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단어

[단편소설]

 

 

여름의 단어

 

 

박민경

 

 

 


    노량진에서 고속터미널역 방향으로 가는 플랫폼 1-1은 비교적 한산했다. 희원은 앞 사람과 간격을 충분히 두고 섰다. 시선을 발끝에 두고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희원이 서 있는 구간까지 밀치고 들어왔다. 희원은 심호흡을 연달아 한 뒤 열차에 떠밀리듯 올랐다.
    주 2회 정도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소견을 지키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희원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열차에서 내렸다. 온몸이 축축한데 입만은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힘껏 침을 모아 삼켜도 건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럴 때면 길 위에서 바삭하게 말라 죽은 지렁이가 떠올랐다.
    천변의 산책로에 비 냄새가 내려앉으면 지렁이들은 일제히 화단에서 기어 나왔다. 행여 밟을까 잔뜩 신경을 곤두선 채로 지나갔다가 다음날 다시 가보면 혼자만의 수고였던 듯 자전거나 발에 밟혀 터졌거나 말라 죽은 지렁이의 잔해를 잔뜩 볼 수 있었다. 무모하고 미련하다고, 얼룩진 산책로를 지날 때마다 생각했는데 두 계절 전쯤인가. 희원은 3살짜리 조카와 학습 만화를 보다가 뒤늦게 알았다. 피부호흡을 하는 지렁이로선 흙에 물이 차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책로를 횡단한다는 걸. 그걸 알고 난 후부터는 뭔가, 남 일 같지 않았다.
    희원은 편의점에서 생수를 샀다. 버스로 4분이면 갈 거리를 20분 동안 천천히 걸었다. 늦지 않으려면 대중교통을 타는 날엔 집에서 30분씩 더 일찍 나와야 했다. 마스크를 벗고 덥게 차오른 숨을 뱉어냈다. 땀방울이 희원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6월이 되니 아침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희원은 그늘을 찾아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느리게 걷다 보면 귀에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박동 치던 심장이 잠잠해지고 안색이 돌아왔다. 몸에 피가 도는 기분. 살아 있는 기분. 나는 무사해. 의사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신에게 무사하다고 선언하는 것. 가상의 안전지대에 나를 드래그해 옮겨 놓는 것. 믿음을 실체화하기 위해 신상神像을 만든 구도자들처럼. 희원은 매일 매 순간 스스로에게 빌고 또 빌었다.


