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관리인들

[가로수 프로젝트_1]

 

가로수 관리인들

  

김행숙

 

  

  

“식물의 세계에서 미친 짓이란 없다. 우리는 식물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라고

얼마 전 네덜란드 식물학자 마르셀 디케Marcel Dike는 한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 수잔네 파울젠Susanne Paulsen,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것은 수잔Susan(ne Paulsen)이 했던 질문이며, ‘녹색 엄지손가락’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수잔들이 한 질문이다. 왜 질문의 형식을 취하면 모든 것이 모호해져버리는지. 이를테면, 식물, 이 명사는 모든 명사들처럼 두 개의 입술을 지퍼처럼 단단하게 잠그고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갑자기 입술이 벌어지면서 입속의 검은 구멍이 나타난다. 구멍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가로수를 심기 위해 구덩이, 구덩이, 구덩이를 팠던 그런 저녁이 한없이 깊어지듯이.

책에 나와 있는 프로필을 살피면, 수잔은 자신의 입을 벌려 드러낸 의문의 검은 구멍을 녹색 엄지손가락을 가진 할머니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어린 수잔이 되고 싶은 어른은 약초를 캐는 마녀였다고 한다. 1962년 독일 북부의 후줌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이미 어린 시절이 지나간 수잔은 현재 마흔 여덟 살이다. 나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수잔, 마찬가지로 내게는 절대적인 무지의 영역인 수잔의 딸은 그녀의 바람대로 녹색 엄지를 물려받았을까. 나는 아주 오래된 녹색 엄지손가락을 머나 먼 수잔을 향해서 치켜든다. 이럴 때면 나의 부끄러운 손톱을 뚫고 마침내 푸른 이파리가 피어난다. 한없이 부끄러운 발톱에서부터 시작된 그 부드럽고 강인한 나뭇잎이 바람에 실려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적인 모든 것들은 놀랍도록 예민하다.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강력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이 질문을 둘러싸고 메아리처럼 공명하고 있는 것이 나의 직업 세계에 대한 것, 바로 ‘가로수 관리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로수 관리인 지망생들에게 나는 한번도 “가로수 관리인의 세계에서 미친 짓이란 없다. 우리는 가로수 관리인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토로하는 따위의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결단코 취중에도, 꿈속에서도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진정한 가로수 관리인의 침묵은 갇혀있는 무의식이 아니다.

약간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가로수 관리인이 될 수 있다. 부쩍 늘어난 가로수 관리인 지망생들과 또한 무엇에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내 동료 가로수 관리인들의 소박함, 그들의 일상을 나는 충분히, 충분히 존중한다. 사실은 그들이야말로 이 도시의 가로수와 가로수 관리인의 비밀을 보호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화단을 관리하고, 잡초를 뽑고, 시비작업을 하며, 나무의 모양을 다듬고, 지지대를 세우는 그러한 하루하루가 구름 속처럼 하얗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깍지벌레, 방패벌레, 흰불나방, 응애 같은 해충들을 막기 위해 살충제를 흠뻑 뿌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왜, ‘가로수 관리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야 한단 말인가.

  

*

우리 도시의 인구는 채 10만이 되지 않는다. 작은 도시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심어진 나무가 무려 그것의 100배, 1000만 그루에 육박했다. 어쩌면 그 숫자도 돌파했을지 모른다. 도시의 면적이 홍두깨를 굴린 밀가루반죽처럼 늘어나지 않는 한, 이제 더 이상의 식목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6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놀라운 녹화 사업의 수치상 99%의 광기는 가로수 심기에 바쳐졌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가로수를 심을 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소형 자동차 한 대가 빠져나갈 수 있는 폭만 확보되면, 길이란 길은, 골목이란 골목은 짙은 녹색의 빛과 어둠을 드리웠다. 기찻길 옆 오두막들을 쓸어버리고 가로수를 2중 3중으로 심는 식이었다. 가로수를 심기 위해 많은 도로와 골목이 새로 만들어져야 했다. 길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미로에 빠진 듯 자주 길을 잃어버렸다. 마치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기 위해 길을 만들고 가로수를 심었던 것 같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알 수 없는 황홀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꿈꾸듯이 고백했다. 어쩌면 집으로 가는 길을 밤새도록 혼동했던 사람들은 길에 홀린 게 아니라 가로수에 홀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식물의 세계에 미친 짓이란 없다. 공중에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우리 도시는 이제 녹색 핏줄을 가진 거대한 짐승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지, 이 많은 나무들은 도대체 어디서 공급되는 걸까,

미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가로수 관리인이라는 직업은 청소부나 슈퍼마켓 점원, 택시 기사, 간호사, 학원선생처럼 흔한 것이 되었다. 가로수들은 언제나 돈이 필요한 중학생, 고등학생,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르바이트까지 충분히 창출하였다. “놀면 뭐 해, 살충제라도 뿌리지.” “잡초 뽑으러 가요. 이런, 쓸모없는 남편부터 뽑아야겠네.” 어느새 우리 도시의 사람들은 그런 농담이 아닌 진담을 킥킥 웃으면서 하고 지내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로수 예방접종 기간이 일주일씩 선포되었다. 이 기간이면 지역방송과 지역신문은 가로수가 병에 걸리면 얼마나 말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는지, 또 그 고통의 기(氣)가 우리 도시에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여름날의 개구리나 매미처럼 보도하였다. 도시 전체가 보건소가 된 듯한 나날이었다. 7일 후, 어쩐지 시민들은 병으로부터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쳤다. 9만 개의 술잔에 술이 부어졌다. 알코올의 날이었다.

