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이고, 구체적이며, 지속적인 우리의 생활을 위하여

 

[최창근의 쉽고 재밌는 희곡 이야기_세번째]

 

 

근본적이고, 구체적이며, 지속적인 우리의 생활을 위하여

─ 일상의 연극을 대표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현대 극작가들

 

최창근(극작가)

 

 

 

 

 

활.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국민 작가 임어당의 수필에 ‘생활의 발견’이 있고 한국의 영화감독 홍상수는 그 제목을 그대로 빌려와 동명의 영화를 찍었다. 생활.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그 속에서 발견을 하라는 건? 생활의 발견. 다시 말하면 그것은 ‘생활의 (재)발견’이라는 뜻이리라.

활. 고백하자면 나는 생활 무능력자 내지 금치산자에 가깝다. 생활능력은 둘째 치고 생활에 대한 감각 자체가 무디다고 말해야할까. 방안엔 먼지뭉치들이 굴러다니고 형광등의 한쪽은 불이 나가 있다. 책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옷들은 켜켜이 쌓여있으며 빨래더미들은 늘 수북하다. 밥은 해 먹은 지 오래고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김치들은 죄다 쉬어버렸다. 어찌할 것인가. 생활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진정 어찌해야 하나.

찍이 겉은 화려하고 그럴듯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루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이 소소하면서도 생생한 생활에 주목한 작가들이 있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들은 어느 날 문득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러한 유행은 한국에서는 이제 시작인 듯도 하다.  

 

 

내노동』,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 지음, 이정준 옮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잘 알려진 독일의 현대 극작가는 누구일까? 아마도 시인이자 연출가이기도 한 서사극 이론의 창시자 브레히트일 것이다. 무대 위에 오른 횟수를 살펴보면 미완의 작품이긴 하지만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그 뒤를 이을 것이다. 기록극의 효시로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마라/사드」의 작가 페터 바이스나 「관객 모독」이라는 희곡으로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한 페터 한트케, 예술적인 파괴와 경계 넘기를 통해 전 세계적인 ‘뮐러 붐’을 일으킨 하이너 뮐러도 연출가들의 흥미를 끄는 대상일 터이다. 「만리장성」과 「안도라」의 작가 막스 프리쉬, 「노부인의 방문」을 쓴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와 함께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공동각색과 작품해체로 반연극의 길을 걸어간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도 눈여겨봐야겠지만.

자연주의 작가로 불리는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는 독일 현대극작가들 중에서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등장한 전후 세대에 속한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독백으로 가득 찬 드라마를 썼던 보토 슈트라우스나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참여문학으로 선동적인 페미니즘을 부각시켰던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같은 세대의 작가들이다. 크뢰츠는 배우로 출발했지만 밑바닥 생활과 막일을 거친 후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독일사회에서 소외된 계급에 관심을 가졌지만 점차 평범한 중간층의 노동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20장면의 반(反)대사적 희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가내노동」은 1971년의 초연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크뢰츠의 대표적인 출세작이다. 이 희곡의 일차적인 표현수단은 대사가 아니라 행위다. 그 행위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등장인물인 가내수공업자 빌리의 직업 활동, 정원 작업, 목욕 등을 가리킨다. 일반적인 대사연극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분량의 대사로 그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남편의 낙태 시도, 그리고 이어지는 갈등과 가출, 종래엔 가정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아기를 살해한다는 이야기에 지나치리만큼 노골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섬뜩한 충격을 안겨 준다.

3막의 희곡으로 구성된 「오버외스터라이히」의 제목은 독일의 바이에른 주와 접해 있는 오스트리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주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고지 오스트리아’로 번역되기도 한다. 아무 문제가 없을 듯싶은 한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이러한 갈등이 남편의 정체성 문제로 비화되고 급기야 아기를 갖게 되면서 생기는 경제적 손실과 그에 따른 소비 수준의 하락이 가져올 두려움으로 발전하는 이 작품은 크뢰츠의 희곡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들이 관람한 희곡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냉정하게 포착한 「가내노동」과도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엿보인다.

