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그리는 손

[단편소설]

 

 

손을 그리는 손

 

 

이언주

 

 

 


    이런 데 와본 적 있어요?
    내키지 않으면 그냥 가도 된다며 여자가 향로에 불을 붙였다. 눈이 커진 창민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던 여자였다.
    창민은 고개를 저으며 세 평 남짓한 실내를 둘러보았다. 입구 위쪽으로 붉은 부적이 붙어 있고, 좁은 선반 아래에 상담료를 알리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테이블에 깔린 그림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압정이 꽂힌 아트지에 오른손이 왼쪽 소맷부리를 그리고 다시 왼손이 오른손을 그리는 그림이었다. 여자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마치 그녀가 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점이 더 나을 텐데, 결이 많아…….
    혼잣말로 웅얼거리던 여자가 창민의 앞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닥터 백이라고 해요.
    여자는 서랍에서 흰 천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손바닥으로 구김이 간 부분을 밀어내고 카드를 섞었다. 카드는 여자의 손끝에서 부채처럼 펼쳐졌다.
    당장 궁금한 거라면 타로도 괜찮아요. 한 장 뽑아 보세요.
    여자가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구나.
    여자의 말에 창민이 테이블 앞으로 바싹 몸을 붙였다.
    찾을 수 있겠어요?
    창민은 자기도 모르게 여자에게 답을 구하고 있었다. 여자가 카드를 모았다가 다시 펼쳤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블라우스의 줄무늬가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그녀는 찾을 사람을 생각하며 세 장을 다시 뽑으라고 했다. 형도를 떠올리며 창민이 카드를 뽑아냈다.
    카드를 뒤집던 여자의 얼굴에 설핏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백골의 기사가 말을 타고 있는 그림에 데스라는 단어가 씌어 있었다. 해석이고 뭐고 필요 없어 보였다. 창민은 등줄기로 힘이 빠져나갔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거예요.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당신을 만났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구요.
    여자는 다음 카드를 넘겼다.
    의도가 있었던 걸로 보이지는 않네. 제삼자가 개입됐어. 시작부터 불안한 관계라고나 할까. 그래도 그 사람이 길을 터주고 가잖아 이렇게. 간절하게 마음을 쏟았으니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3번 펜터클 카드는 왜 나왔을까…….
    여자가 손톱으로 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창민은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았지만, 그림이 뭘 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보상이 있을 거라는 말에 그동안 일들이 한꺼번에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호주를 생각하게 된 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친구 경훈의 영향이 컸다. 그는 현지 공장에서 육가공 기술을 배워 와 ‘안심마켓’ 정육 전문점을 열었다. 청년창업 성공사례로 매스컴을 타더니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펼쳤다. 하필이면 창민이 개인 방송을 말아먹고 쉬고 있을 때였다. 그런 경훈을 보면서 창민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워홀에 관해 알아볼 만큼 알아보기도 했다. 해외청년일자리 플랫폼이나 시청 홈피의 공식 프로그램에는 신청자가 넘쳐났다.
    창민은 웹서핑을 하다가 ‘오지문’이라는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오지는 호주 사람을 말하는 현지식 표현이었다. 댓글을 살펴보고 친구 맺기를 했다. 일상을 담담하게 올려놓은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블로거에게 쪽지를 보내고 대화를 신청했다. 운영자인 형도는 워홀 5년 차로 영주권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과장되지 않은 말투가 믿음을 주었다. 창민은 오지문이 호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겨졌다.
    형도가 소개한 질롱의 브로콜리 농장은 8천 에이커가 넘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채소밭이 처음에는 신기했다. 창민이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면접이랄 것도 없이 형도와 계약서를 썼다. 창민의 영어 실력이라면 머지않아 매니저로 추천할 수 있을 거라고 형도가 말했다. 계약서에는 작업 시간과 조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본래 그런 줄 알았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브로콜리 모가지 꺾는 일이 시작되었다. 짙푸른 초록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작업 시작과 동시에 깨달았다. 꺾인 자리에서 뿜어 나오는 풀냄새가 적의를 드러냈다. 브로콜리는 일요일도 모르고 아침만 되면 주먹 같은 머리를 디밀고 올라왔다. 꽃이라도 피면 상품으로 가치가 없어졌다.
    거대한 평원에는 풀을 뜯는 소 떼들만 드문드문 보였다. 남반구의 여름 햇살은 길고 지루했다. 하늘빛이 적황색으로 바뀌어도 주춤거리는 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밤 열 시는 돼야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트랙터가 끽끽 소리를 내며 종일 고통스럽게 움직였다. 트랙터마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몇 달 견디면 매니저가 될 거라는 기대에 그럭저럭 견뎠다. 그런 환상마저 깨어나게 만든 사람은 집주인이었다. 갑자기 농장으로 찾아와 노동자들에게 월세를 내놓으라고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형도에게로 몰렸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형도는 에이전트가 급여를 챙겨 달아난 것 같다고 했다. 형도와 작업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작업이 중단되자 농장주가 달려왔다.
    형도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달아난 것이다. 농장주가 내민 송금 영수증엔 워홀러들이 형도와 했던 계약과는 차이가 있었다. 농장주는 자신과 계약하지 않은 불법 노동자는 떠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거예요?
    여자가 카드 한 장을 뒤집으며 나무라듯 창민을 쳐다보았다.
    여기, 절망만 바라보고 있잖아.
    고개를 든 창민이 테이블 쪽으로 바짝 몸을 붙였다.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이 몸을 돌려 쓰러진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민은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타고 올랐다.
    새벽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가 어둠이 가장 깊은 법이에요.
    안타깝다는 듯이 여자가 창민을 바라보았다. 창민은 그녀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치부를 들켜버린 심정이었다.
    농장에서 쫓겨난 그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떠나가는 버스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불시착한 운석 파편처럼 형편없이 부서진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더 내려갈 바닥이 없는데 그런 순간마저 몸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화장실에 끌고 들어가기엔 캐리어가 너무 컸다.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고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이, 그쪽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급한 마음에 창민은 그에게 짐을 잠깐 맡겨도 되겠냐고 했다. 그는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우고는 자세를 바꿔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민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캐리어가 있던 자리에는 메모 한 장만 남아 있었다. Thanks, Sayonara!


