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지금·여기의 심연

 

[철학, 삶을 탐하다_제2회]

 

 

지금·여기의 심연

 

조광제(철학자)

 

 

 

 

 

  ‘은 노을이 가을 단풍의 드넓은 옷자락을 뒤덮으며 천지사방 불을 놓은 듯 선연하다. 누군들 이 장엄한 풍경에 심취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설혹 풍경에 흠뻑 젖어버린 몸을 거두어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를 되새긴들, 그런 나마저 이미 온전히 붉은 노을의 빛을 받아 스스로를 가눌 길이 없구나.’ 어느 가을날, 인간이란 때로 제대로 발을 헛디뎌 몰입의 지경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쳐 이 글귀를 쓰게 되었다.

  독하게 함몰되는 지금·여기에서의 전락을 원하다니. 인간은 필멸의 짐을 꼽추처럼 등 근처 어딘가 몸속 깊이 불룩하게 지니고 지닌다. 그 흉물스런 모습은 신에게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껄껄 웃어젖히느라 여념이 없는 신 앞에서 오히려 그렇듯 심연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는 존재가 인간이다. 지금·여기의 심연이라니, 신은 꿈조차 꾸지 못한 근원적 불가능의 영역을 지금·여기의 현존적인 인간은 함부로 탐한다.

  존이라 했는가. 현존은 다름 아니라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恒存)을 밑감으로 삼은 것이거늘, 지금·여기가 이미 늘 그렇게 주어져 있다고 해서 쉽게 넘겨버릴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여기의 찬란한 응축을 보라. 반드시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될 기세로 일체의 과거와 미래 심지어 현재마저도 한 점 자신의 몸뚱이 속으로 끌어당겨 웅크리고 있는 그 자세를 보라. 꼽추의 몸을 닮은 지금·여기의 응축은 바야흐로 다가올 폭발을 염두에 둔 채 팽팽하지 않은가.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꼽추〉

 

활처럼

등 굽은 나의

몸에서

 

시위를 당겨 줄 자

누구인가

 

 

  명 그 스스로가 아니고서는 어떤 다른 무엇도 한껏 팽팽하게 긴장된 지금 · 여기의 응축을 폭발로 이어 줄 수는 없다. 그 스스로임은 폭발을 통해 입증되는 법, 하지만 폭발이란 반드시 스스로가 아닌 것들의 폭발임을 어찌할 것인가. 그 스스로임을 자성(自性)이라 이름 한다면, 그 다른 것들을 터뜨리는 폭발을 대타성(對他性)이라 이름 한다면, 응축에 의거한 자성은 다름 아니라 타자들이 응축된 것이요, 응축에 숨겨진 대타적인 폭발은 다름 아니라 내 스스로의 자성이 터져 나오는 것임을.

  금·여기의 심연이 깊을수록 거기로 뛰어드는 발꿈치의 도약은 오히려 가벼운 법이던가. 한 점 오염도 없는 내 스스로이기를 원한 나머지, 지금·여기 훤히 뚫려 있는 심연을 향한 각오는 최대한의 응축을 통한 것임을 알고 있다. 거기 일체의 타자들이 내 속에 응축될 것이기에 지금·여기의 심연으로 뛰어드는 도약의 가벼움은 결국 타자들이 무상으로 제공한 위력이었으리라. 그뿐일까? 심지어 심연으로의 도약 끝에 벌어지는 그 짧으면서 무한한 폭발의 시간이 열리는 것조차 기실 타자들의 위력인 게다. 예의 그 시인은 또 달리 이렇게 노래했다.

 

 

〈몸〉

 

몸은

 

축축이 젖은

두께를 지닌

색깔로 뒤덮인

암호로 가득 찬

언어에 의해 겁탈되는

서로 인상착의가 닮은

그림자들의

 

비릿한 시간의 끈으로 동여맨

묶음인 게다

 

 

  몸은 지금 여기 나의 현존을 가능케 하는 밑감이자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을 버티는 위력의 바탕이다. 그런데 그 내 몸이 기상천외의 그림자들로 잔뜩 채워져 있다니, 이 그림자들은 나의 자성을 일군 타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인은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을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최고의 현존 철학자 사르트르가 시간의 끈적끈적함을 이야기했다면, 여기 이 시인은 시간의 비릿함을 제시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발을 헛디뎌 지금·여기의 심연으로 가볍게 뛰어든 자의 후각과 촉각은 도대체 얼마나 관능적이란 말인가. 관능적이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면, 신성하다고 할 수도 있을 터, 이십수 년이 흐른 뒤 이 시인은 띄어쓰기조차 하지 않은 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의굴신은〉 

 

