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나라 십자성은

 

[예술을 위하여_3]

남쪽 나라 십자성은

김경미

갑자기 십자성을 기억해낸 건 순전히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칼라꽃 그림들 때문이었다.
칼라꽃은 시험지 한 장을 길게 말아 올린 듯한 꽃이다. 길고 가는 줄기 끝에 꽃잎만 딱 한 장 말려 올라가듯 핀, 긴 깔때기 같은 꽃이다. 정갈하면서도 순수하고 우아하고 도도해보여선지 언젠가부터 예식장 치장이며 신부부케에 1순위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후문 입구에도 조화칼라꽃이 잔뜩 치장되어 있다.
처음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에서 그 꽃을 봤을 때는 백합꽃인 줄 알았었다. 그림 제목 중에 Calla-Lilien이란 단어가 있었고 생긴 게 비슷해서였다. 그때는 아직 디에고 리베라라는 화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 그림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캔버스를 가득 메운 백합꽃들이 백합꽃들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싶게 동물적이고 원시적이었다. 호리병에서 일시에 빠져나오는 수십 마리의 흰 코브라뱀들 같달까, 송이송이마다 자기존재의 최고 개화, 자기 인식의 최고정점에서 극단적으로 제각각 만발한 느낌이었다. 그 만발을 무릎 꿇고 앉은 채 추스르고 있는 머리 땋은 두 명의 인디오 여자들의 맨발, 그 검은 맨발의 발가락들은 어떻게 그렇게 애잔하면서도 고즈넉하게 식물적이던지. 즉시 화가와 작품제목을 옮겨 적어두었다.
그러나 인터넷도 없던 시기였고 디에고 리베라라는 이름의 화집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에 대해 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나마 프리다 칼로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에겐 프리다 칼로의 통제 불능의 바람둥이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멕시코나 남미에선 거의 피카소에 버금간다. 그의 벽화는 아직도 멕시코 대통령궁에 남아있다. 내 언니네 가족은 9년 동안 멕시코에 이민 가서 살았었는데 그림에 큰 관심이 없는 언니가 멕시코 가서 제일 처음 접한 문화예술인의 이름이 생존하지도 않는 디에고 리베라일 정도였다. 사진속의 그와 프리다 칼로의 외모는 르 클레지오가 그들의 자서전에 묘사했듯 코끼리와 비둘기 같이 대조적이다. 디에고의 엄청나게 살찐 배에서 프리다 칼로가 방금 빠져나온 듯할 정도다. 모든 사람을 길쭉하고 가늘게 그린 모딜리아니가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화만은 거의 완벽한 보름달처럼 그렸을 정도다.
외모와 상관없이 나는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도,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좋아하지 않는다. 양쪽의 그림이 다 내 취향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첫눈에 반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꽃그림만은 예외다. 그의 꽃들은 그가 그린 거칠고 직설적인 민중벽화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왕성한 에너지 분출의 느낌과 함께 뜻밖에도 어느 그림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섬세함과 애잔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그런 꽃그림들에 등장하는 꽃이 두세 점을 빼고는 전부 다 칼라꽃이다. 민중벽화 한켠에 보일 듯 말 듯 등장하는 꽃조차도 칼라꽃이다. 대충만 훑어봐도 1925년의 <꽃을 등에 진 사람>에서부터 1943년, 1944년 <꽃과 누드>, 그리고 1949년 작품에까지, 자그마치 20여년간 줄기차게 칼라꽃만 등장한다. 심지어 멕시코가 아닌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담은 그림에도 칼라꽃이 등장한다. 우연일까 의도적인 걸까. 개인적으로 유난히 그 꽃을 좋아했던 걸까. 혹은 멕시코 민중의 고달픈 삶 위에 핀 지배계급에의 이미지일까. 실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에 관한 글을 써야하는 일이 있는데 그 궁금증 때문에 글이 나아가질 않았다. 그림을 밀어두고 우선 칼라꽃에 대한 검색부터 했다.
칼라. <식물>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덩이줄기에서 나오고 달걀 모양인데 광택이 난다……
천남성과란다. 왠지 별과 연관이 있을 분류학명일 것 같았다.
그랬다. 잎이 별모양을 닮아서 천남성과란다.
그런데 그걸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십자성>이란 단어가 너무나 강렬하고 맹렬하게, 디에고 그림속의 흰 코브라뱀 같은 칼라꽃보다 더 원시적으로 저 먼 시간 속에서 단숨에 솟구쳐 올랐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천남성이란 별은 없어도 십자성이란 별은 있다. 밤하늘에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너무나 많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였다. 라디오와 책과 작가에의 꿈만이 유일한 의지처였던 그때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던 노래가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하고 시작하는 흘러간 가요였다. 파월장병 아저씨들이 월남에서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담은 노래라고 했다.
그랬다. 그때는 한국의 군인들이 월남으로 파병됐을 때였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세 번쯤 수업시간에 전교생이 다 함께 파월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를 쓰곤 했다. 비누와 치약 같은 위문품을 모아보내기도 했다. 5학년 때에 내가 쓴 위문편지의 끝인사는 파월장병 아저씨의 명복을 빕니다,였다. 명복이란 말이 아주 멋지고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해서 잘난 척을 하고 싶었던 건데 담임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읽게 했다. 애들이 웃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단어나 글에 관한 한 반에서 나보다 많이 알거나 날 비웃을 아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 실수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초등학생 처지에 마음속으로 날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파월장병들의 <남쪽나라 십자성은……> 하는 향수 어린 옛 가요를 읊조리며 살았다. 나야말로 그리워 미칠 것 같아서였다. 전쟁터 아닌 곳. 그래서 평화롭고 아름다울 곳. 집이 아닌 십자성의 별이 있는 저 먼 남쪽나라. 낮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밤이면 십자성 별이 뜨는 곳. 집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장 먼 곳. 남쪽 나라 십자성이 있는 곳. 어른이 되면 꼭 가야할, 갈 수 있을,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집이 있을 십자성의 나라. 어린 나의 간절함은 파월장병의 그리움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컸을 거다.
 
