙은 말이 옹고드다. 신령(神靈)과 그 신체(神體)를 이르는 옹고드. 이 근원의 땅에서 태초의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의미로 솟아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줌의 붉은 먼지와 햇빛과 흘러가는 구름처럼 급기야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곳.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햇살에 푸른 정맥이 돋아난 하늘 아래 어워를 세 번 다 돌고서도 내 귀에는 여전히 바람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누가 부르는 소리였을까. 이 언덕을 넘지 못한 채 되돌아서더라도 결코 이전의 세계로 갈 수는 없었다. 죽은 말이 높은 바람을 불러도 이곳에서는 구름조차 멀고 아득했다.

 

 

  바가 가즈링 촐로

 

  둥근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신비로운 땅이 있다. 바가 가즈링 촐로(Baga Gazrin Chuluu). 이곳의 말로 ‘땅 위의 작은 돌’이라는 뜻이다. 사막에 들어가려면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 폐허가 된 사원 뒤쪽으로 푸른 하닥을 걸친 나무들이 높이 자라 있었다.

 


  오래 전 이곳에 지나가는 이들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지만 성스러운 땅에서 나무들이 솟아올라 건물을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그 나무들이 푸른 하닥을 걸치고 폐사지를 지키고 있었다. 사막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나무들에게 제 옷자락에 묻은 바람 한 자락씩 꺼내어 걸쳐 놓고 가야 한다.

  그리고 다 허물어진 사원의 낮은 골짜기를 나와 언덕 위의 샘물을 찾아가야 한다. 근처 낮은 언덕 위에 손바닥 반도 못 될 정도의 작은 돌로 바위 구멍을 막아 놓은 곳이 있었다. 이 커다란 바위 언덕 아래로 마르지 않는 물줄기가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어떻게 바위 안쪽까지 샘물이 고였을까.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구부러진 수저를 바위 구멍 속에 넣고 샘물을 떠낸다.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시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시력이야 공중을 선회하는 푸른 허공의 매와 같다지만 누구에게나 세월은 흘러가는 법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이 아니면 이 샘물은 눈을 멀게 한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눈이 맑고 밝은 이곳 사람들은 지평선을 건너다볼 수 있지만 샘물로 눈을 씻지 않은 외지인은 제 눈앞의 황량한 아름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광인이 되어 다시는 두 눈을 뜨지 못한 채 떠돌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 샘물로 두 눈이 멀고 나면 사막을 지나는 동안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할 것이지만, 사막을 다 지나갈 무렵 지평선을 향해 무릎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면 다시 두 눈이 맑게 떠진다.

 


  파멸의 본질은 단조로움에 있다. 더 황량하고 지극히 메말라 형체를 잃은 것들은 아름답다. 그 폐허는 혼돈의 상태로 돌아가는 중이다. 성스러운 시간은 그 어떤 영원을 현재화한다. 그러나 나는 광야를 떠도는 미치광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 수저의 샘물로 두 눈을 씻고, 새파랗게 눈먼 사내가 되어 나는 사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고독한 인간이 비로소 은빛 사막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저물녘, 다른 감각

 

  거꾸로 매달아 놓은 페트병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 넣었다. 마개를 돌리면 조금씩 물이 흘러내렸다. 저녁이 오는 시간보다 빨랐다. 물 한 줌 겨우 받아서 귓속까지 모래와 먼지와 남은 한 자락 햇빛마저 씻어냈다.

  손바닥에 받은 한 줌의 물이 딱 그만큼의 얼굴을 씻어내고도 바닥에 흘러 그 무게로 지구 반대편까지 스며들어서 늦은 저녁을 데려왔다. 내가 몰랐던 어떤 얼굴을 데려왔다. 모든 게 용서되는 시간이었다.

 


  바람이 쌓아올린 모래산의 무게로 지하수는 차고 넘쳐 고이겠지만 물결은 그저 바람에 곧 사라질 무늬 하나를 올려 줄 뿐이지만 모래를 가라앉힌 물 한 줌 받아서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깊은 저녁이 오기도 한다.

  어둠 속으로 곧 사라지려는 어스름의 붉은 시간은 이상하게도 맑고 투명했다. 한낮의 분명했던 사실들이 뒤쪽으로 사라지면서 만들어내는 흐린 시야는 일부러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처럼 그 어느 것도 바라보지 않았다. 수건을 목에 걸고,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맑게 씻은 낯선 얼굴로 게르(Ger)의 지붕 위로 내려앉고 있는 석양을 건너다보는 것은 한 덩어리의 어둠이었다.

