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공주의 열병

[가로수 프로젝트_2]

 

엄지공주의 열병

 

김행숙

 

 

 

이번 월례모임에 출현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 번 ‘눈에 띄는’ 부재의 존재가 된 그녀의 이름은 소리. 열 번째 생일날, 그러니까 이제 막 열 살이 된 여자애는 자라는 걸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그날의 그녀는 가장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소녀였을 것이다. 선언에 효력이 있었던 건지 소리는 그날 이후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았다. 작은 여자 소리는 언뜻 보면 날렵한 초등학생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벌써 2년 전에 서른을 넘긴 성인 여성이다. 신발에 작은 날개라도 달린 듯 소리는 내가 그녀의 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어느 새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곤 했다. “오, 우리 도시가 사랑하는 가장 큰 새가 납시었군.” 나는 머리를 젖히고 그녀를 보느라 눈이 부셔서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녀는 또 어느 새 야외음악회가 열리는 6번지(오후 2시), 11번지(오후 5시), 12번지(저녁 8시)의 가로수로 폴짝폴짝 날아가서 인간 악기가 돼 있곤 하였다. 그녀는 마음보다도 몸이 더 가벼운 존재였다. 소리처럼 걸으면 누구나 공중의 새처럼 발자국을 찍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날아오는 새처럼 그녀도 그렇게 우리 도시를 홀로 찾아왔다. 가로수 관리인이 되기 위해 장편소설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고 알려진-그렇다, 그건 분명 가로수 관리인에 관한 아름다운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처음 우리 도시의 시청 앞에 작은 발을 내려놓은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이미 가로수 프로젝트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지도의 색깔을 바꾸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도시의 4년 후를 비슷하게라도 그릴 순 없었다.  

물론 이른바 도시 특성화 사업인 가로수 프로젝트는 지금도 드러내는 것만큼 감추는 것이 많음에 틀림없다. 심지어 나 또한 이 거대한 숨은 뜻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에까지 미치면, 나도 모르게 음침해진다. 나는 비밀이 없어지고 싶을 만큼, 완전히 헐벗은 남자가 되고 싶을 만큼 소리라는 여자에게 끌렸지만, 그래서 비밀이 없어진 사내들을 몇 명 짐작하고 있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먼 곳에서 찾아 온 사람이었다. 먼 곳, 머나먼 곳……. 내게는 ‘그녀가 그렇게 빨리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18세기에 태어나서 18세기에 죽었던 루소는 에밀이라는 아들을 기획하고 교육하였다. 루소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는 에밀에게 반려자 소피이를 찾아주어야 할 시기가 다다랐을 때, 이렇게 쓰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항시 소피이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녀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장소에서 그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에밀에게는 “유명한 도시, 소음의 도시, 매연과 먼지의 도시, 여자의 정조를 이미 믿을 수 없고, 남자의 미덕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도시”, 파리와 작별할 시간이 도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파리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코 충분하지 못하리라.” 『에밀』의 마지막 막(幕) 제5부는 기이한 연애담이다.   

소리의 꿈은 내 곁에 날개를 접고 있어도 언제나 너무 먼 곳을 상기시켰다. 나는 그녀의 부지런한 손과 발을 믿을 수가 없었다. 타지인인데다가 휘파람을 부는 조그만 여성인 그녀가 어떻게 대번에 가로수관리인 소장이 될 수 있었을까. 토박이인데다가 커다란 남성인 내가 관리소장이 되는 데 4년 6개월이 걸렸는데, 시(市)가 그녀에게 보인 전폭적인 신임은 유례없이 파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관리소장이지만 그녀는 2년 전에 벌써 관리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녀가 시청에 제출한 자기소개서, 그러니까 가로수 관리인의 꿈을 그린 그 긴 소설이 나는 정말이지 궁금해 미치겠다.

“그 이야기는 머리말에 불과해. 언젠가 완성되면 너도 보게 될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뜻이야?”

“넌 이미 보고 있잖아. 내가 너를 보듯이 너도 나를 볼 수 있잖아. 누구나 볼 수 있는 만큼 보는 거고, 보여줄 수 있는 만큼 보여주는 거야. 어, 그렇게 찌푸리지 마. 그런다고 뭐가 더 잘 보이는 건 아니니까.”

