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권혁웅의 상상 이야기_2]

 

시소

 

권혁웅

 

 

 

@ 프로이트식 실패 놀이

시소는 ‘본다(see)-봤다(saw)’에서 온 말입니다. 나와 함께 시소를 탄 그는 내 앞에 보이다가(있다가), 안 보이다가(없다가) 합니다. 존재와 부재를, 현재와 과거를 왕복하는 거죠. 시소를 타면서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겁니다.

 

@ 카메론식 소개팅 놀이

영화 〈아바타〉에서 외계 종족인 나비족들은 서로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고 인사를 한다. 그것은 현전의 한순간이다. 그 말을 발설하는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의 진짜 정체를 대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참모습을 보려면 그의 뒷면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뒤태와 옆태를 기억해야 앞태가 완성된다. 그래서 앞의 인사에 “당신을 보았습니다”(I saw you)를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그게 진정한 3D다.

 

@ 보르헤스식 거울 놀이

보르헤스는 거울과 아버지는 무섭다고 말했다. 거울은 되비추어서, 아버지는 자식을 낳아서, 하나를 둘로 만들기 때문이다. 시소는 그 반대라고 말하면 될까? 건너편의 그 사람과 내가 합쳐야 우리는 시소를 탈 수 있다. 시소는 처음부터 둘을 하나로 만드니까. 둘이 있어야 하나가 되니까.

 

@ 경상도식 소꿉놀이

“~십시오”를 경상도 방언으로 “~시소”라고 하지요. 공손하게 상대를 초대해서는 놀이기구 위에 올려주는 저 억양이야말로 착한 소꿉놀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영지주의식 전쟁놀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시소는 투석기(投石機)다. 세상에, 집채만 한 바위가 날아오는 놀이터라니! 어떤 때에는 상대편 포로나 아이들을 거기에 담아 농성중인 상대편의 성벽 너머로 던졌다고도 한다. 무서운 자들이다. 그들은 인간을 노리개로 여기는 하급신을 흉내 내고 있었던 거다.

 

@ 고장 난 시소 A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시절, 부모님은 막내인 나를 아랫목에 뉘어두고, 늘 윗목에 잠자리를 깔았지. 그때는 내가 두 분을 합친 것보다도 더 무거운 줄 알았네.

 

@ 고장 난 시소 B

실패한 가장을 삼켜버린 새벽 두 시의 한강. 영동대교는 한 사람을 우주로 날려버린 거대한 시소였다.

 

@ 고장 난 시소 C

심전도를 생명과 마주한 시소라 불러도 좋겠지. 규칙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평생의 드잡이가 심장박동이 아니고 무어냔 말이야. 그러다 생명이 시소에서 내려오면 영원한 평정 상태가 오지. 다시는 삶과 시소를 탈 수 없는 때가 그때인 거지.

 

@ 평균대 위의 펭귄

놀던 아이들이 저녁 먹으러 다 집에 가고 나면, 시소는 기울어진 평균대가 된다. 거기에 펭귄 한 마리 올려놓으면 좋을 것이다. 기우뚱한 평균대에는 뒤뚱거리는 펭귄이 제격이다. 평균과 펭귄은 처음부터 유음동의어가 아니었을까? 뚱뚱한 제비처럼 생긴 펭귄은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시소를 끌어안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서어서 저녁 먹으러 가야 하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책 속의 타잔

난독증이란 미칠 듯이 문장이 널을 뛰는 거야. 윗줄과 아랫줄이 함부로 오르내리는 거지. 단어 하나가 그 위에 올라타 있어. 타잔도 아닌 것이, 고래고래 질러대는 소리는 또 뭐람.

 

@ 선로 위의 조로

태백선에는 스위치백(Switch-back) 선로가 있지요. 기차가 전진과 후진을 왕복하며, 조로가 그어댄 칼금처럼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노선이지요. 와, 시소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좋아 죽지요. 물론 어른들도 좋아서 난리죠. 삶도 그렇게 한 수 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윷놀이만 그런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의 ‘빠꾸도’가 거기에 있는 거죠.

 

@ 양다리 위의 지구

백만 년에 1~5번꼴로 남극과 북극은 서로 자리를 바꾸는데, 이를 지자기역전(Geomagnetic Reversal)이라고 부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도를 거꾸로 펴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쩜 좋아, 세상에서 제일 큰 시소가 바로 지구였네.

 

@ 풍선과 트림

사거리에 새로 개업한 PC방 앞에서, 한 사람이 두 팔로 시소를 흉내 내고 있다. 이 웨이브 좀 보라고, 이 지휘에 맞춰서 여기는 엄청나게 번창, 울창, 화창할 거라고. 어깨에 헛바람이 잔뜩 들어 있다. 저 바람만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주르륵 흘러내릴 그런 사람이.

 

@ 이별과 요요

개복치는 크기가 4미터, 무게가 1톤이나 되는 물고기다. 옆으로 퍼진 삼각형 형태니까, 몸통의 절반쯤을 잘라낸 생선처럼 생겼다. 중간 바다에서 있다가 해파리를 먹으러 수면으로 올라온다. 먹이를 두고 시소놀이를 하는 셈인데, 그러다 어떤 때에는 물 위에 옆으로 누워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시소를 타던 동행이 먼저 가버린 거라고나 할까. 코끼리만 한 덩치가 버림 받은 이의 흉내를 내는 거다. 사실 그러고 있으면 청소물고기가 와서 개복치 몸통에 붙은 기생충을 뜯어먹는다. 불필요한 살들을 깎아서 좀 날씬해지는 거다. 이별만 한 다이어트는 없다는 거다. 그래 봐야 금방 다시 뚱뚱해지겠지만.

 

@ 놀이터의 철학

미끄럼틀, 그네, 시소는 놀이터의 삼항조(tripod)다. 미끄럼틀이 사선운동, 그네가 전후운동을 일러준다면 시소는 상하운동을 가르쳐준다. 미끄럼틀에서 만나는 이가 악당이고(그는 당신을 벼랑에서 밀어버린다.), 그네에서 만나는 이는 보조자라면(그는 당신이 날 수 있게 해준다.), 시소에서 만나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없으면 당신은 시소놀이를 완성할 수 없다. 미끄럼틀은 진리를, 그네는 선함을, 시소는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한 번에 전락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진리를,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아는 선량함을, 비례와 균형이라는 미의식을 우리는 이 셋에서 배운다. 아,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이미 놀이터에서 배웠구나.

 

@ 놀이터의 사랑

시소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게임이죠. 작은 힘으로 무거운 짐을 들려면 받침대가 짐 쪽으로 많이 옮겨가야 합니다. 시소를 탈 때도 마찬가지죠. 무거운 사람은 좀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연애의 관계도 그렇지요. 상대방에 대해서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은 바짝 다가서고, 생각이 덜한 사람은 작은 수고로도 상대방을 움직입니다. 이거, 놀이터에서 연애까지 배웠군요.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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