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묘지

 

   [연재 에세이]

 

바람의 묘지

― 사막의 미학 5

 

글/사진  김태형(시인)

 

 

 

 

 

   이방인

 

   점심이 되자 아무 게르나 찾아가 불쑥 차를 세웠다. 처음 찾아 들어간 게르는 할머니가 대낮부터 마유주에 취해 있어서 손님을 맞이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더 가다가 다른 게르에 들르자 주인이 염소젖으로 만든 아롤과 마유주를 내왔다. 아롤은 딱딱하고 매우 짜서 조금 맛만 보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가 점심을 해먹고 가겠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이 머무는 게르까지 다 내어주고서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게르를 비울 때도 따뜻한 차와 먹을거리를 장만해 놓고 나가는 풍습이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허기를 면하고 가라는 배려다. 워낙 땅이 넓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 가장 가까운 어느 곳이라도 찾아 들어가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이럴 때 누구도 도움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역시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낯선 이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흔쾌히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이 너른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자연 환경이 유목민들에게 아름다운 풍습을 가져다준 것은 축복이다.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되는 유목민은 살림살이를 간편하게 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소유하지 않는 삶의 지혜를 가져다준 것도 자연의 영향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이처럼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시간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점심을 차리기 위해 짐을 꺼내고 조리 기구를 챙기고 쌀을 씻고 몇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해는 높이 솟아올라 그늘 한 점 몸 가릴 곳이 없었다. 푸르공 그늘에 바짝 붙어 있거나 천막 안에 누워서 붉은 텔레비전 화면을 건너다볼 뿐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화장실까지 천천히 걸어갔다가 괜히 돌멩이나 하나 걷어차거나 말똥 모아 놓은 허름한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고 뒤편에 널어 놓은 빨래가 떨어져 있는 것을 잠시 걱정해 줄 뿐이었다.

   할머니와 손자의 사진을 찍어 주고도 시간은 좀체 지나가지를 않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자일 뿐이었다. 그러니 계속 지나가야 하지만, 모든 게 다 멈춰버리고야 말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마저 힘겨웠다. 피로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스치고 그대로 망각해 버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도 가도 아무것도 없는 오직 땅과 하늘뿐이었다. 곳곳에 움푹 팬 거친 길을 내달려도 차창으로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햇빛뿐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오른쪽 팔뚝은 조금씩 살갗이 벗겨지고 있었다.

   허물을 벗고 있었을까. 대체 내게서 무엇이 태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제발 그것이 ‘나’가 아니기를. 또 다른 ‘나’가 껍질을 벗고 기어 나오지 않기를. 그저 나는 이제 막 당도한 한 줄기 햇빛이기를. 저 멀리 신기루에 떠 있는 새로 생긴 들판이기를. 아무것도 아니기를. 그 모든 것이기를.

 

 

   햇빛 나비

 

   좁은 푸르공 안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몇 시간을 꼼짝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역할이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대단히 열심히 내 역할에 임하고 있는 것이리라. 비좁은 자리가 불편해도 그나마 정오의 그 멈춰버린 시간보다 한결 나았다.

   벌판 위에 차를 멈추고 쉬는 동안, 운전을 하던 카자흐 사내가 나비를 잡아왔다. 위태롭게 쓸려만 가던 허공에서 나비 한 마리를 잡아왔다. 한 팔에 검독수리를 데리고 들판을 내달리며 늑대 사냥을 하던 카자흐 사내가 황무지에 핀 야생화를 따라서 날아온 나비를 잡아왔다.

   이곳에는 늑대가 없다고 했다. 그는 햇빛을 타고 날아가던 나비를 대신 잡아왔다. 먼지와 돌조각이 섞여 있는 바람 속에서 나비 날개는 너무나 연약했지만, 그 바람 속에서 나비는 햇빛 하나를 붙들고서 날아왔던 것이다.

   손바닥에 들고 온 나비를 다시 날려 주었다. 나비는 이내 마른 바닥에 떨어져 종잇장처럼 바람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짧은 우기의 한철을 따라서 날아온 나비는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황무지 끝으로 사라졌다.