그의굴신은허리를포목점얌전한옷감처럼두겹으로포개어놓고자하는그의굴신은자신의좆을빨기위해몸소행해지는그의굴신은극도의자위를노리는그의굴신은손보다는입을믿는그의굴신은기형도입속의검은잎을어둑한자궁속붉은빨판으로만들고자하는그의굴신은닿을듯미끄러지고미끄러지면서미련없이치고들어오는자신의좆을한입가득끝간데없이채우려는그의굴신은일찍이가려움을모르는입속붉은점막들을위한그의굴신은자신이과연좆인지입인지를시험하려는그의굴신은좆이면어떻고입이면어떠냐고빈정거리다가좆이입인지입이좆인지어떻게아느냐고힐문하더니좆을품은입도내가아니고입속의좆도내가아니라고우길참인양지난한과정을겪는그의굴신은더기분좋은쪽이입인지좆인지를시험하려는그의굴신은그의몸속에서잠들고있는그녀를깨워그녀의입술이되고그녀의혀가되고그녀의이빨이되고그녀의좁디좁은목구멍이되고그녀의식도를타고내려가이윽고그녀의항문이되고자심지어그자신에게낯설기조차한그자신의결의를탐내는그의굴신은두다리가갈라지는중심에서거추장스럽게앞으로툭튀어나온좆을아예굴떡삼키고서는질긴세포들로된그녀의항문세상을향해여닫는창을주검처럼아예열고서긴꼬리인양매달고다니고싶어하는그의굴신은이윽고입구멍으로깊숙이들어가버려한개의자루인자신의몸을아예까뒤집고자죽을힘을다하는그의굴신은좆을내장깊숙이집어넣어미쳐버린손으로만들어몸안팎을확뒤집어몸속곳곳에보지들이숨어있었음을증명하고자하는그의굴신은마침내백주대낮주렁주렁한마리의문어가되어발갛게드러난수없는크고작은보지들을여닫으며전시를하고파하는그의굴신은한때태양의뿌리가자라나던토양이었던견고한등뼈를항문으로난길을따라뽑아내버리고오로지살만남기고자하는그의굴신은세포들낱낱이수천수만개의미친달을삼킨끝에정체불명의짐승이되어토해내는울부짖음을통해신음과비명의출처를캐내고자하는그의굴신은죽음이놀라줄행랑으로도주해버릴정도로울부짖다못해기어이터져버리고말그의굴신은처음부터아예지독히도위태로운올무에뛰어들어있었던탓에후회할근거조차없는그의굴신은

 

 

 

 제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함정이 되고 있다. 지금·여기의 심연이 함정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최대한 힘껏 뛰어들고자 한다. 한껏 꾸부린 꼽추의 자세가 아니고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심연에의 도약이 아닌가. 일컫자면 제대로 발을 헛디뎌 이미 가볍기 이를 데 없는 도약을 하고 만 것이다. 그곳 심연의 벌어진 틈,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고 끈적끈적함이 온몸을 녹이고자 덤벼들 것이다.

  금·여기의 벌어진 심연, 그 양안(兩岸)의 무한 복합다층의 주름들이라니, 함부로 지금·여기의 범속(凡俗)과 진부(陳腐)를 입에 올리며 현존의 삶을 노략질하는 자들의 우둔함을 무슨 방도로 질책해야 할 것인가. 오이디푸스를 노래한 소포클레스의 입을 통해, 그리고 니체의 입을 통해 실레노스의 지혜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바, 옛 그리스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야말로 흉물스런 꼽추의 몸을 보고 한없이 비웃는 신의 우스갯소리가 아닌가. 이에 대해, 몸 철학자 메를로-퐁티가 한 말로 기억하지만, 그의 저작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는 대답이 있다. “인간은 무의미에서 의미를 창출한다. 그래서 신보다 불행한 것이 아니라 더욱 위대하다.”

  금·여기의 심연은 의미와 무의미가 미처 분화되지도 못한 채 비릿하고 끈적끈적하게 시간이 녹아 흘러내리는 곳이다. 근원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이미 늘 그곳으로 뛰어들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 어떤 누구의 삶조차 현존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보다 더욱 위대한 까닭이란 바로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 그 뜨겁기 이를 데 없는 심연이다.

  금·여기의 이 절대적인 심연의 열기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데도 권력을 쥔 자들은 인간 삶을 근본에서부터 거세하는 잔인무도한 자들이며, 지금·여기의 이 절대적인 심연의 열기를 짐짓 무시하면서 자본의 위력을 쥔 자들은 인간 삶을 근원에서부터 절취하는 후안무치한 자들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여기의 절대적인 항존에 미쳐버린 나머지 그 무한 복합다층의 비릿한 심연으로 뛰어드는 자는 다름 아니라 시인이요, 예술가가 아닐 수 없다. 니체가 도래를 앞당기고자 한 초인조차 지금·여기의 심연을 향한 관능적 광기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렇다면 궁금하다. 지금·여기의 심연을 향해 가볍게 발꿈치를 들어 올려 도약을 일삼는 자의 심사에 비친 죽음은 어떠할까? 여기 예의 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유서〉

 

다들죽음처럼슬퍼하는시각문이탁닫히면서완전한어둠한덩이단단한고체가되어몸을옭죄어뜯어내듯빨아당길즈음살려달라는비명마저들어올린손가락끝을미처빠져나가지못한채응고되더이다남은시간은그저화석으로변성하는일뿐한줄기미치도록아름다움에대한기억조차딱딱한돌덩이속미세한결이되어한껏차가와지더이다겨우지표를비집고나온누런손등껍질은지독히말라버린황무지나뒹구는죽은가시덤불갈퀴에쓸려찢기운흔적으로남았을뿐이더이다붉디붉은두눈알마저더없이빛바랜채죽음의문설주에걸리우고아홉구멍으로쏟아져나오는진액이죽음의휘장에뜻없는암호를써내려가다순식간에말라멈추이더이다남은자들의기억은바스라지는모래알인양이미아랑곳없어진지오래거늘시간이한없이부드러운그칼을미련없이놓아버리더이다오로지문득찌익하고서산지산방거울이찢어지는순간그것으로끝이더이다

 

 

 ‘었다고 하더라.’ 하는 비슷한 말들이 마치 삐라처럼 지인들의 입을 통해 잠시 뜨겁게 회자된 후, 수삼 일이 지나지 못해 당연한 일로 치부되면서 가끔씩 술좌석의 얘깃거리로 바뀌는 것이 나의 죽음임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다. 지금·여기의 심연은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빛으로 그렇듯 사람들을 위대하게 길들인다.

 

《문장웹진 1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