    여자가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확신을 가져야지. 자신을 믿고…… 그렇지, 티핑 포인트가 나오네. 좋은 흐름을 탔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아요. 이렇게 카드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아마도 변화를 스스로 느끼고 있었을 텐데.
    변화가 어찌 되었건 창민은 잘 될 거라고 말하는 여자가 고마웠다.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도 구하지 못하는 처지에 그녀의 말이 크나큰 위안이 됐다.

 

*

 


    창민이 새해 첫날 도착한 멜버른은 한여름이었다. 두 번이나 경유한 서른여섯 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스카이 버스에서 내렸을 때 마중 나오겠다던 형도가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축제 인파로 넘쳐났다. 빔을 쏘아 만든 오로라가 밤하늘에 일렁이고 고층 빌딩의 벽면으로 영상이 흘러갔다. 형도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농장 주소가 찍혀 있었다. 시내 교통이 통제된 사실을 깜박했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창민은 눈앞에 펼쳐진 축제 속으로 자석에 끌리듯이 휩쓸려 들어갔다.
    밤이 늦어서야 그는 센트럴 역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길 건너 편의점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추출기에서 뿜어 나오는 짙은 커피향이 창민을 맞았다. 투명한 유리벽은 편의점 내부를 거울처럼 담고 있었다. 백색 전열등 불빛에 창백한 사람들의 모습이 얼비치다가 사라지곤 했다. 낯선 분위기에 두려운 마음이 조금 일었다. 가까운 진열대에서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냉장고에서 탄산음료 한 병을 꺼냈다.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저만치 통유리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여자가 잘 보이는 곳에서 샌드위치 포장을 뜯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했는지 여자가 돌아보았다. 건조하고 서늘한 눈빛이었다. 동양인이면서도 웨이브 진 금발 머리카락 사이로 콧등과 선명한 턱선이 어딘지 모르게 배우 김혜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연기 특강으로 김혜수의 수업을 들으며 언젠가는 함께 작업할 거라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스카이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여자는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살폈다.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고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를 다시 만난 건 성당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였다.
    창민은 한동안 일할 알바라도 찾기 위해 아침마다 주립 도서관으로 갔다. 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오후에는 성 프란시스 성당으로 갔다. 홈리스에게 나누어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를 버텼다. 종소리가 나고 트램이 지나갔다. 성당 쪽으로 한 여자가 길을 건너왔다. 센트럴 역 편의점에서 보았던 그 여자였다. 창민은 성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사이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파를 헤치며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었다. 한 블록쯤 달려가자 건널목 앞에서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잰걸음으로 길을 건너는 여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라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여자를 따라가는 이유를 댄다면 ‘그냥’이었다. 그것 말고는 할일이 없었으므로. 빅토리아 시장 가까이서 한눈을 파는 사이 또 한 번 여자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길 잃은 사람처럼 멈춰 섰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자가 엘리자베스 호텔 건물에서 세움 간판을 들고 나왔다. 타로 하우스를 알리는 간판이었다. 배너에는 타로와 신비한 동양의 별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배너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마음 한편에는 어떤 계시 같은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창민은 문이 열린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앞으로 좋은 형국. 잊어, 그래야 살지.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커버를 걷었다. 몇 걸음을 떼더니 다시 돌아서 테이블에 손을 짚고 창민에게 말했다.
    그것도 질서라면 질서라고 할 수 있지. 복잡할 게 뭐가 있어. 사는 게 장거리 계주라고 생각하면 답이 바로 나오지 않나. 달리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바통 넘겨받을 사람까지 누가 생각하겠어. ……궁금한 거 더 없어요? 오늘은 웬일로 예약 손님이 없네.