    출근한 희원을 보자마자 나미 씨가 의자를 돌돌 끌고 다가왔다. 은밀하게 내민 손에는 주먹보다 큰 귤이 쥐어져 있었다.
    본가에서 보내 주신 건데 엄청나게 달아요. 무거워서 두 개만 챙겨왔는데 희원 씨 드세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라는 듯 나미 씨가 속삭였다. 짧은 단발머리에 덧니가 귀여운 나미 씨는 유독 희원에게 살가웠다. 사촌언니와 이름이 같아서 친근하다고 했다. 고작 그런 얄팍한 접점으로 매번 간식이며 웃음을 선뜻 내어주는 그녀에게 희원은 겨우 고마워요, 하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숫기 없는 태도에 답답할 만도 할 텐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나미 씨는 목표대로 귤을 전달한 것에 만족한 듯 재빠르게 의자를 굴려 자리로 돌아갔다. 그동안 나미 씨에게 받은 주전부리를 헤아리면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서랍 하나는 차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서랍 하나만큼의 빚을 진 것 같다고 희원은 생각했고, 그러자 딱 서랍 하나만큼의 질량이 가슴을 짓눌렀다. 손에 쥐어진 귤이 필요 이상으로 묵직하게 느껴졌다.
    희원은 모니터에 내달 촬영 기획안을 띄웠다. 이제 정말 여름이 코앞이었다. 시즈닝 키워드인 휴가와 방학, 여행 관련 기획만 해도 일정이 차고 넘치는데, 모델 섭외며 소품 구매까지 자잘하게 챙기고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희원은 오전 내내 기획안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점심 무렵에서야 겨우 실장에게 파일을 넘겼다. 그래도 스튜디오에서 세 계절을 보내는 동안 업무 사이클이 이제 제법 몸에 익었다.
    처음 인수인계를 받을 때 실장이 지금 떠오르는 단어 하나를 말해 보라고 했었다. 희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봄이라고 답했다. 그날 아침 예년보다 빠르게 봄이 찾아온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장은 회사의 이미지 플랫폼에 봄을 검색했다. 벚꽃, 피크닉, 화창한 하늘, 각종 봄 이벤트 시안, 가벼운 차림의 가족과 연인들의 이미지가 모니터를 채웠다. 실장은 말했다.
    특정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가급적 다채로운 연관 이미지를 서비스하는 게 목표예요. 이를테면 봄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거죠.
    희원은 데이터베이스를 꼼꼼하게 훑고, 검색 연관성을 높일 수 있는 키워드들을 추려 기획안으로 만들었다. 촬영 기획이 아니라 계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깨가 절로 펴지고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해 봄엔 희원의 기획대로 봄나물과 입학식 이미지가 추가됐다.
    스튜디오의 오후는 대체로 고요하게 흘러갔다. 가만히 귀를 열면 하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공을 차는 소리가 작은 새처럼 날아들었다. 희원은 이 시간을 좋아했다. 고요가 차분히 고이는 시간. 이 공간에 소속된 뒤로 희원은 고요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전처럼 고요 속에서 질식을 연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고요 속에서, 그 고요를 찢고 나갈 틈을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희원을 깊게 숨 쉬게 했다. 이곳에서 희원은 고요에 편승하는 쪽이었다. 더 이상 저편의 고요에 홀로 남겨지는 쪽이 아니었다.
    위이이잉.
    갑작스러운 날선 굉음에 희원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산수유나무가 잔잔하게 떨고 있었다.
    저거 벤다더니 오늘이었구나.
    나미 씨가 중얼거렸다. 눈이 마주치자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데크를 설치한다고, 야외촬영 문의가 꾸준히 들어와서 데크를 깔고 카페처럼 꾸밀 예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희원은 꼭 그래야만 할까, 생각하면서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대에는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이 많았다. 이곳만 해도 40년 된 2층짜리 고택을 개조한 사무실 겸 스튜디오였다.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지만 골조는 그대로 남겨 둔 탓에 찬찬히 훑어보면 어렵지 않게 부엌이, 작은방이, 거실이 있었던 자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삼대가 살았던 곳이라고 했던가. 희원은 종종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얼굴도 구성원도 모르지만, 삼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비슷한 패턴으로 번져 가는 어떤 움직임을 연상하게 했다. 가령 물수제비가 만들어내는 파형 같은……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 늦게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면 그 파형의 테두리가 슬쩍 몸에 닿을 때가 있었다.
    넌 누구야?
    하고 묻는 듯한. 조심스러운 기척이었다. 이상하게도 무섭진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의 기가 계속해서 쌓이면 인지할 수 있는 무엇이 된다는. 괴담도 미신도 좋아하지 않는 희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얘기만은 그럴 법하다고 느꼈다. 나고 자란 곳에서 다시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분명 버티는 것이 고작인 자신의 하루와는 다른 밀도의 시간을 쌓아내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이 공간의 것이기도 한 그 시간의 겹들이 이곳에 남아 떠돌다가 망망히 부딪쳤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희원 역시 그들이 감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파동의 형태로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생각했다. 몸 안의 에너지를 이쪽에서 그쪽으로 던지듯이 말이다.
    창밖으로 온통 꽃가루가 휘날려 마치 눈이 오는 듯했다. 작년 여름에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무는 붉은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희원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길었던 여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고 믿었던 나날이었다. 그 터널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여겨질 때마다 희원은 기도문을 외우듯 스스로의 무사함을 빌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무를 올려봤다. 나무는 때를 알고 있었다. 열매를 틔워야 할 때, 잎을 내려놓을 때, 거센 바람에도 묵묵히 버텨야 할 때, 그리고 꽃을 피워내야 할 때를.
    산수유나무는 한참이나 드드드 흔들리다가 넘어가는 소리도 없이 갸우뚱 넘어가 버렸다. 주차장에 노란 불꽃이 번진 듯했다.