   햇빛이 놓쳤던 끈 하나를 다시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홍그린 엘스

 

   알타이의 끝자락 구르반 샤이한(Gurvan Saikhan) 산맥을 따라 길고 긴 모래산이 이어져 있었다. 홍그린 엘스(Hongoryn els). 노란 모래라는 단순한 이름이지만, 180㎞나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산은 대낮의 높은 햇빛과 맑은 그늘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른 저녁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이 아름다운 사구를 따라왔다. 하루 종일 달리고 달려도 좀체 그 끝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홍그린 엘스의 모래는 그 뒤에 드리워진 암녹색 산맥 때문에 더욱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자 캠프를 몇 백 미터쯤 앞두고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니 산맥의 그늘은 햇빛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산맥을 따라 멀찍이 떨어져 걷다 보니 내 손에 검은 돌 몇 개가 들려 있었다. 그 위에 뭐라도 되다 만 문장이나마 남기려고 했으리라.

   사막 한가운데 누군가 지나가는 이가 주워서 앞서 간 이의 문장을 읽어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끼가 그늘을 빨아들인 저 알타이처럼은 아니어도 누군가 다시 내려놓은 돌 위에 햇빛이 스며들어 있기를 바랐다. 바람이 지워버린 문장으로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 들린 돌 하나를 떠올려 보고 있었다.

   이곳에는 무엇엔가 할퀸 듯이 검게 부서진 손톱만 한 돌밖에 없었다. 돌을 고르느라 혼자 뒤떨어져 걷다 보니 저 먼 지평선을 바라보던 어느 옛 문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곡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그 말 한 마디. 하아, 하고 깊은 숨을 가슴 아래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오게 되는 그 고요 말이다. 나에게 통곡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문장을 돌 위에 새기고 싶었다.

 

 

   몇 날 며칠 밤새 새까맣게 죽어 있던 손톱을 뽑아내고도 무엇이라도 가슴을 쥐어 할퀴며 다 찢어발기듯 내던져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빈 들판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때 손바닥 반도 못 될 검은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무엇이 이 작은 돌 속에 갇혔었는지 마른 햇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문장 하나를 돌에 새기고 싶었다.

   내가 내려놓으려 했던 문장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막 구름으로 뒤덮인 산맥의 그늘처럼 고색의 이끼로 내려앉은 햇빛을 나는 건너다보고 있었다. 돌에 내려놓은 문장이 몇 천 년 동안 서서히 한 줌의 모래가 되어 갈 수만 있다면.

   황금이라는 뜻이었던가, 저 알타이는.

 

 

   버려진 신발

 

   어느새 빠른 걸음이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갔다. 그 걸음을 놓치고 나자 황무지에 널린 돌이나 주우려는 한 걸음이 나를 끌고 가고 있을 뿐이었다. 저만치 죽은 짐승의 드러난 이빨처럼 버려져 있는 운동화 한 짝이 바닥이 뒤집혀 쓰러져 있었다. 누가 신던 신발이었을까.

   이제는 남은 한 짝을 그 뒤에서 모래가 신고 있었다.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했다. 누가 신다가 내버렸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모래 한 줌이 주인이었다. 가다 쓰러져 멈춘 자리, 그러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나는 우두커니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달나달해진 발목이 시렸다. 사막을 건너가고 나면 신발은 주인을 잃을 것이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아예 주저앉아 버렸던 것일까. 신발의 주인은 모래였으니, 모래는 결코 사막을 벗어나지 않겠지. 길을 잃고 지쳐 쓰러져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마저 잃은 모래는 그대로 잠시 주저앉아 버렸겠지.

   내가 신은 신발은 언제쯤 주인을 잃게 될까.

 

 

   햇빛머리사막도마뱀

 

   마른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언덕은 마치 털갈이 동물의 거대한 등짝 같았다. 무엇인가 뒤에서 스윽 지나갔다. 뱀의 서늘한 비늘이 목덜미를 스쳐간 듯했다.