“주름을 모으면 쬐금 더 잘 보여.” 이렇게 키득거리는 걸로 이 얘긴 그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녀를 추궁할 입장은 내가 못 되기도 했고, 그래봤자 그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휘파람 같은 것일 테니까.   

“비가 올 것 같은데…….” 그녀는 입술을 오므렸다. 비가 예상되면 꽃을 닫거나 꽃대를 구부리는 어떤 식물들처럼.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기상대’라고 불리는 꽃들이 있었지.

 

 

*

어쨌든 가장 가벼운 발걸음을 소유한 그녀가 우리들의 월례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현재 그녀의 육체가 이 도시에서 제일 뜨겁다는 것, 체온계를 입에 물려보지 않아도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소리의 발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작은 침대뿐이고, 그녀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은 그 유명한 ‘엄지공주의 열병’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년 모종의 의식(儀式)처럼 열병을 치렀다. 그 첫해에는, 그녀의 열병이 6일째 접어들자 누군가 조심스럽게 혼자 사는 여자, 친척도 없는 여자의 장례식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뇌와 장기를 녹일 듯이 그녀의 몸이 달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출신지가 모호한 그녀의 존재에 대해 냉담했던 일부의 사람들은 피의 색깔을 바꾸는 중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녹색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녀의 피가 초록색이라는 소문이 그 당시 퍼져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초록색을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의 색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공포스러운 괴물의 색으로 경계하였다. 녹색 엄지손가락, 혹은 녹색 발가락을 가진 사람이 분명 흔치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나까지, 그녀까지 포함해서 네 명이나 되었으니까, 유독 그녀만을 향해 있는 이 소문은 확실히 부당한 것이었다. ‘수잔, 당신의 딸이 먼 곳에 와서 핍박받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을 모으면, 꿈속에서 잠깐 돌아온 소리는 ‘그래, 우리 엄마 이름이 수잔이었던 것도 같아’, 라고 대꾸해주었다. 내가 영자나 숙자, 제인을 호출했어도 그녀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흐르고 드디어 열흘 만에 그녀는 열을 식히고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가로수 구역에 건강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공 5미터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서 그녀는 그녀 특유의 휘파람을 불어서 이 모든 사태의 종식을 알렸다. 아, 그때, 우리는 모두 열흘 동안 끊긴 그 새소리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해에도 그녀의 몸은 요란하게 끓었지만 그녀를 둘러싼 반응은 훨씬 침착해졌다. 그리고 세 번째 그녀를 덮친 열병은 ‘엄지공주의 열병’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서, 또는 술기운이 퍼져서, 또는 순진한 청년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누군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우리 도시의 시민이라면 합창할 수 있다.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엄지공주의 열병이 다녀가셨나.”

현재 그녀는 올해의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정기적으로 치르는 혹독한 열병을 나는 누구보다도 안쓰럽게 지켜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를 제외하곤 몇 년 동안 내 주변 어느 누구도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다는 것. 식물도 병이 들면 열이 난다. 모자이크병에 걸린 담뱃잎은 평범한 담뱃잎이었을 때보다 0.4℃ 정도까지 더 온도가 오른다. 식물이 보이는 이 차이를 인간적인 견지에서 사소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식물의 잎에 나타난 0.4℃의 차이는 죽음의 문턱을 가리키는 눈금이다. 인간 몸이 4℃의 차이로 인해 혼미한 꿈속을 헤맬 때, 겨우 0.4℃가 더 따듯한 잎사귀는 침묵 속에서 죽음의 채비를 하고 있다. 시간과 운동과 감정의 세계에서, 기온과 체온의 세계에서 식물은 보통 인간의 거친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매우 섬세한 측량단위를 요구한다. 이 면에서 누구보다도 섬세한 가로수 관리인들은 식물의 병 때문에 종종 근심에 사로잡혔지만, 동료들과 이웃들과 가족들의 병에 대해서는 언젠가부터 걱정거리가 뚝 끊겼던 것이다. 이것도 가로수가 가져다준 축복일까. 그렇지만 가로수가 무슨 약초도 아니고, 시민들의 건강지수가 다소 높아졌다는 건 납득할 수 있지만 가로수 덕택에 감기와 관절염과 생리통이 퇴치되었다는 건 관청에서도 선전할 수 없는 황당한 성과다. 언제나 과한 선물은 친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닌 법.