 

*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어쩌면 그래서 인지가 늦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주변부에 두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사건의 징후들을 알아차리는 게 늦다. 진창에 빠지고, 헛바퀴가 돌고, 코밑까지 물이 들어차고 나서야 가망 없이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어쩜 그렇게 미련할 수가 있지. 희원은 기가 차서 자주 얼이 빠졌다. 돌이켜보면 뭐지, 싶은 일들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자꾸만 떨어져 있던 가방. 늦거나 잘못 전달되는 자잘한 업무 지시들. 무시되는 피드백. 닫혀 있는 탕비실. 웃음소리. 또 웃음소리.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만 피어오르던 과열감 같은 것들.
    그럼에도 왕따라느니, 따돌림이라느니 하는 자각은 끝내 없었다. 위기의식이 거기까지 갈 만큼, 마땅한 잘못이나 미움을 살 만한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희원은 자신의 선함이, 습관처럼 쏟아 부었던 배려들이 자신을 지켜 주리라 굳게 믿었다. 아마도 자신을 뺀 단톡방을 우연히 보게 되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했던 욕설들, 남발하는 자음들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희원은 그 얄팍한 믿음을 끝까지 종교처럼 모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희원은 빌려주었던 외장하드를 받으러 갔다가 그 단톡방을 봤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을 향한 타인의 험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건 공공의 적을 만들어 씹는 것 외엔 유희거리가 없는 한가한 이들이 관성으로 늘어놓은, 씹어야 하니까 씹는 단물 빠진 껌과는 달랐다. 내용엔 탄성이 있고, 걸출한 단물이 있었다. 희원은 그 안에서 남직원한테만 웃음이 헤픈 ㄱㄹ이자 동시에 일을 ㅈ같이 주는 ㄸㄹㅇ임과 동시에 착한 척 가증을 부리는 천하의 ㅆㄴ이 되어 있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근거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거 없이 유효한 말이기도 했다. 그 네모난 창 안에서는 오직 희원을 씹는 말만이 유효해 보였다. 희원은 마침표처럼 쓰인 무수한 ㅗㅗㅗㅗㅗ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거대하고 연속적인,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허들의 숲에 떨어진 듯했다.
    희원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들 중 가장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언젠가의 회식에서 밖에선 언니라고 부르라고도 했던, 주임을 따로 불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상투적인 피해자처럼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그뿐이었다. 노력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감춰지지 않았다. 주임은 눈을 낮게 내리깐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고른다기보다는 정말로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몇 번을 더 다그치자 겨우 눈을 올려 떴다.
    그냥요. 그냥 그랬어요.
    분명 단톡방에도 비슷한 말을 보긴 했었다. 그냥 ㅈㄴ싫지 않냐. 2222. 333333. 희원은 회의실에서 주임을 내보냈다.
    그 일은 그들로 하여금 그간의 연극적인 태도를 거두는 계기가 된 듯했다. 팀원들은 희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고작 인사고과에 반영될 거라는 얘기가 돌아왔을 뿐이었다. 희원이 원하는 것은 진실된 사과와 부서 이동이었지만 어느 쪽도 이뤄지지 않았다. 단톡방은 폭파된 지 오래였고, 그들 중에서도 일부만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증빙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맞서려고 하면 할수록 희원만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어 갔다. 마치 허깨비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나 빼고 만든 단톡방은 한 열 개쯤 될걸? 내가 바로 마케팅부 희대의 쌍놈이라고. 희원 씨, 너무 담아 두지 마. 다 한때야. 다 희원 씨가 잘하고 있으니까, 괜히 그러는 거야. 미워하는 힘이라도 있어야 견디는 게 직장 생활이라잖아.
    과장이 회식 자리에서 달래는 투로 말했다. 그 타깃이 왜 하필 자신이어야 하는지, 사실이 아닌 일로 욕을 먹어야 하는지를 따져 물으려다 말았다. 당사자들도 설명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엘리베이터나 정수기 앞에서 만난 이들이 어깨를 말없이 쓸어 주거나 눈썹을 늘어뜨리며 입 모양으로 ‘괜찮아?’ 하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희원은 웃었던가. 괜찮다고 했던가. 아니면 그들처럼 ㅋ나 ㅎ를 남발했나. 잘 모르겠다. 그냥 다 ㅈ같았다. 사람들이 죄다 ㅗ처럼 보였다.
    희원은 조용히 버텼다.
    회사는 내실이 있는 중견기업이었고 복지며 처우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특히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직원들이 다니기 좋았다. 두 번의 육아휴직을 쓰고 복귀한 팀장도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출산 의지가 있는 기미혼 여직원들이 기묘한 애사심을 불태울 만했다. 희원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희원은 3년 차 대리였고 1년쯤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이 회사가 좋겠다고, 자신과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
    남자친구의 생일에 그의 부모님과 처음으로 식사를 한 자리에서 그가 자랑하듯이 말했었다.
    이 친구, 복지가 괜찮은 회사에 다녀요.
    남자친구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 희원이 가졌던 자부심. 희원은 적어도 그 자부심 하나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엔 희원을 챙겨 주던 팀장도 업무 외적으로 꾸준히 신경 쓰이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불편했는지 비딩이나 협업이 필요한 캠페인에서 슬그머니 희원을 빼내기 시작했다. 케어 차원이 아니라 마치 썩은 것을 솎아내는 것 같았다.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캠페인에서 지속적으로 제명되면 연봉협상이 불리해지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 이듬해 희원은 입사 후 처음으로 연봉을 동결 당했다.
    희원은 반년을 더 버텼다. 무시도 은근한 배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여겼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기 위해 탕비실로 향하다 문득 딱 한 줌의 햇빛이 바닥에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발을 갖다 대자 발끝이 투명하게 빛났다. 희원의 발등에 뭉근한 열감이 퍼졌다. 희원은 이대로 투명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은 점차 커졌다. 아니 터졌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수까지 동원되었다. 같은 타이밍에 웃는 사람들 속에 희원은 없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반구의 돔 바깥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희원은 웃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웃을 기력이 없었다. 힘들다, 라고 생각하자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들고 있던 머그잔을 놓친 건 그 순간이었다. 컵이 요란하게 깨졌다. 동시에 웃음도 깨졌다. 괜찮으냐고 물어 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희원은 괜찮았다. 조금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내내 막혔던 숨이 조금 트이는 듯도 했다. 희원은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다.