 

 

   서서히 모래가 되어 가는 부서진 돌멩이들. 고비의 땅을 닮은 도마뱀이 꼼짝을 않고 있었다. 내몽골의 도마뱀은 황무지를 닮아 짙은 갈색을 띠었지만, 마른 햇살이 멀리 먹구름 사이로 내려앉은 이 녀석은 붉고 색 바랜 잔돌이 온몸에 가득했다.

   이름을 모르니 이름 하나 지어 줄 수밖에. 햇빛머리사막도마뱀. 이 녀석은 지금 사막인 척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막은 무엇인 척하고 숨죽여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이 일생이라면, 이 거룩한 위장이 한평생이라면, 내가 석양이거나 바람이 내려놓은 영혼이라면, 그늘에 숨은 한 줄기 햇빛이었다면.

   도마뱀은 그대로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내가 도마뱀 앞에 한 줄기 햇빛으로 멈춰버린 것처럼.

 

 

   석양이 되다

 

   게르 앞에 텐트를 치는데 모래가 섞인 땅이라 철심이 단단하게 박히지 않았다. 바람도 없고 괜찮다 싶어서 앉은뱅이 나무의자를 가져다 텐트 앞에 놓고 앉아서 낮에 메모해 두었던 문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제법 모래까지 날아와 뺨에 부딪혔다. 아직 석양이 지려면 멀었고 하늘은 밝아서 노트북에 메모를 옮겨 정리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는데, 바람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느슨하게 고정해 둔 텐트가 바람에 기울기 시작하는데도 나는 꼼짝 않고 계속 문장을 옮겨 쓰고 있었다. 마지막 몇 문장만 더 옮기면 되는데, 하면서 그 세찬 돌풍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모래에 빗방울까지 섞여 불어오는 바람이 결국 마지막 한 문장을 남겨 두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애써 텐트를 쳐놓았는데, 비까지 내리다니! 텐트 안에 들여놓았던 짐을 황급히 꺼내 게르 안으로 옮겼다. 사막에서 이런 세찬 바람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물녘이 다가오면 꼭 세찬 바람이 한 차례씩 불어왔던 것 같다. 그 바람이 구름을 걷어내고 확 트인 밤하늘을 펼쳐 보이지 않았던가.

 

 

   곧 바람이 지나가고 붉은 석양이 물들고 나면 알타이 저편으로 남쪽 하늘 가득 은하수가 솟아오를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석양은 생각보다 빨리 지고 있었다. 돌풍도 어느새 늑대처럼 사라져 버렸다. 바로 옆 게르에 묵게 된 일행 한 사람이 의자 위에 올라가 열어 놓은 게르 문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멀리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무는 석양 대신 어스름 속에서 그녀의 얼굴에 물든 붉은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처녀구나.’

   석양을 그리 오래 바라보며 제 얼굴 가득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을 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꽃집 딸이라 했다. 그런데 꽃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체 꽃을 왜 사느냐고. 그러나 그녀의 농담에는 가시가 없었다. 그런 농담을 듣고 나니 이런 말이 떠올랐다.

   “대체 꽃이 아니라면 무엇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문장을 쓴 낯선 외국 작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이런 위대한 문장은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산다는 말인가.

   나는 꽃을 사지 못한 게 아니라 꽃을 살 수 없는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꽃은 살 수 있는 것인가. 당신이라면, 석양이라면, 사랑이라면, 그것이 시라면, 거룩한 문장이라면……. 내게는 살 수 없는 것들이 더욱 간절했다.

   꽃집 딸은 꽃을 사지 않아도 된다. 석양을 바라보는 이는 석양을 살 필요가 없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면 된다. 아름다운 석양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이란 그 무엇을 지불하고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왜 꽃을 사느냐는 그녀의 말은 옳았다. 꽃은 사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어야 한다.