뢰츠는 88 서울 올림픽 당시 독일의 기자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그의 희곡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작품은 모두 세 편. 표현주의 극작가 에른스트 톨러의 「절름발이」를 번안한 「거세된 남자」(1987년, 극단 민중극장, 정진수 연출)와 기술의 진보와 인간의 본성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입장을 그린 「수족관(원제는 ‘생선도 육류도 아니다’라는 뜻)」(1988년, 극단 현대극장, 김광림 연출) 그리고 「오버외스터라이히」를 번안한 「아이를 가지다」(2006년, 극단 동, 강량원 연출)와 「경남 창녕군 길곡면」(2008년, 극단 백수광부, 류주연 연출)이다.

 

 

느 여인의 초상』, 미셸 비나베르 지음, 윤광진 옮김, 예니

나먼 아공당주』, 장-폴 벤젤 지음, 이선형 옮김, 연극과 인간  

 

 
 
 
『어느 여인의 초상』,

미셸 비나베르 지음,

윤광진 옮김,

예니

 
 
 
『머나먼 아공당주』,

장-폴 벤젤 지음,

이선형 옮김,

연극과 인간

 

케트 이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의 현대 극작가는 「아트」와 「스페인 연극」, 「대학살의 신」 같은 작품에서 다분히 대중적인 감각과 취향을 선보인 야스미나 레자를 제외한다면 아무래도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일 것이다. 「로베르토 쥬코」를 시작으로 그의 일련의 희곡들, 이를테면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1983), 「서쪽 부두」(1986),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1987) 등이 차례로 번역됐고 중견연출가 기국서를 중심으로 한 76극단의 후예들인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과 극단 죽죽의 김낙형 연출에 의해 모두 무대 위에 올라갔다. 콜테스가 품고 있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전복의 이미지가 연출가들이 추구하는 반/미학의 방향성, 그리고 뒤틀리고 일그러진 한국사회의 모습과 묘하게 맞아떨어져서일 것이다. 프랑스 현대극에서 콜테스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엘렌 식수와 같이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젊은 극작가 중 한 명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터이다.

랑스의 현대극은 실존철학을 반영했던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와 혁명과 전위를 내세웠던 부조리극의 대가들 이를테면 사뮈엘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 아르튀르 아다모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의 지방 분산화를 유도했던 장 빌라르, 국립민중극장, 로제 플랑숑과 총체극에 관심이 있었던 장-루이 바로, 장 즈네, 집단창작에 열을 올렸던 아리안 므누슈킨과 태양극단 등이 자기만의 다양한 목소리를 냈던 시기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1968년 5월, 불꽃처럼 타올랐다 스러졌던 68혁명이 자리하고 있다.

68혁명은 이념과 사랑의 결합 속에서 탄생한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1970년대로 들어서자 혁명의 열기는 점점 식어 가고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큰 기대나 미래에 관한 원대한 꿈에서 눈을 돌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을 응시하게 되었다. 인류 전체의 문제에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안에 어느 것보다도 치열한 진짜 삶이 녹아 있는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70년대부터 서서히 고개를 든 일상에 대한 관심은 철학과 문학, 예술 분야에서 형성된 새로운 흐름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도 맞물린다. 푸코나 데리다, 료타르 같은 현대 사상가들은 이성-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로 일관했던 근대적 윤리와 이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언어학 같은 인문학 분야의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도 동시에 진행됐던 시기였다. 인간을 상호작용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미시사회학이나 민속지학들이 타인과의 관계와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행동양식을 분석하고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진솔하게 보여주고자 한 일상의 연극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독일의 크뢰츠와 프랑스의 반젤, 비나베르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작가로 거론되는 일상극의 특징이라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이 진부한 상황 아래에서 사실적인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시스템과 충돌하는 동시에 그 시스템과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룬다.”는 비나베르의 예리한 통찰처럼 일상의 연극에는 선조적인 플롯이 없고 불연속적이고 파편적인 현실구조만 존재하며 자신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등장인물들은 나오지도 않는다. 오로지 어떻게 언어가 등장인물을 지배하고 구조화하는지 집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일상극의 작가들은 ‘참여하는 관찰자’로서 자신이 본 것만 묘사하는 리포터이기도 하다.