 

*

 


    희원 씨 오늘 혹시 퇴근 후에 시간 괜찮으시면 치맥 하실래요?
    퇴근 무렵에 나미 씨가 메신저를 보내왔다. 낮까지 그렇게나 쨍쨍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내려앉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채도였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힘들겠다고 하자 금방 답신이 왔다. 다음엔 꼭. 희원은 머잖아 비슷한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라 짐작했다. 날이 아주 맑거나 오늘처럼 흐린 어느 날에. 그땐 어떤 핑계를 대야 할까. 아직은, 이라는 말로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 탓인지 산책로는 한산했다.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정거장 전에 내리면 산책로의 입구가 나왔다. 천변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입구 중 하나일 터였다. 희원은 가방 속에 우산이 있다는 걸 재차 확인하며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인적이 드물지만 환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모래가 낀 것처럼 온종일 버석거리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희원은 잡목과 산책로를 나누는 울타리마다 영역표시를 하느라 바쁜 강아지를 지나쳤다. 천변의 폭이 넓어질수록 초목들의 냄새가 한층 짙어졌다. 맞은편 자전거 도로로 이어지는 다리 주변에 이르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키 큰 물풀들이 보였다. 왜가리가 숨기 좋은 곳이었다. 자세히 보면 물풀 사이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는 왜가리의 노란 눈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멋진 자맥질을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희원은 기다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더 가면 자전거를 잠시 대어 놓고 쉴 수 있는 공터가 나왔다. 글라이더처럼 매끈하게 뻗은 유선형 지붕을 얹어 둔 곳이었다. 희원은 공터의 벤치에 앉아서 맞은편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하루 내 몸에 쌓인 오물질을 걸러내는 과정이었다. 여과가 끝나면 집에 가서도 잠들기까지 여남은 시간을 살뜰히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봐야 할 것이 따로 있었다.
    희원은 벤치에 앉는 대신 잡목 앞에 쭈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축축하게 젖은 흙더미 사이로 비 냄새를 맡은 지렁이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김없이 길바닥을 헤집으며 물결 그 자체의 몸짓으로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 모를 방향으로 꾸물꾸물 나아갔다. 희원의 시선에서는 그 지난한 행로의 끝에 있는 목적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지렁이들은 길 건너의 풀숲을 향해 가고 있었다. 희원은 덤불에서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지렁이의 연약한 피부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건져 올려 흙으로 던져 주었다.
    그저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선의만 주어진다면 살 수 있다. 죽지 않아도 된다.
    희원은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유행지난 스커트에 대해, 엉성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대해, 뒤축을 끄는 걸음걸이나 여자치고는 낮은 목소리, 네일을 하지 않는 민둥민둥한 손과 경쟁사의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에 대해, 그러니까 희원 스스로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험담이었다면. 그랬다면 뭔가, 기어를 바꾸거나 책상을 치우듯이 어떤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희원은 젖은 손을 털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빗줄기가 차츰 거세졌다. 가방 속에 있던 우산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비를 맞고 싶어서, 그냥 푹 젖어버리고 싶어서 애써 우산을 잊은 것인지도 모른다. 희원은 한 번씩 기분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을 때마다 차라리 비가 내려 주었으면 하고 바랐고 오늘은 기분과 바람이 맞물린,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왜 이제 와?
    정희는 볼에 괴고 있던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냈다. 희원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희원은 시간을 확인했다. 7시 45분. 산책로에 들렀다가 오면 대략 이 시간쯤이었다.
    일이 좀 늦게 끝났어.
    다 젖었잖아! 우산 안 가져갔어?
    깜빡했어.
    아니 그렇다고 그냥 쫄딱 맞고 와? 버스 안 탔어?
    질문에 묻어나는 못마땅한 기색에서 이 질의응답이 1절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희원은 짐작했다.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희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윤나는 방에서 자는 모양이었다.