 

 

   모래쥐

 

   늘 그렇듯이 일몰은 한순간이었다. 몇 걸음 석양을 따라가다 돌아오는데, 나보다 먼저 낮은 문턱을 기웃거리는 게 있었다. 맑은 모래바람이 지나가고 나자 작고 둥근 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정작 쥐가 달아나야 할 판인데, 내가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그 뒤에 서 있었다. 모래쥐였다. 몽골리안 저빌(Mongolian gerbil). 이 녀석은 아구티라는 이름을 가졌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더니 저녁이 되자 어딘가 숨어 있던 것들이 죄다 기어 나왔다. 기어이 모래쥐는 문턱을 넘고야 말았다. 마른 땅 속으로 먹장구름을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저녁이 되기 전까지 구름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먹만 한 황무지 흙덩이가 되어 구멍을 막고 있다는 것은 모래쥐에 대한 오랜 믿음이었다.

   내가 하루 빌려 놓은 흰 구름 한 채, 애써 속 깊이 작은 구멍을 파는 수고를 덜었어도 느닷없는 모래바람에 마른 비를 흘리지 않도록 종일 구멍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모래쥐가 내 구름을 훔쳐가려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무엇을 구하러 나는 밖으로 나갈 것인가.

 

 

   서너 걸음마다 별이 지는

 

   길이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의 기억이 마주치는 곳이다. 그래서 길이란 무수히 뻗어 있어 서로 만나면서 또 갈라진다. 어느 길이든 누군가 그곳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곧 사라지고 만다. 옛길의 흔적으로만 남는다는 것은 에둘러가는 길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길이란 언제든지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지독한 운명에 제 일생을 건다.

   장님인 듯 더듬어 나가며 나는 이곳에 소실점을 만든다. 천창 위로 어둠의 광맥을 따라서 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 사라진 길처럼 천창으로 내려오는 별들은 내 몸의 안쪽으로 그 쇠락의 시간들을 밀어 넣는다. 별들은 유리처럼 고요한 대양을 한순간 다 빨아들일 듯한 마른 나무뿌리를 타고서 내려오고 있었다. 때로는 말라 죽은 나무를 밑불로 피워 올리는 불꽃 위에 밤의 어둔 발자국을 디디며 공중으로 굽어 오르기도 했다.

   사라진 길 위에서 마른 물 냄새를 맡거나 다 쓰러져 가는 어둠을 껴안는 것은 내 걸음의 끝에 이루어지리라. 천 년은 족히 말라붙었을 실핏줄처럼 더러 염사막의 식물들이 내 발밑의 작은 불씨를 향해 한없이 느리게 뿌리를 뻗는 것처럼. 불꽃은 마른 물웅덩이에서 타오를 것이다. 검은 재가 쌓이고 쌓여 마른 기름이 배어 나오는 어둠의 안쪽에서 나는 어떤 침묵의 원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테처럼 소용돌이치는 빛의 근원, 아니 내 안에서 빛을 빨아들이는 둥근 결정들을 나는 보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수백 미터 지하갱도를 막 빠져나온 차가운 석탄 냄새가 났다. 서너 걸음마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떨어진 별똥별 대신 작은 돌을 하나 주워 무엇인가 지그시 눌러 놓아야 할 시간이었다. 빛이라는 실질 형태소를 잃어버린 채 무수히 파생된 접사로만 가득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성냥을 밤하늘에 내리긋는 것 같은 별똥별 하나를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을 향해 빌어야 할 것은

   오로지 사라지는 것뿐이었던가

   삼십만 년만 더 간다면

   등 뒤에서 끌어당기는 사나운 중력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영원한 고요의 바다를 지나갈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별이 되었을 것이다

   간혹 자기를 놓쳐버린 구름들이

   먼지와 얼음조각들이

   손목을 긋고 떨어져 나와

   송두리째 자신을 불태워 자진해 버리기도 한다

   한순간을 위해서였다면 별은

   다른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서너 걸음마다 뒤미처 떠오르는 생각처럼

   다 타고도 남은 것이 있다면

   저 잿빛으로 환한

   오래고 오랜 밤하늘 때문이다

   이런 것이다 나와 당신과 바람과 황무지와

   끝도 없이 펼쳐진 이 광막한 어둠은

   새로 생긴 실핏줄 하나가 눈망울 속을 지나가듯

   저릿하게 저릿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결코 지워지는 게 아니라

 

   ― 「별똥별」(《문학사상》 2012년 9월호)

 

 

   바람의 묘지

 

   새벽녘에 사나운 비바람이 지나갔다. 세차게 게르에 부딪치는 비와 바람과 모래 소리에 놀라서 깨어났을 때,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게르로 몸만 먼저 피할까, 아니면 짐까지 챙겨서 들어갈까. 빗소리에 놀라서 깬 이유는 물론 요란스러운 소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텐트에서 잠들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무슨 동물들의 우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깊은 밤에 게르 위로 동물 귀신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혹시 죽은 동물들이 나를 깨운 것이 아니었을까.