    창민이 뭉그적거리고 일어나지 않자 여자는 차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카밀러 티백을 꺼내더니 창민에게도 마실 건지 물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여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창민은 대답 대신 테이블에 깔린 그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 그림 재밌죠. 그리는 손은 그려지는 손을 그리고, 그려지는 손은 또 저렇게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거야.
    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모든 순간을 다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미스터, 뭐라고 부르죠?
    강창민입니다.
    난 살아가는 게 이벤트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시간이 끝없이 반복되지만 매일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잖아.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죠. 하기야 세상에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겠어. 그건 그렇고, 갈 데는 있어요?
    여자가 창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숨을 한번 삼킨 창민이 의자를 조금 뒤로 밀어 테이블에서 떨어져 앉았다.
    여길 좀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무슨 말씀인지?
    하루 여섯 시간, 주급으로 계산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창민이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스터 강이 사무실을 잠깐 봐주면 해서. 어딜 좀 다녀와야 해요.
    창민은 비자를 해결해 주겠다는 한마디에 여자가 내미는 손을 덜컥 잡고 말았다. 여자는 타로 하우스를 굳이 사무실이라고 했다. 수납장 하나를 열어 침낭을 보여주었다. 젊은 남자가 있기에는 좀 쪽팔리겠다는 혼잣말이 창민의 귀로 파고들었지만 못 들은 체했다. 그녀의 말투는 ‘너 말고도 있을 사람이 많다’는 식이었다. 창민은 더한 것도 참을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겼다. 여기서 자신을 알아볼 사람도 없을뿐더러 더는 나빠질 일도 없었다. 머물 곳이 생겨 막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여자는 날씨 때문에 출발을 미루었다. 사이클론이 지나는 동안 눅눅한 실내는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답답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자의 하루와 창민의 하루가 겹쳐졌다. 창민은 마음을 바꾼 여자가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생각에 빠져 멍하게 앉아 있을 때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구부정하게 앞으로 몸을 숙였다. 강해 보이던 인상과 다르게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허리를 세우고 카드를 펼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화장기 없는 얼굴에 탈색한 금발 밑으로 검은 머리가 삐죽삐죽 드러나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그녀의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여자 쪽으로 슬쩍 손을 내밀면 투명한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이 마주치면 창민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했다.
    창민은 여자를 닥터 백이라고 불렀다. 닥터 백은 그런 창민에게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잘하려고 들지 말고 편할 대로 해요. 애쓰면 오래 못 가.
    라는 말을 하고는
    눈치가 타고났거나 아주 둔하든지 둘 중 하나면 돼, 라고 했다.
    정해진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눈치껏 알아서 버티는 게 창민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며칠 지나면서 툭툭 던지듯 하는 닥터 백의 말을 창민은 웃어넘기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벨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벨 소리는 스모키가 노래하는 ‘옆집에 사는 앨리스’였다. 여자는 노래의 전주가 나오고 몇 소절 흐르고 나서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영어나 중국어로 나누는 대화를 짐작해 보면 그녀의 사업은 규모가 커 보였다. 전화를 받지 않고 벨이 끊어지길 기다릴 때도 있었다. 의아하다는 듯이 창민이 바라보면 닥터 백은 “난 앨리스가 도덕적이지 않아서 좋아”라고 했다. 개인 방송하던 시절 창민이 제품에 관해 물으면 광고계약자들이 어깨를 들썩하며 보이던 그런 표정이었다.
    타로를 보러오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매뉴얼이 내장된 것 같았다. 그녀는 먼저 사람을 자리에 앉혀 놓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무척 힘들었겠네, 하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몸이 테이블 쪽으로 기울고 눈이 반짝인다. 입을 다물고 있던 닥터백이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 전부터 두통이 있지 않았어? 올해는 건강을 조심해야 할 거야,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올해는 구설이 있을 수 있으니 친구를 조심하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 정도면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타로보다 비싼 신점을 보았다. 그녀의 통찰력이 신통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쏟아 놓았다.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창민은 그런 상황을 점지적 백가 시점이라고 했다.
