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어 그물코를 만져보다.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손 내밀어 그물코를 만져보다

― 열린여성센터에 다녀와서

 

정세랑

 

 

 

 

 

   어릴 때의 기억이 자주 그렇듯이, 직접 본 것인지 TV를 통해 본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아마 서커스의 마지막 순서였던 것 같다. 발레리나처럼 예쁜 공중그네 연기자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에 가 닿았을 때, 비장한 효과음이 울리더니 그때까지 잘 펼쳐져 있던 안전그물이 걷혔다.

   “이제 진짜입니다!”

   사회자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대여섯 살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왜 그물을 걷는 거지? 하필 그물이 없을 때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아무도 그런 건 보고 싶어하지 않는데 어째서. 게다가 그게 ‘진짜’라니……. 공중그네 연기는 물론 순식간에, 무사히 끝났지만 어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흔적이 남았다.

   사람들은 떨어진다. 손이 미끄러지거나, 거리를 잘못 가늠하거나, 혹은 파트너와 호흡이 살짝 어긋나는 것만으로도 떨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는데 도와줄 가족이나 친지가 한 사람도 없다면. 더 나쁜 경우 가족이 있지만 바로 그 가족이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온 장애나 갑자기 마주친 불행한 사고 때문에.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진다. 안전그물은 정말 있는 걸까, 언제나 불안했다. 누구나 떨어지고 누구나 불안하다.

   강의 경험이 전무함에도 민들레 백일장 준비 강의를 맡은 것은, 안전그물을 손으로 튕겨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수필을 써본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시는 참담할 정도라 막막하기만 했고 피해는 고스란히 수강하신 분들께 돌아간 것 같다. 결국 할 수 있는 수업은 지금까지 읽어온 좋은 글들을 모으고 모아 가는 것뿐이어서, 복사집에서 교재를 만들어 배낭에 메고 일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끄응” 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의 미숙함만큼 교재만 두꺼워져갔다.

   열린여성센터는 홍제동 고가도로 근처의 건물이었는데 골목이 매우 다정한 분위기였다. 첫 시간에 열두 분 앞에서 오 분쯤 횡설수설을 했나, 점점 등에 차가운 땀이 차오르더니 호흡이 가빠졌다. 딱 한 번 기절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 기분이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앉아서 수업을 했다. 뭐 저런 물건이 왔나 황당해하셔도 할 말이 없었건만 몇 분이 일어나 따뜻한 차와 과자를 권해주셨다. 주말에도 일을 나가시는 분들이 많아 매번 같은 분들이 계셨던 건 아니지만 한껏 정이 들고 말았다. 수제 비누를 만드는 곳에 다니시는 한 분은 카렌듈라 꽃이 든 비누를 선물해주시기까지 했다. 직접 만드신 비누 속의 꽃잎이 너무 예뻐 아직도 쓰지를 못하고 있다.

   “너무 교훈적이거나 극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써주세요.”

   그랬더니 다음 시간에 수줍은 얼굴들로, 머뭇머뭇 글들을 내밀어주셨다. 뒷부분을 어떻게 이어가면 좋을지 말씀드리려고 집에 가지고 와서 읽는데 밝고 친절한 얼굴 뒤 참혹한 기억들을 마주쳤다. 아이가 정상적인 발육을 하지 못할 정도로 추운 집, 너무 일찍 보내야 했던 부모 형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들과 나을 수 없는 질병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흩어진 가족, 그리고 폭력. 너무 자주 눈에 띄는 폭력. 폭력을 기억하는 글들은 어느새 잔잔한 수필보다 핏물 든 공포 소설에 가까워져갔다.

   여성 노숙인들의 많은 경우가 폭력의 피해자였다. 성폭행을 당하거나 목이 졸리는 등 간신히 죽지 않았을 뿐 죽음 같은 경험을 한 분들이었다. 상처 받았을 뿐 아니라 그런 사건 이후에는 머물 수 있는 공간마저 박탈당했다. 누가 폭력의 공간에 계속 머물 수가 있을까. 주거가 불분명해지는 것은 그렇게 잦고 그렇게 쉽다. 공원 화장실 같은 데서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날씨가 나빠지면 생리라도 시작하면 더 곤란하다. 열린여성센터에 오기 전 거친 쉼터들도, 환기조차 되지 않는 어두운 방에 몇 명씩 밀어넣은 다음 종교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등 늘 좋은 곳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남편이랑 딸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이번 백일장에서 그러실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정말 좋은 글들을 내주셨지만, 아쉽게도 바랐던 대로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문학에 애초에 관심이 많아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근처 도서관을 애용하시는 분도 계셨고, 한글을 읽는 것이 불편해서 수업을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도 계셨다. 편차가 컸지만도 돌아가며 좋은 글들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만큼은 어떤 순정한 기쁨 같은 것이 방을 가득 채웠다. 해드린 게 너무 없는데 즐거워하셨고, 심지어 수업 시간에 대한 묘사와 내 이름까지 들어간 시도 한 편 받았다. 평생 어디를 가도 내 이름이 들어간 시는 선물 받지 못할 것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동안 문학이 가진 힘에 대해 믿음을 가지지 못했고, 재능이란 말은 누가 어떻게 써도 조금 오만한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그렇게나 못하는 내가 복사지만 낑낑 안고 찾아가도 한 시간 반의 수업 시간이 자연스레 풍부해졌다. 성우 뺨치는 낭독, 유머러스한 부분에서 공명하는 높고 낮은 웃음소리, 필기구가 미끄러지고 멈추는 소리에 네 번의 수업은 금방 지나갔다. 열두 사람을 미미한 노력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아, 나는 문학에 재능이 있는 거구나. 재능이란 거 어마어마하게 빛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구나. 처음으로 초능력을 발견한 어린 수퍼 히어로처럼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경험이었다. 믿음을 가지고, 비아냥거리지 않고……. 뭔가 드리고 싶었는데 얻기만 한 건 오히려 나였다.

   이어지면 좋겠다. 민들레 백일장이 2회가 되고, 3회가 되고, 100회가 되면 좋겠다.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좋은 치유는 없는 것 같다. 유태인들이 끊임없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고, 뉴욕 작가들이 9.11에 대해 쓰는 것과 같이 폭력으로 다친 사람은 상처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중 누군가 뛰어난 글을 써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집이 생긴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고 말이다.

   얼마 전에는 작은 서커스를 볼 기회가 있었다. 공중그네 곡예가 끝나자, 네 명의 연기자들이 차례차례 안전그물로 다이빙을 했다. 모든 순서가 잘 끝나고 난 뒤라 편안한 얼굴들이었다. 세 바퀴 네 바퀴를 회전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안전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기 있었고 탄성이 아주 좋았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떨어지기도 하지만, 즐거워하며 다이빙도 하는구나 새삼 생각했다. 안전그물이 거기 확실히 있다고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물코를 확실히 만져본 기분이다.

 

 

   《문장웹진 11월호》 

 

 

 

   * 민들레 문학특강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9월 15일부터 약 한 달 간 ‘제1회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부대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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