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전쟁

 

[작가가 읽은 책]

 

책들의 전쟁

 

김응교(시인)

 

  

 

 

 

『창조된 고전』(하루오 시라네 엮음, 소명출판, 2002)이라는 책은, ‘고전’(古典, The classic)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서문에서, 미국의 교육에서 고전을 결정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한다.

미국 교육에서 강조하는 고전이란, 첫째는 젠더의 문제로, 여성 문학은 거의 없고, ‘죽은 백인’(dead white meals)만 등장한다. 둘째는 민족성(ethnicity)의 문제로 미국에는 소수민족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럽계 백인 문학’만이 고전으로 대우받는다. 셋째는 글로벌리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대학교 교양이나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유럽 작가는 들어 있어도, 아시아ㆍ아프리카ㆍ중근동ㆍ남미의 작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한자 문명권에서 태어난 3대 고전(古典) 이야기를 그 문명권 둘레에 있었던 민족국가들, 월남ㆍ한국ㆍ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월남인은 『서유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조동일 선생은 첫째 『서유기』에 나오는 관음신앙이 월남인의 종교 취향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둘째 삼장법사와 비슷한 실제 인물이 있고, 셋째 월남 문학에 영향을 주었던 인도서사시 『라마야나』에 원숭이왕이 나와서 그렇다고 한다(조동일, 「번역으로 맺어진 관계」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지식산업사, 1999).

그러면 일본인이 『수호지』, 한국인이 『삼국지』 좋아하는 이유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흔히 일본인이 『수호전』을 좋아하고 계속 일본식으로 번안해서 내는 이유는, 무사들의 개인기가 펼쳐지는 내용이 사무라이 문화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한국인이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실은 조선시대 번역 횟수로 확인된다고 한다. 『삼국지연의』 33회 번역, 『수호전』 17회, 『서유기』 7회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한국인은 『삼국지』를 좋아할까? 『수호전』, 『서유기』는 만화가 아니라 소설 전집으로 내면 『삼국지』보다 덜 팔릴까?

이유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중앙집권국가이고 유교적인 명분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국가의 운명을 정통성 유지와 충절의 관점에서 다룬 『삼국지연의』를 한국인이 애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조동일 선생은 평가했다.

허균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쓰기 전에 많은 한문소설을 읽었는데, 그중 『삼국지연의』의 가치를 최고로 친다. 『수호전』은 간사하고 책략이 교묘하다고 본받을 책이 아니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서유기』는 불교적 색채가 강해서 억불숭유 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에는 암암리에 금서 정도쯤 대우받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홍명희는 『수호전』을 좋아한다고 했다. 홍명희는 왜 『삼국지』 대신 『수호전』을 내세웠을까? 『삼국지』는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지배하는, 또는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반면, 『수호전』은 바닥의 백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겠다. 『수호전』을 흉내낸 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이라고 벽초의 가치를 내려깎는 이들도 있다. 『수호전』과 『임꺽정』 비교 연구는 한때 유행이기도 했다. 같은 이야기도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에 따라, 이야기가 굴절되고 만들어진다.

『삼국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 ‘486작가들’도 있다. “영웅숭배 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삼국지』는 그 전투의 말발굽 아래 짓눌린 민초들의 삶을 전혀 그려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삼국지』의 번역자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그와 상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고전 『만요슈』

 

『창조된 고전』에서는 일본문학에서 고전으로 숭상(崇尙)받는 『만요슈[萬葉集]』도 새롭게 검토된다.

 

       사랑하는 이 그리워하기보다 가을 싸리가 피었다가 지듯이 나 그리 되고 싶어

       ㅡ 2권 120

 

       당신이 바로 패랭이면 좋겠네 나 아침마다 그 꽃 손에 들고서 항상 그리워하리

       ㅡ 3권 408

 

       내 님이 나를 아주 그리나 보다 마시는 물에 임 얼굴 떠올라서 잊을 수가 없구나

       ㅡ 20권 4322

 

『만요슈』는 『고지키[古事記]』, 『니혼쇼키[日本書紀]』 등과 비슷한 8세기 말에 편찬되었다. 이 세 종류의 책은 모두 고대 일본이 대내외적으로 고대국가를 확립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끼고 벌인 국가적 수사(修史) 작업의 일환이었다. 문화적인 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의식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함에 따라 운문 분야에서 『만요슈』가 편찬되었다(구정호, 『만요슈』, 살림, 2005) 전체 20권이지만, 몇 권씩 편집되어 있던 것을 모아 하나의 가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노래의 수는 4,500여 수로부터 이루어지지만, 다른 판본의 사본에 의거해 세는 방법도 있고, 노래 수에 관해서도 갖가지 설이 있다.

또한 일본문학의 침체기마다 주목을 받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도 『만요슈』였고, 태평양전쟁 때 그 살벌한 전장에서 일본의 젊은 병사들이 품속에 품고 암송했던 책도 『만요슈』였다고 한다. 그만큼 『만요슈』는 일본인이 회귀해야 할 미(美)의 원점이기도 했다.

물론 『만요슈』에 실린 시들 중에 천황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는 시들이 많다. 이른바 이 책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만들어낸 고전’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만요슈는 민족의 노래입니다. 일본 민족 전체가 솔직한 자세로 다 같이 인간으로서의 공통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위로는 천황으로부터 아래는 물질하는 해녀와 걸인까지가 모두 그렇습니다. 천황이 나물 캐는 소녀에게 연가를 지어 보냈고, 또 신분이 낮은 소녀가 높은 사람에게 진솔한 연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계층의 사람이 이 시대의 현실 문제에 직면해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창조된 고전』, 88면 재인용).

 

『만요슈』의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과 천황의 사랑이 내밀히 견결히 내통하고 있다. 『만요슈』는 지배 체제를 확립시킨 천황가의 칙명에 의해 편찬된 칙선 노래집이다. 고대 천황제 450년간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 책에서 말하는 민족혼이란 천황제와 혼합되어 관념화된 ‘천황나라의 국민성’인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그대’[君]라는 단어도 천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 내면에도 천황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황제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에게 『만요슈』는 껄끄러운 고전이 될 수 있다.

 

 

만들어진 고전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인문학을 새롭게 읽자 하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읽어야 할 고전은 어떤 책인가 스스로 묵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이제까지 고전이라는 것은 그 시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선정되고, 읽도록 은근히 강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출판시장 특히 교과서 시장까지 맞물려 고전을 정하는 일은 더욱 복잡하게 엉켜 있다. “이 책이 진짜 고전(古典)이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고전(苦戰)해야 하는 인문학 현장은 보이지 않는 책들의 전장터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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