셸 비나베르는 텍스트가 강조되는 언어연극을 지향했던 일상극의 선두주자였다. 그는 극을 통해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 1955년에 발표한 첫 장막희곡 「한국사람들」은 한국전쟁에서 부대와 연락이 두절된 여섯 명의 프랑스 군인들과 한국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섯 명의 군인 중 한 명이 우연히 마을로 들어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에서 연극교육학을 공부한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소개로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이 희곡은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해서 작가가 직접 내한한 기간 동안 무대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1951년 총으로 자신의 애인을 살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폴린 뒤비숑이라는 어느 여대생의 실화를 소재로 한 비나베르의 또 다른 작품 「어느 여인의 초상」은 다양한 장면들이 영화적인 흐름을 갖고 빠르게 전개되는 희곡이다. 극 중의 대사들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이 대사들이 분해되고 해체되어 몽타주적인 기법으로 다시 구성됐다. 극 속에서 여러 증인들은 소피라는 인물에 관해 당혹스러울 만큼 서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증인들의 말과 말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이념적인 지향이 점차 드러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식이다.

 

변호사   저는 여러분께서 소피 양을 다양한 내면세계를 품은 한 인간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전체적인 사건의 상황을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아무리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여러분들은 혐오감을 배제한 채 냉정한 시각으로 보셔야 합니다.

재판장   남자들의 질투를 일으켜 열정을 타오르게 한다… 이런 건 연애소설에서 많이 봤을 텐데요?

사비에   소피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름다운 애야.

기보 부인   그 애한테는 좀 섬뜩한 데가 있습니다. 가령 잠을 잘 때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한여름에도 두꺼운 담요를 몇 장이나 두르는 경우가 많아요. 고양이를 데리고 자는데 가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죠.

콜로나   그 앤 자기가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을 쫓아다녔던 건 아닐까요. 그러던 중에 여러 남자를 만나게 됐고 그 속에서 자기 길을 벗어나게 된 것 같습니다.

술래진저   소피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천사들이 더 있어야 할 텐데……

원고   이 사건은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한 여인이 결혼을 미끼로 저지른 극악한 범죄입니다.

 

 

피는 이 희곡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그녀의 답변은 심문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녀의 처지를 동정하는 유일한 동료인 기보 부인조차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비나베르는 오직 자료에 충실하게 의지한 채 이 희곡을 완성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 30년 후의 일이었다. 작품의 모델이 된 뒤비숑은 1964년 모범수로 십여 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지만 그로부터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상의 연극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 장-폴 벤젤은 아예 ‘일상의 연극’이란 극단을 창단했다. 프랑스 동부의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벤젤의 처녀작 「머나먼 아공당주」(1974)는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은 아공당주에서 평범한 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시골로 돌아와 안락한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순간부터 그들은 권태로 서서히 죽어 간다. 부부에게 삶의 유일한 목표는 노후를 위한 이상적인 집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의 지리멸렬한 노동이 제공해 주던 일상적인 진부함이 사라지자 서로 할 말이 남지 않게 된 것. 남편은 예전에 제철소에 일하러 갔던 것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헛간으로 일하러 가고 부인은 더럽지도 않은 집안을 청소한다. 끊임없이 되돌아가고 되풀이되는 그들의 말 자체가 곧 소외를 뜻한다고나 할까. 어떤 개인적인 실존도 존재하지 않는 노부부의 언어는 삶 전체의 억압과 자기 상실을 격렬하게 각인시킬 뿐이다.

1977년 프랑스 파리의 국립 민중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공연에서 탁월한 연출가인 파트리스 셰로는 노부부의 집을 초현실주의적인 황량한 풍경 속에 가져다 놓았다. 그는 해롤드 핀터와 작업했을 때처럼 벤젤의 희곡에 녹아 있는 일상극의 기법, 즉 침묵에 주의를 기울였다. 두 부부의 공허한 실존, 표현되지 않은 바람, 억압된 욕망들이 대사 못지않게 말 사이의 침묵을 통해 전달됐던 것. 그러나 벤젤은 나중에 자신의 희곡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머나먼 아공당주」에서 보여주었던 감상주의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다시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극 속에 담겨 있는 일상생활의 폭력성을 은폐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희곡은 다가오는 11월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하일호 연출에 의해 서울 혜화로터리 인근에 있는 선돌극장에서 올려질 예정이다. 국내에 번역된 희곡은 정작 작품의 분량보다 거기에 붙어 있는 해설과 주석의 양이 더 많다. 희곡과 국내 초연인 공연을 비교해 보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행복한 희곡 읽기의 초석이 될 듯하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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