  이미 석양의 화려한 몰락조차 한참을 지나온 듯 그 아름다움을 건너다볼 수 있을까. 한줌 손바닥에 받아든 물빛이 여전히 내 눈동자에 고여 있었다. 맑거나 환한 그런 빛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워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빛이었다. 낡거나 오래되어 어둡고 탁한 어스름의 석양빛이 내 얼굴에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곧 사라져 보이지도 않을 투명한 빛은 애써 사라지지 않기 위해 몸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어스름 속에 내가 스며들지 않고, 내 속으로 어스름이 들어앉았다. 하지만 이 빛의 투명함은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어스름은 바라보거나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온 사방에 고요히 밀려드는 어둠처럼 어느 한 곳을 자세히 응시할 수 없듯이 이 출렁이는 빛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처럼 가까스로 인식될 뿐이었다.

  전혀 다른 감각이 깨어나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로 걸어오는 그 발걸음 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이내 그 발걸음 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소리의 한 가닥을 애써 따라간 것은 절망스런 탄식일 것이다. 또 다른 감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어스름이 몸속에 들기 전에, 그 어스름 속으로 한순간 사라지기 전에 나는 그 무엇이라도 붙들고 싶었을 것이다.

 


 

 

  연두색 나의 텐트

 

  텐트에 달아 둔 랜턴이 저만치 어둔 벌판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 불빛 아래 나는 내 그림자로만 앉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곤한 몸을 바닥에 누이고 나면 지평선에서부터 걸어오는 먼 발자국 소리마저 다 내게로 오는 듯이 들릴 것이었다. 이내 지나치는 소리를, 별자리도 없이 드러누운 내 그림자를, 바람마저 자박자박 걸어오는 듯한 낯선 밤을, 나는, 마주하고 있을 것이었다.

  다른 지평선에서 이 불빛이 보인다면 낮게 내려앉은 별자리 하나를 누군가 멀리까지 이어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평선을 보려고 온 게 아니었다. 그 무엇이든 잃어버리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나 때문이듯 별자리가 되지 못한 것들을 애써 이어 보고 있었다. 턱을 바짝 치켜들며 별은 뜨고, 사막에서 사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밤하늘을 넘어서려고 별은 또 제 높이로만 가파르게 떠오르고 떠올랐다.

  돌과 시든 부추꽃과 먼지 묻은 풀들이 듬성듬성 돋아 있는 황무지 위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 누웠다. 먼저 들어와 있는 날벌레들을 어찌할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바닥을 쓸고 누웠다. 별은 결코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다. 불빛을 따라온 밤벌레들이 타닥타닥 툭툭 텐트에 부딪치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희미한 랜턴 불을 끄자 방충망 위로 어느 옛 부족이 지나갔는지 새로 생긴 별들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흉노족이 지나가고 화적떼가 온 세상을 불 지르며 지나가고 어떤 생각 하나가 뒤늦게 또 지나가고 있었다. 마른 먼지 가득한 별의 발걸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그렇게들 지나가고 있었지만 나만 홀로 밤을 지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갈 수만 있다면, 어디 암청색 높은 산맥 아래 고요한 그늘이 있다면…… 나는 생각했다. 모든 피로를 잊고서 한시름 놓아 주며 편안히 잠들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런 곳으로 언덕을 넘어가려 했지만 그곳으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길을 멈추면 그곳에 먼지처럼 햇살처럼 내려앉아 작은 풀꽃인 듯 길켠에 아무렇게나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어딘가로 홀린 듯이 자꾸 건너가려고만 했다.

  수런거리는 별빛이 내 몸을 바람 속에 옮겨 놓고 있었다. 바람 속에서 비로소 내 몸을 얻게 된 듯이 천천히 흔들리며 잠들어 있었다. 그러자 내 귓가로 모래언덕이 걸어오는 소리와 햇빛을 타고 솟아오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온갖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멀고도 먼 지평선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호수가 있었다. 나는 호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은빛 물결이 내 몸을 감싸 주었다. 물결이 귓가로 차오르면서 지상의 온갖 소리들이 일시에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결은 조용히 내 몸을 흔들었다. 드넓은 초원처럼 고요했다.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반짝였다.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눈을 떴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천 년이 흘러가 버리기를, 황무지의 그늘 한 점 없는 바람이기를 나는 기다렸을 것이다. 여전히 한 점 붉은 먼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불길한 침묵으로 남을 것이겠지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조차 잊을 테지만, 그러는 동안 별들이 게르를 지고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밤의 지평선이 사라지는 곳으로 나는 가지 못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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