바야흐로 지방자치 원년으로부터 8년. 도시국가의 시대였다. 중앙정부는 기사의 육체가 사라진 갑옷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 갑옷을 입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지역방송이니 지역신문이니 지방대학이니 하는 말은 사실 구시대의 언어다. 이제 p도시에서 q도시로 가는 데 비자를 요구한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물론 그런 번거로운 장치를 작동시킬 이유는 별로 없지만, p시와 q시와 r시는 과도하게 특화되어 서로, 서로에게 이국적인 장소가 되었다. p시의 시민은 q시의 진정한 관광객이었다. 서로, 서로에게 관광객이 되었고, 오래 머무르면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사랑은 국경을 넘기도 했으며,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은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쌍둥이처럼 자랐던 두 인간 사이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꽃의 암술이 자기를 찾아온 곤충에게 정말 받고 싶은 것은 제꽃가루가 아니라 딴꽃가루다. 생물계에서 사랑의 유전자는 이방인을 불러들였다.

  

*

우리 도시는 가로수 특별시였다. 우리 도시가 숲이 되어가는 동안, 이 지상에서 사라진 산이 두 개였을까, 세 개였을까.

– 그게 아니라, 어딘가에 가로수를 만드는 공장이 있대. 그곳 노동자들은 철야를 하지.

– 그건 공장이 아니라 실험실이야. 그곳 과학자들은 밤을 새우지. 거대한 시험관에서 재크의 콩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아무리 진지하게 인상을 써도 다들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하. 하. 하. 세상에서 가장 맑은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허파가 불행할 이유는 없었다. 식물의 잎사귀에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싱싱한 산소를 뿜어내는 숨구멍, 말하자면 콧구멍이 수십만 개 있다. 잎사귀 뒷면에 있는 기공은 1㎠ 당 무려 1만 개에서 8만 개. 그러니, 이 도시에서라면 죽은 사람도 번쩍 일어날 것 같지 않은가. 잘 살펴보면, 녹색의 어둠 속을 하염없이 산책하는 이들 중에는 죽은 사람이 일어나서 걸어다니는 것 같은 낯짝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끼니처럼 끊이지 않는 야외 음악회. 가로수를 위한 음악회는 곧 시민을 위한 음악회가 아니겠는가. 내가 관할하는 구역 북서쪽 달빛길 끝과 연결되는 11번지의 가로수 관리인 대장은 10년 전까지 모 음악대학 교수였고, 꽤 규모 있는 p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였다고 들었다. p시 출신인 그는 소위 귀화한 인물이다. 우리 도시국가에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 가치를 발견했던 것이다. 인간의 얄팍한 귀 두 개를 기쁘게 하는 음악이 아니라, 출렁이는 초록 잎사귀들, 백 개의 가지들, 갈색의 몸통 전체가, 세포 전체가 순수하게 반응하는 음악. 생명에 주사바늘처럼 직접 접촉하는 음(音). 식물의 예민한 줄기로 하여금 마치 그리웠던 연인의 몸을 대하듯 바이올린을 감싸게 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파리가 뒤집히고 줄기가 뒤틀리고 콩나물 대가리가 깨지며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소리도 있는 것이다. 11번지 가로수 관리인은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었다.

가로수 관리인들 중에는 그와 같이 결정적인 선택을 한 존재들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로는 적어도 열다섯 명의 가로수 관리인은 가로수에 대한 특별한 열정, 고귀한 광기, 천사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비밀조합원이었다. 매월 한 차례 우리는 15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비밀은 15인 공동의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 한 개의 영혼만이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개별적인 영혼에 우리는 서로서로 끌렸던 것이니까.

오늘 모임에 참석한 가로수관리인은 열네 명. 이렇게 빈 의자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렇지만 평소에 제아무리 건강한 성인이래도 39도 5부의 뜨거운 이마를 가지고 땀에 젖은 침대를 떠나서 새벽 찬 공기를 뚫고 달려올 수는 없는 법. 그녀는 며칠째 열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녁 8시 무렵부터 이미 비가 추적거리기 시작했다. 예보되어 있던 바였다. 지금은 그 비의 기세가 ff(포르티시모), fff(포르티시시모), 피아노 건반을 내리치는 베토벤의 손가락이래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녀의 뜨거운 꿈속에도 우리 14인은 이렇게 모여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빈 의자가 없겠군.

– 그렇겠지.

– 오직 꿈만이 완전하니까.

– 가로수 관리인의 꿈이라면, 모쪼록 그래야지.

– 그런가? 내 꿈엔 구멍이 숭숭한데. 이빨 빠진 노파의 입속 같다니까. 냄새도 고약해. 나는 빨리 꿈에서 깨어나 내가 사랑하는 가로수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어서, 아침이면 번쩍 눈을 뜨고 발딱 몸을 세운다네.

  

정말이지, 땅에 구멍을 뚫을 듯이 비는 내리꽂히고 있었다. 바로 그런 것이 빨간 사과알을 떨어뜨리고, 벚꽃잎들을 따뜻한 눈발처럼 흩날리게 하고, 낙엽으로 우리의 발등을 덮는 중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력에 끌려 떨어진 빗방울들은 도열한 가로수들의 물관을 따라 은어떼의 은빛 비늘처럼 되돌아간다. 초록빛, 초록빛 잎사귀를 향하여, 이 도시의 흙을 두드린 빗방울들이 일제히 솟구치고 있었다. 오래된 단체사진에 박힌 듯이 유리창에 얼굴을 모은 우리들에게는 저마다의 가로수 행진곡이 장중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저마다 어디론가 씩씩하게 가고 있는 것이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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