    내가 늦을 것 같으면 연락 좀 미리 해달라고 했잖아.
    미안. 깜빡했어.
    ……이따 얘기해. 나 오늘 모임 때문에 좀 늦을 거야.
    …….
    너…… 약 먹고 있는 거지?
    걱정과 채근이 섞인 목소리에 희원은 빨리 나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정희는 뭔가 말하려다가 포기한 듯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급히 현관을 나섰다.
    희원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티브이를 켰다. 핑크퐁이 동요에 맞춰 춤추는 것을 한참이나 본 뒤에 윤나 곁에 이불도 깔지 않고 누웠다. 윤나는 달고 더운 숨을 뱉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개월 수가 더해질수록 형부를 닮아 가는 윤나의 이목구비는 볼 때마다 낯설고 신기했다. 특히 눈을 감으면 외가의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길고 짙은 쌍꺼풀 라인이 보이지 않아 더욱 그랬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윤나는 윤나니까. 세상에 태어난 지 고작 36개월밖에 안 된 이 작은 몸을 어쩌다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희원은 불과 3년 전까지 윤나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윤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간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어 왔던 감정들을 재정립할 필요를 느낄 정도였다. 만약 윤나가 아니었다면 같이 살자는 정희의 말도 흘려들었을지 모른다.
    정희는 희원의 퇴사 소식을 듣고 이유를 집요하게 물었고 기어이 제대로 된 대답을 들어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는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 바보같이?
    그러지 않았다고, 바보 같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정희는 끝내 분개했다. 회사에서 모른 척하고 있으면 인터넷에 국민청원을 올리든 1인 시위를 하든 뭐라도 했어야 했다고, 하다못해 그것들 머리채라도 잡아 보고 나왔어야 했다고 성을 냈다. 약을 먹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눈물을 보였다. 희원은 놀랐다. 어렸을 때를 제외하면 정희가 우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윤나가 태어났을 때도, 이혼 소장을 찍고 와서도 후련하다고 웃던 정희였다. 희원은 그 일을 겪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었다. 감정을 그런 식으로 뱉어내고 싶지 않았다. 울어버리면 지는 것 같으니까. 참고 참았다. 하지만 엉엉 우는 정희를 보자 마침내 둑이 무너져 버렸다. 함께 혼이 나던 어린 시절처럼 희원과 정희는 한참을 울었다. 긴 울음 끝에 코까지 빨개진 정희가 말했다.
    같이 살자. 너 좋을 때까지만.
    희원은 자취방을 정리한 뒤 정희의 집으로 짐을 옮겼다. 윤나는 가족의 모양이 달라진 것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원래도 희원을 잘 따랐지만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껌딱지나 다름없게 되었다. 희원은 집에서 정희와 윤나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윤나를 하원 시키고 간식을 먹이고 놀아 주다가 정희가 올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렸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잠든 윤나 곁에 누워 달고 보드라운 냄새를 맡았다.
    정희는 윤나가 일찍 잠든 날이면 맥주를 마셨다. 부엌에 불도 켜지 않고 식탁에 앉아서 급하게 캔을 비우고 나면 종종 윤나가 더 이상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윤나가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벌써부터 무섭다고. 그게 윤나에게 상처가 될까 봐, 자신을 원망하게 될까 봐. 다른 건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데 자신을 닮지 않은 윤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무서워진다고 했다. 희원은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행여 잘못될까 봐, 원망을 살까 봐 무서운, 그런 사람.
    남자친구와는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는 희원의 퇴사를 완곡한 이별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미래, 계획, 현실 등의 키워드가 대화에 자주 부유하더니 변명 없이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연락은 점차 뜸해지다가 어느 날 완전히 끊어졌다. 희원은 이별을 무감하게 받아들였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때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듯 깔끔하게, 아무런 접착의 흔적 없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행위와 단어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희원은 오한에 잘게 몸을 떨었다. 자기 전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면 감기에 걸릴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했다. 희원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윤나의 숨소리 속으로 깊게 깊게 파고들었다.

