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페미니즘 오디세이

[비평in문학]

 

문장웹진 비평 기획

 

    2017년 3월부터 [비평in문학]에서는 비평적 글쓰기 형식의 다양한 방법을 비평가 자신의 실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주제로 비평 양식에 대한 이론을 실제 비평으로 실천하는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비평의 효용과 기능에 대한 회의를 멈추기 어렵지만, 비평을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문화가 더 낫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비평의 새로운 정동과 문제의식을 스스로 요청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모든 비평을 폐허로 만든 자리에서만 가능하리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한국문학 비평의 고답성 혹은 무용함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앞으로 [비평in문학]은 ‘비평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창안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비평가의 고민을 구체화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2016, 페미니즘 오디세이

 

 

박혜진(문학평론가)

 

 

    2016년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이슈로 뜨거운 한 해였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 논쟁을 비롯해 낙태 금지에 반대하는 검은 시위 및 ○○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중심으로 촉발된 문제제기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며 페미니즘 운동을 ‘리부트’했다. 리부트 된 페미니즘에서 가장 새로웠던 건 2030 페미니스트들의 활약이었다. 새로운 페미니즘의 얼굴은 넷페미이다. 온라인 매체, 그중에서도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2030 페미니스트, 즉 동시대 페미니즘의 전초지이다. 2016년 한국 문학계를 뒤흔든 ‘여성 혐오’ 역시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 환경에서 점화된 불꽃이었다. 트위터에서 특정 문인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폭로는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발전됐고, 운동은 페미라이터를 비롯한 실천적 활동으로 분기했다. 사건의 본질은 문학계도 비껴가지 못한 여성 혐오 인식과 강간 문화일 것이다.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일련의 폭로와 이후의 움직임에는 넷페미 중심으로 구축된 2030 페미니스트,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뉴 페미니스트, 3세대 페미니스트…… 요컨대 동시대 페미니즘 문화가 이룩한 새로운 성취가 있다.

 

    성취는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영역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문학계와 출판계에는 2030 페미니스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이 활발하게 생산됐다. 기존에 출간된 도서도 충분히 재조명됐다. 그야말로 페미니즘 도서의 부흥이다. 독서 시장의 활기가 성취인 것은 그것이 독자들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독자적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의 상처가 이슈에만 그치지 않고 성찰로 이어지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로문으로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한편 소설과 시를 읽으며 그 고통을 내면화할 수 있다. 목격, 그리고 내면화. 2016년을 경험한 이들의 페미니즘 감각이 이전과 같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길목에서 독자들이 ‘소비’한 페미니즘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베스트셀러를 주목해 봤다. 개별 작품에 깃든 문학적 보편성을 통해 동시대 페미니즘의 진폭과 방향을 짐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은 비평의 탈을 쓴 소비자 분석 리포트가 아닐까.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후방에서도 많은 발견은 이뤄지고, 대중 독서의 숨은 욕망을 발견하는 데도 비평의 본질은 있기 때문이다.

 

 

    #나혼자산다 #일하면서

 

    페미니즘 바람은 2015년부터 본격화됐다. 헬조선과 흙수저 담론에 더 많은 이목이 집중돼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요컨대 2015년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는 헬조선과 페미니즘이었다. 『한국이 싫어서』는 그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청년 문제로 읽는 독법이 대세이지만 표면을 걷어내면 심층부에는 페미니즘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한국이 싫어서』는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 자각하는 20대 여성이 아내, 엄마, 딸이라는 역할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토를 찾아나서는 21세기 한국 여성의 ‘출애굽 서사’이다. 계나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성별에 따라 구획된 의존적·관습적 존재로 살지 않고 미지의 장소이나마 회계사라는 독립적·예외적 존재로 살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누적 3만 3천 부. 2015년 출간 이후 2016년이 되어도 판매가 하락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소설이 헬조선이라는 청년 문제이기 이전에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여성들의 삶에 내재한 두려움에 대한 보편성을 그리는 데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2016년 출간된 일본 소설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도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재생산 기능과 가사 노동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공적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정상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인위적인 자아를 만들어 가던 후루쿠라가 자기 기만적 삶을 내려놓고 진짜 원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 순간이 있다. 후루쿠라가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는 동료들의 인식을 확인했을 때이다. 그녀는 무려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일하며 점원으로서의 태도와 정체성을 완벽히 체화한 완벽한 직원이었는데도 말이다. 계나가 한국을 버리듯 후루쿠라는 결혼을 버린다. 여성에게 삶의 갈등은 유독 양자택일의 구조로 찾아온다.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버려야만 하는 배타 택일적 상황의 부조리함 안에서 (비)자발적 혼자족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팩트폭력

 