지금 나는 작은 여자, 소리의 이마를 짚어주러 가야 한다. 차가운 수건으로 그녀의 뜨거운 몸을 닦아주러 가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불참이 의미하는 두 번째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그녀가 불참한 모임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토픽은 ‘그녀를 어떻게 간호할 것인가’였다. 잠시 해묵은 식재간격(가로수와 가로수의 간격)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지만, 엄지공주의 열병 앞에선 그 어떤 논쟁도 금세 싸늘하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소리씨를 언제 보았어?” 얘기를 나눠본 결과 사흘 간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인데, 모두들 그것을 열병의 신호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우편배달부처럼 도시를 순회하는 날도 많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누구보다도 폐쇄적으로 자기 구역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사나흘쯤 사랑의 쪽지를 못 받았다고 울적해져서는 그녀의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녀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소위 병문안은 사랑의 암시가 아니라 우정과 인정의 표시만으로도 내가 그녀의 집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14인 중 두 명은 부득이 빠지기로 했고, 나머지 열두 명은 당번을 정해 그녀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도록 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잠시, 두 사람을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나머지 열두 명까지 하나하나 언급하기에는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니까.  

사과나무 가로수 길을 관리하는 아담에게 앞으로 2주간은 최고 바쁠 시기였다. 사과가 가장 유혹적인 빛깔을 나타내는 시기였고, 때문에 찾는 관광객의 숫자가 다섯 배는 불어나는 때여서 그는 소희의 간호사가 도저히 될 수 없었다. 그는 크게 아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만큼 아담은 온통 사과나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봄에 자신의 정원을 통과하는 길을 하나 내어서-그러니까 사적인 정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품종의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바야흐로 그의 실험작이 둥근 열매를 매달고 사람들 앞에 화려하게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간호 당번이 될 수 없었던 또 한 명의 가로수 관리인은 아마도 이 도시국가에서 제일로 키가 큰 여성일 것이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그녀는 소리의 머리 위에 두 개의 큼직한 유방을 매달고 있다. 그녀가 소리를 안으면 배꼽 속으로 소리를 집어넣는 모양이 되었다. 소리와 함께 있을 때의 그녀를 우리는 대리라고 부르곤 했지만, 시청에 등재되어 있는 그녀의 이름은 배수림이었고, 대체로 가로수관리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호칭은 마더Mother였다. 마더는 바로 그날 저녁 비행기로 말레이시아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더가 열정을 바치고 있는 과제는 가로수 길을 일종의 거대한 식물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리가 없으면 대리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소리를 부탁해요.” 그녀는 꽤나 연극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투는 마더가 특별한 진심을 담을 때 쓰는 버릇이었다.

마더, 염려 말아요. 나는 소리의 집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게 현관문을 열어준 자는 소리의 가로수 구역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이었다. 청수중학교 배지를 달지 않고 등교한 벌로 운동장에서 토끼뜀이나 뛰고 있어야 할 녀석이 소희의 방에서 깐깐한 집사처럼 굴었다.

“이제 됐어. 이곳은 열두 명이나 되는 가로수 관리인들이 교대로 지킬 거야. 넌 이제 여기 오지 않아도 돼.”

“전 괜찮습니다.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면 내일 다시 오도록 해.”

“곧 우리 누나가 올 거예요. 죽을 끓여오기로 했어요. 보온병에 넣어가지고 올 거예요. 누나가 오면 같이 갈게요.”

“알겠다.”

“좀 전에 의사 선생님이 다녀갔어요. 걱정 안 해도 된댔어요.”

“알겠다.”

엄주공주의 열병에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엄지공주의 열병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래도 의사가 다녀갔다는 말은 나는 안심시킨다. 그리고 이 깐깐한 꼬맹이 집사를 비롯하여 누군가 계속 그녀 곁에 붙어있었다는 사실도 나의 묘한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그렇지만 꼬마야, 이젠 제발 가라. 나는 성실하게 그녀를 간호할 것이며 그녀의 꿈을 관찰할 것이며 탐구할 것이다. 맹세한다.

그때 소리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18평 공간 안에서 그녀가 누워있는 침상으로부터 겨우 몇 발짝 떨어져 있을 뿐인데, 먼 곳이라니. 단지 열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 때문일까.    

“현우야, 이제 가서 쉬어. 이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야.”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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