   아침은 맑았다. 홍그린 엘스가 긴 그림자를 걷어내며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바람그늘의 사면이었다. 높은 산맥을 힘겹게 넘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온 바람이 모래를 쌓아 놓고 지나가는 곳이었다. 어쩐지 나는 이 모래산이 바람의 묘지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바람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사구를 오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밤새 젖은 모래가 단단해져서 그나마 오르기에 편하다고 했지만 백여 미터 높이의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몇 번을 주저앉아 숨을 골랐는지 모른다. 어젯밤 내게 별은 왜 뜨느냐고 질문했던 이가 일찌감치 사구를 넘어 또 다른 작은 사구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홀로 알타이 산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언젠가 그는 걸어서 알타이를 건너고 싶은 꿈을 이룰 것이다. 멀리 서 있는 그를 사진에 담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알타이를 건너다보고 나서였겠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더 극적이었다.

   힘들게 가까스로 사구에 올랐는데, 저 너머 펼쳐진 모래사막과 아득한 알타이 산맥을 바라볼 새도 없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모자가 벗겨지고, 옷 속까지 모래가 파고들었다. 이렇게 바람은 저 멀리서 모래를 실어왔다. 알타이 서쪽 내몽골에서 불어온 바람이 구르반 샤이한 산맥을 넘으면서 모래를 쌓아 놓는 것이었다. 왜 저 높은 산맥을 넘자마자 이렇게 힘겹게 쌓이는 것일까. 편서풍은 이곳을 지나 더 멀리 불어갈 터이지만 이 장대하게 늘어선 노란 사구는 바람의 묘지가 분명했다.

   느닷없이 뺨을 때리는 모래바람은 저만치 몰려드는 검은 구름보다 가파르게 불어왔다. 모래가 호른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누군가 젖은 모래 때문에 호른 소리를 못 듣게 되었다고 아쉬워했다. 엉덩이로 모래를 뭉개며 내려올 때 맑은 금관 악기 소리가 들린다고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가 쌓여서 무너지며 내는 소리가 모래 속에 다시 울려 나오는 모래의 울음. 어떤 이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라고 했다. 모래가 무너지며 내는 소리보다는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진정 모래 울음이 아닐까.

   모래 속으로 발은 자꾸만 빠져들고 능선을 따르던 걸음이 바람 속으로 사라져만 갈 때, 그 끝에서 누가 내 손목을 이끌지만 않았어도 바람의 영혼이 내려앉는 그 무게가 두렵지만 않았어도 나는 모래 우는 소리를 따라갔을 것이다.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고 언젠가 나는 묘비명을 쓴 적이 있었다.

   하루 전날이라야 악기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모래 울음은 하루 전날에야 들리는 소리다. 짙은 먹구름과 검은 모래바람이 사납게 온 세상을 뒤덮는 사나운 검은 바람, 카라부란(karaburan)이 불 때면 누군가는 악령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굵게 내려앉은 저음은 지평선 너머로 귀를 달고 있다. 수천 마리의 야생말이 달려오고 있지만 하루가 꼬박 걸리는 먼 곳이다.

   목울음이 몸 속 깊이 퍼져 울리는 소리, 그 소리를 바람이 먼저 싣고 오면 날카로운 쇠붙이 같은 가늘고 긴 소리 하나가 더 갈라진다. 사나운 바람에 붉은 모래가 날아와 쌓이고 일제히 무너져 흘러내리면서 사막을 지나갈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듯했다. 모래 우는 소리는 일 년이 지나서야 들리는 소리였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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