 

*

 


    증상은 퇴사와 동시에 참아 왔던 악을 지르듯 터져 나왔다. 희원은 사람들의 발소리, 웃음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위와 장이 자주 아팠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순히 이직을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들이 없는 곳으로 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면접을 보러 가서 하얀 천장과 칸칸이 쪼개진 공간, 파티션 너머로 흥미롭게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들을 마주한 순간 헉, 하고 숨이 막혔다. 명치를 강하게 압박당하듯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식은땀을 쏟아내고 나니 곧 토할 것처럼 신물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괜찮으세요?
    ㅗ가 말했다. 희원은 면접장을 뛰쳐나갔다.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이동 중에 증상이 도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희원은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인터넷에 검색했다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들이나 걸리는 줄 알았던 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대에 따라 전염성이 없는데도 유행처럼 번지는 병이 있다는 얘길 어떤 기사에서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발현시키는 병이었다. 희원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추천하는 병원을 예약했다. 초진을 받으려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취소할까 했지만 대기가 없으니 운이 좋으면 취소가 났을 때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대기를 걸어 두었다. 운이 좋았는지 2주 만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잘못한 사람은 희원 씨가 아니에요.
    상담의는 말했다. 그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와도 같은 걸까.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있을 수 있나요?
    증상을 말하면 따박따박 약을 내어주는 정신과에서 희원은 고분고분했지만, 상담센터에서는 개도를 거부하는 불신자처럼 굴었다. 상담의의 의도를 모르지 않음에도 위로를 불신했고 ‘잘못’이나 ‘원인’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면 집요하게 말꼬리를 잡아 물었다. 원인 없이도 가해가 가능하다는 말보다 차라리 그럴만한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 편이 받아들이기에도, 견뎌내기에도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희원이 생각의 고삐를 그쪽으로 쥐고 나아갈 때마다 상담의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
    행여 희원 씨에게 잘못이 있다고 한들 그들의 가해 행위를 정당화 시킬 순 없어요. 게다가 그쪽은 다수였잖아요. 희원 씨, 혹시 아이가 있나요? 자녀가 없다면 조카나 친밀한 아이를 대상으로 상상해 보세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면 희원 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상담의의 입에서 조카라는 말이 나왔을 때 희원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교복을 입은 윤나를 떠올렸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아이의 입에서 자신에게 왕따의 원인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윤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웅크린 채 울게 된다면. 희원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상담의의 말들은 효능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다. 희원은 가끔 전 회사 팀원들의 SNS에 들어갔다. 희원은 여전히 알고 싶었다. ‘그냥’이라는 말 뒤에 숨은 그들과 자신을 갈라놓은 차이를. 끝내 궁금한 건 그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해시태그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았고, 그래서 희원은 괜찮았다가 괜찮지 않기를 반복했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원인 찾기를 포기하자 끝없는 허무가 안개처럼 밀려들었다. 무기력에 취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희원은 방에 들어가 커튼을 치고 온종일 잠을 잤다. 자도 자도 잠이 쏟아졌다. 밀린 잠을, 빚진 잠을 자듯이 희원은 잠에 침잠했다. 허기도 지지 않았다. 죽지 않을 정도만 먹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몸에 근육이 빠진 것이 느껴졌다.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났을 땐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과 저녁해의 길이가 달라져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온 희원의 다리에 윤나가 매달렸다.
    이모 아야 하지 마.
    윤나를 안아 올렸다. 그사이 더 묵직해져서 두 팔로 힘껏 끌어안아야 했다. 자꾸자꾸 무거워지는 것 앞에서 희원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이보다 더 커졌을 때도 들어 올릴 수 있으려면 일단은 살아야 했다.