칼라꽃 때문에 중지했던 글은 이제 완전히 멈춰버렸다. 디에고도 프리다도 칼라꽃도 그림도 글도 다 밀쳐두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십자성과 십자성에 담았던 간절한 추억만 따라가며 생각했다. 그 혹독하던 전쟁터를 떠난 게 언제였던가. 떠나서 그토록 간절했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고향집> 같은 십자성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찾았던가. 이제는 혹시 그 혹독하던 전쟁터마저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 한없이 그립지는 않은가.
 
그러는 중에 호주에 사는 친구가 잠시 귀국했다. 만나자마자 친구는 전화로 하던 성화를 두 배쯤 더 심하게 했다. 호주에 빨리 놀러오라는 거다. 호주 남자와 결혼해 아이가 둘인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3개국을 방문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3개국 이상은 방문할 수 있을 터다. 친구에게 변명삼아 말했다. 호주는 아홉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나 비행기 공포증이 더 심해져서 못 갈지도 몰라. 그러자 스튜어디스였던 친구가 단숨에 말한다. 아홉 시간 그거, 그냥 비행기 문 열고 들어갔다가 문 열고 나오면 다야.
지금 돌아보면 십자성을 간절히 그리워하던 때로부터 지금 시간까지도 잠깐 문 한번 열었다 닫은 것만 같다. 그 어떤 고통도 불행도 행복도 기쁨도 문 하나 열고 닫기에 불과한 것만 같다. 허망이나 허무가 아닌 순응과 겸허의 느낌이 그렇게 얘기한다.
친구와 밥을 먹다말고 십자성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십자성은 북반구인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별이다.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일 년 내내 보이는, 호주의 국기에도 등장하는 별이란다. 아무래도 십자성 보러 조만간 호주엘 가야할 것 같다. 아니 월남, 베트남부터 가야할까. 그러기 전에 우선 오늘 밤,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까운 별부터 아득히 올려다봐야겠다.  《문장웹진 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