    국문과에서 가장 먼저 배운 개념이 여성적 글쓰기였다. ‘여류 작가’ 소설에 나타난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체를 ‘여성적 글쓰기’로 명명하는 식이었다. 비평적 측면에서 하나의 발견이었겠으나 그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감성적이고 사적인 형식의 발화가 문학적 기술 방식으로 호명되면서 그것이 곧 여성 일반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여성 혐오적 인식에 기여한 바 있다. 『한국이 싫어서』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즘 가치를 담고 있는 지점이 여기이다. 계나의 말하기는 표면적으로 볼 때 흔히 여성적인 것으로 이닉 되는 수다의 형태이지만 내용은 감정에 기반한 하소연쯤이 아니다. 계나의 말은 논리에 기반한 설득의 언어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한국이 싫어서』는 한 여성의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진 논리적 발화에 소설의 전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이는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내밀한 것으로 특징지어졌던 20세기 문학에서의 여성적 언어를 전복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여성 캐릭터를 극대화함으로써 제한당해 왔던 여성적 언어를 자유롭게 한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3개월 만에 1만 부 판매를 넘어서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출생해 현재 나이 35세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여성이 당해 온 평범한 차별의 역사를 일상의 환경에서 촘촘하고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 일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팩션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큐 소설이라고도 하는 이 소설은 팩트를 형식화했다는 점에서 논리적 말하기에 대한 페미니즘 문학의 갈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김지영의 이야기를 기록한 ‘보고서’는 여성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폭력적 환경을 기사와 통계를 비롯한 압도적 팩트로 설명한다. 여성에 대한 부당한 구조에 대한 근거 자료를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도록 고안된 형식으로서의 보고서 안에서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의 부당함과 심각성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안전하게 기록된다. 『82년생 김지영』의 반박불가 ‘팩트폭력’은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명백한 사실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데도 효과적인 장치이다. 기존의 사회학적 언어들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넓은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데서 시작한다.

 

 

    #워맨스(womance)

 

    여전히 브로맨스는 대중적으로 유효한 상품이지만 그사이 비교적 많은 워맨스 작품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영화 「미씽」과 「우리들」이 대표적이겠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는 인기 있는 워맨스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다. 지난여름 내내 나는 여기 빠져 있었다고 해도 무방한데, 이를테면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오펀 블랙」, 「블렛츨리 서클」, 「그레이스&프랭키」 같은 드라마를 보며 여성 중심 서사의 한계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일소에 타파할 수 있었다. 영화 성 평등을 평가하는 척도인 벡델테스트를 ‘미러링’해 의도적인 여성 중심 서사를 만든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에게 모두 이름이 있고, 이들이 서로 대화하며, 대화 내용은 남성 이외의 소재로 가득하다. 이름 없는 수많은 여성들의 현실과 달리 이름 있는 많은 여성들은 김지영의 삶이 크고 작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숨은 조력자가 되어 준다. 이들이 연대하는 협력적 구도는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 비하적 대결 구도도 격파한다.

 

    연대를 기반으로 한 워맨스라면 『쇼코의 미소』부터 말해야 했을까. 『쇼코의 미소』는 2016년 한 서점 매체가 소설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소설 1위로 뽑혔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데뷔작 『쇼코의 미소』가 선사하는 감동은 새로움보다 더 가치 있는 익숙함, 여성 중심의 공감과 유대 측면에서 독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록된 단편 「쇼코의 미소」,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미카엘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매애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슬픔을 선사하며 읽는 마음에 직접적인 감동을 준다. 하지만 최은영의 어떤 소설은 새롭다.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 두 여성의 사랑은 자매애에서 나타난 연대를 넘어 갈등과 회한으로 ‘치열’한 로맨스 서사로 확장된다. 특유의 ‘공감과 유대’의 언어로 말이다. 성별 정체성으로 상대화되지 않는 두 주체의 갈등이 여성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건 물론이다. 이 소설에서 여성성이나 남성성 같은 관습적 구분은 차라리 무화되는 편에 가깝다. 급기야 「한지와 영주」는 나이로비의 남성 수의사 한지와 한국의 여성 대학원생 영주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표식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는 것은 오직 높은 수준의 공감대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어긋남과 갈등이다.

 

    높은 주파수의 공감대 안에서 최은영 소설의 워맨스가 보여주는 ‘하이엔드’ 연대의 서사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감동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이나 한계선을 무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론 『한국이 싫어서』, 『편의점 인간』, 『82년생 김지영』에 드러난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과 그것을 반영한 이야기가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선 작품들과 비교해 『쇼코의 미소』가 성취한 소설 특유의 서사적 완성도는 더 확장된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를테면 『쇼코의 미소』가 도달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일군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져 워맨스가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는 미래 같은 것. 마치 지난여름 내 시간을 온통 빼앗아간 넷플릭스 드라마들처럼 말이다.

 

    아서 C.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새천년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4년 봄…… 달 착륙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먼 미래의 꿈처럼 보였다. 그것이 결국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두 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제미니 호가 우주를 비행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의 일이었고, 달 표면의 실체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 되는 일은 언제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언제가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믿을 수 없었다. 적어도 2015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2016년, 지난 한 해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접하며 동시에 책을 읽었다. 반복컨대 지난 한 해 동안 불었던 페미니즘 독서 열기는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과하며 내 머리와 감정은 일치하기 시작했다. 지금 미래는 바뀌고 있다. 우리가 읽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줄 것이다.

 

 

 

 

 

 

 

 

 

 

 

 

 

 

 

박혜진
작가소개 / 박혜진(문학평론가)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 평론 부문으로 등단. 민음사 문학 편집자로 재직 중.

 

   《문장웹진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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