    희원은 작은 규모의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 이력서를 낸 것은 아무 정보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채용공고사이트에 기재된 정보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직원이 5명이라는 것과 주소지가 서초구가 아니라는 것, 경력이 무관하다는 것 정도였다. 지원 사흘 후 희원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공을 차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주택단지의 어디쯤이었다. 제각기 다른 대문과 가지런히 걸려 있는 문패, 반질반질 윤이 나는 초인종 버튼, 열린 문틈으로 바라만 볼 뿐 꼬리도 치지 않는 뚱한 강아지들.
    지금의 본가로 이사 가기 전 희원은 9살까지 이런 동네에서 살았었다.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 길에서 롤러스케이트와 방방이를 탔다. 아이가 있는 집은 항상 대문이 열려 있었고, 저녁엔 골목에서 밥 짓는 냄새가 무럭무럭 피어났다. 어른들이 남의 집 아이를 혼낼 수 있는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했던 수많은 놀이들. 빠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단순한 속도의 세계에서 희원은 대체로 이기는 아이였다. 희원은 한때 작고 가볍고 몹시도 날랬던 어린 몸을, 이제는 어디에도 흔적 없는 흉터처럼 기억에만 남은 가뿐한 몸을 떠올리며 골목을 걸었다.
    처음 건물의 외관을 보고 든 생각은 전혀 스튜디오답지 않다는 거였다. 깔끔하게 세운 담과 주차장, 작은 입간판이 아니었다면 가정집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면접이 아니라 오랜만에 옛 친구의 집에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건물 양쪽에는 붉은 열매를 매단 산수유나무가 햇빛 아래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후하다 싶을 정도로 흐벅지게 열린 붉은 열매가 마치 보석 같았다.
    자신을 실장이라고 소개한 깔끔한 인상의 여자가 면접을 진행했다. 조곤조곤한 말씨로 통상적인 것들을 물어 왔다. 질문과 대답 사이 멀리서 이불을 털거나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면접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있냐는 실장의 말에 희원은 처음으로 자신의 증세를 털어놨다. 약을 먹고 있다고, 사람이 힘들다고, 그럼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실장은 조금 놀란 듯하다가 주머니에서 작은 약통을 하나 꺼내 흔들어 보이더니 옅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원래 힘든 거예요. 저는 사람을 쉽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무서운데요.
    어디까지나 책상의 맞은편에서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와는 다른 위안이 밀려들었다. 희원은 궁금해졌다. 사람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희원 씨, 먼저 들어갈게요.
    마지막으로 실장이 사무실을 나섰다. 희원은 카메라 배터리를 확인했다. 스튜디오의 카메라를 써도 된다고 허락받은 건 몇 달 전이었다. 모두 퇴근하고 스튜디오가 비면 희원은 카메라를 들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야망 같은 건 아니었다. 뭐라도 시작해 보라는 권고에 마침 눈에 띈 게 카메라였을 뿐이다. 희원은 스튜디오의 곳곳을 찍기도 하고 주차장에 나가 건물의 전경을 찍기도 했다. 어떤 날엔 동네를 돌면서 길고양이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희원은 촬영한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짧은 일기가 덧붙여질 때도, 사진만 수십 장씩 올릴 때도 있었다. 희원은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찍고 싶은 게 있었다.
