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

 

  〈작가가 읽은 책〉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

 

김중혁

 

 

 

 

 

  부담스러운 꼭지명이다. 작가 ‘가’ 읽은 책이라니, 책 한 권 소개하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작가 ‘도’ 읽은 책이라거나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읽은 책이었다면 마음 편할 텐데, (자그마치) 작가 ‘가’ 읽은 책이다. 주어로 박혀 있는 ‘작가가’가 머리를 짓누른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당연히 좋은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작가님, 책 좀 추천해 주세요”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가 지끈거려서 “음, 차라리 음반을 추천해 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되묻게 된다. 음악이야 내 전공 분야가 아니니 마음껏 추천할 수 있다. 들어 보세요, 들어 봤는데 별로면, 뭐, 할 수 없는 거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추천했다가 별로라는 반응을 들으면 나의 글쓰기마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오해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김중혁 작가의 글이 요즘 들어 계속 재미가 없어진다 했더니, 이런 책을 읽어서 그런 거였어. 쯧, 쯧, 쯧, 실망이야.”라는 말을 누군가 하게 된다면 어쩌나 싶다. 무서운 일이다.

  좋은 독자이면 좋은 작가가 될 확률이 높고, 좋은 작가라면 좋은 독자일 가능성이 많다. 잘 읽은 걸 바탕으로 잘 쓰게 되고, 잘 쓰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다른 사람의 글도 정확하게 읽어내게 마련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글을 쓰는 작가는 대부분 좋은 독자이기도 하다. 물론 확률이 높을 뿐 모두 그렇지는 않다. 나는 좋은 글을 쓰는 작가지만 (여러분, 이거 모두 거짓말인 거 아시죠?) 좋은 독자는 아닌 것 같다. 좋은 독자는 책의 초반부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조금은 작가를 봐주며, 작가가 부분적으로 실수를 한다 해도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반드시 찾아낸다. 좋은 독자는 책의 단점을 덮어 주고 장점을 칭찬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끈기가 필요한 셈인데 내게 가장 부족한 게 바로 그 두 가지다.

  나의 책읽기는 소설로 가기 위한 통로일 때가 많다. 소설을 쓰기 전 서점에 가서 필요한 책을 잔뜩 사가지고 오는데, 대부분 실용서다. 『피아노 조율사 자격증 시험문제집』 같은 완전 실용서도 있고 『도시의 승리』 같은 인문학적 실용서도 있고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같은 과학적 실용서도 있다. 소설 자료로 사온 책들을 열심히 보는 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슬램덩크 강백호 씨의 명언처럼) 농구 경기에서 슛을 쏠 때 왼손은 거들 뿐이고, 소설을 쓸 때 자료도 거들 뿐이다. 거드는 걸 넘어서서 자료로 슛을 쏘게 되면 공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자료를 사오는 이유는 그 책들이 소설의 점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휘리릭, 후닥닥, 책장을 넘기며 자료를 읽다 보면 못 견디게 소설이 쓰고 싶어져서 ‘에잇, 자료야 소설을 쓰는 도중에 보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막상 소설이 시작되면 소설에 푹 빠져서 자료를 볼 틈이 없고 나도 모르게 소설이 끝나버릴 때가 많다. 소설이 끝나면 자료로 사온 책들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게 마련이다.

  소설이 끝나면 완전한 유흥의 목적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그때 골라드는 게 범죄 소설이나 SF소설들이다. 엘모어 레너드나 스티븐 킹, 커트 보네거트, 레이몬드 챈들러, 대실 해밋 같은 ― 최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쪽으로 넘어온 듯 ― 분들이 유흥의 목적으로 읽는 작가들인데, (이분들, 이런 얘기 들으면 섭섭하시려나?) 과도한 은유나 상징도 없고 페이지도 술렁술렁 넘어가는 게 시간 보내기에 딱 좋다.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앉아서 과자 한 봉지 열어 놓고 책을 읽고 있으면 ‘그래, 이런 게 독서의 참맛이지’라는 감탄사를 내뱉다가 ‘아, 참, 나는 소설가였지’라는 걸 깨닫고는 명색이 소설가인데 좀 더 의미심장한 책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잠시 망설이지만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고 만다. 그래, 작가라고 특별한 걸 꼭 읽을 필요는 없잖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작가가 읽은 책’이라는 꼭지명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최근에는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을 읽었다. 『붉은 수확』은 대실 해밋의 첫 장편소설이다. 대실 해밋의 작품을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붉은 수확』에는 대실 해밋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감정이 폭발하고 폭력이 폭발하고 모든 게 폭발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책으로 나오기 전 출판사의 요청으로 폭력적인 장면의 수위를 낮췄다는데, 도대체 원본은 얼마나 더 에너지가 넘쳤을까.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이 광산도시 퍼슨빌에서 펼치는 온갖 사건과 살인이 소설의 소재이자 주제이자 스타일이다. 표현할 때는 망설이는 법이 없고, 대화의 속도는 인물들의 감정보다 빠르며, 사건의 전개는 숨쉴 틈 없이 바쁘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한두 문장에서 덜컥 뒤통수를 맞을 때도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다.

 

 

  거친 목소리였다. 가슴에 품은 말은 너무 많은데 그 작은 입은 모든 걸 차분하게 설명하기에 너무 벅차 보였다. (27p)

 

  비서는 입술을 깨물더니 죽은 남자가 쓰던 책상의 반들거리는 모서리를 따라 집게손가락으로 지문을 찍으며 소곤거렸다. (34p)

 

  숨가쁘게 달려 나가다가 갑자기 한 박자 죽이면서 이런 묘사를 하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대실 해밋은 인물 묘사와 농담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 묘사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을 직접 데려와서 세워 둔 것 같고, 무덤덤하면서 시니컬한 농담을 읽고 있으면 어째서 레이몬드 챈들러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사람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불균질하고 덜컹거리지만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완전한 유흥의 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지만 어느 순간 유흥은 감탄으로 바뀌고 만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책을 읽고 “역시 김중혁 씨는 이런 책들을 읽더니 갑자기 『좀비들』 같은 장르소설을 쓴 게로군.”이라며 나를 오해하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고, 걸작이며, (그렇게 책을 안 읽는) 김중혁 ‘작가도 읽은 책’이라는 소개만 하고 싶을 뿐이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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