    어제 낮에 베어진 산수유나무의 둥치가 부자연스럽게 판판했다. 자연은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직선. 나무의 속살이 크림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 번도 공기와 직접 닿아 본 적 없을 그 속살을 손으로 슥 쓸었다. 손에 거칠고 투박한 나무 향이 남았다. 펜스 역할을 하고 있던 나뭇가지의 영역이 사라지자 담과 하늘의 경계가 자를 대고 그린 듯 반듯했다. 희원은 잘린 나무 둥치와 가려져 있던 건물 뒤쪽의 풍경을 찍었다.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하늘에 낙인이라도 찍듯 선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인더 너머에 던지는 자신의 시선이 최대한 가볍길 바랐다. 시선에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희원은 알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무게였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골목을 올라오는 게 보였다. 몇몇은 술에 취했는지 종이 인형처럼 휘청거렸다. 역 근방에서 술을 마시고 2차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이쪽까지 올라오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휘청거리던 사람이 결국 제 발에 걸려 넘어지자 일행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희원은 점점 멀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달이 밝아 멀리까지 환했다.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미리 미안.
    희원은 정희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가끔 뜻 없이 취하고 싶은 날이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하지만 취해서 무의식중에 하게 될 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희원은 맥주를 마시며 방금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비슷한 사진이라도 매일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다른 키워드로 분류했다.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았다. 희원은 새로 만든 폴더명에 ‘봄비’라고 입력했다. 아침까지 내린 비로 채도가 한층 짙어진 건물 사진과 베어진 나무 둥치 사진을 그 안에 넣었다. 정리를 마친 뒤 며칠간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로 넘겨보았다. 아직 베어지기 전에 찍은 산수유나무 사진도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이 손끝에서 넘어가는 동안 봄은 만개했다가 베어졌다. 만개하는 봄과 베어지는 봄. 그리고 이 기나긴 봄비가 지나가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리라는 자명한 인과 속 어딘가에 희원은 서 있었다.
    희원은 다만 이 모든 것이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공간이, 이 계절이, 이 세계가 그러하듯이. 여전히 가방 속엔 약병이 들어 있었지만 희원은 더 이상 타인의 웃음에 귀 막지 않았다. 내밀어진 귤을 받았다. 투명한 무엇이 되고 싶은 대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었다. 내일은 어쩌면 나미 씨에게 간식을 갚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레에, 그도 아니면 다음 주, 혹은 다음 달쯤에라도.
    희원은 책상 위에서 껍질이 말랑해지기 시작한 귤을 집어 들었다. 며칠 전에 나미 씨에게 받은 것이었다. 껍질을 벗길 때마다 상큼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나미 씨의 말대로 귤은 아주 달았다. 열어 둔 창문으로 흘러드는 밤공기가 상쾌했다. 곧 오래 밝은 계절이 올 것이다. 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처럼 야금야금 길어질 것이다. 희원은 계절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성장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윤나는 정희의 바람과는 다르게 쑥쑥 자랄 것이다. 점점 더 무섭고 귀한 존재로 자라날 것이다.
    희원은 알고 있는 여름의 단어들을 나열해 보았다. 뜨겁고 가열된 단어들과 젖고 서늘한 단어들이 무성하게 공간을 채워 나갔다. 그것이 인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단어는 멀리멀리 동그랗게 파동처럼 나아갔다. 희원은 계속해서 단어를 던졌다. 이대로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박민경
작가소개 / 박민경 

1988년 서울 출생.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장웹진 202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