    드디어 닥터 백이 떠났다. 창민이 맡은 일은 전화를 받고 그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어학연수를 온 단기 유학생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정도로 짐작했다. 창민은 타로하우스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가든 알바는 아니었다. 전화하는 사람은 대개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사람이 많았고, 한국 사람도 가끔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상하이에서 보낸 창민은 그들과의 소통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지하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벽에 곰팡이가 번졌다. 곰팡이는 닦아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터를 잡고 넓혀 갔다. 신기하던 것들이 곧 익숙해져 갔다. 닥터 백이 없는 사무실은 창민의 공간이 되었다. 한 번씩 그녀가 돌아오면 좁은 공간이 좁게 느껴졌다.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끊어지면 창민은 통장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무료한 시간을 타로 가이드북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요란한 그림 속에는 삶에 대한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카드는 단서만 제공하면 수십, 수백 가지 이야기로 풀려 나왔다. 끝없이 손을 맞잡고 돌아간다는 무한한 우주도 그중 하나의 의미였다. 파동이나 인연 따위는 처음부터 알지 못 하는 말이었고, 타로 하우스는 그저 시간을 벌기 적당한 곳이었다.
    오후 5시가 되면 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퇴근을 인증하는 공식적인 외출이었다. 빅토리아 마켓은 무료 트램 존의 마지막 정류장이다. 그곳에서 순환 트램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물 대부분이 빅토리아풍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느낌이다. 화보처럼 조성된 공원이나 건물은 고작 이백 년도 되지 않았다. 쏘다니다 보면 한국말이 날아와 귀에 꽂혔다. 익명성에 기대 침을 튀겨 가며 쏟아내는 말속에서 창민은 그들과 일행이 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창민은 하는 일마다 꼬였다. 닥터 백의 말대로라면 시너지를 낼 파동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대하고 단편영화 찍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공백의 벽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다른 채널을 모니터링하고 스크립트를 편집했다. 대기실에서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화장을 했고, 얼굴에 직접 화장하는 트렌드 에디터로 자리를 잡았다. 기괴하거나 화장이 짙을수록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늘어나는 구독자와 조회 수가 자신감을 키워 주었다. 협찬 컬러렌즈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그랬다.
    광고가 붙기 시작하면서 렌즈 회사에서 할인쿠폰을 보내왔다. 추첨을 통해 구독자에게 쿠폰을 발송했다. 컬러렌즈는 부작용으로 곰팡이가 생겼다. 렌즈 회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일일이 대처할 경황도 없었다.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집까지 찾아오는 피해자가 생겼다. 한번 돌아선 구독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콘텐츠를 정비한다는 구실로 계정을 폐쇄했다. 먹튀라는 오명이 순식간에 웹 공간에 도배되었다. 그때 경훈이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 보라고 충고했다. 틀어박혀 있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기회는 찬스’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거들먹거렸다.
    기회는 무슨 개뿔. 창민은 대출받은 돈만 모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다짐했다. 계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반년만 참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람들이 다녀갔다. 중국 관광객들이 오기도 했고, 동양의 신점을 궁금해 하는 호주 사람도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닥터 백을 찾는 사람이 오면 지긋지긋한 브로콜리 농장이 떠올랐다. 창민이 그들에게 물 인심을 베풀었다. 편의점 생수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갈증을 참던 방문객이 물 한잔을 받아 들고는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벽에 걸어 놓은 상담료로 갔다. 일반 타로 30달러, 상세 타로 50달러, 신점 80달러. 코팅해 놓은 상담료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불안에 대해 치르고 싶은 보험료였다. 그들에겐 위안이 필요했고 창민이 타로로 점을 봐주기 시작한 이유였다.

 

*

 


    「한국어 상담 가능」
    창민은 세움 간판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야시장이 열리는 수요일은 밤늦도록 입구에 불을 켜놓았다. 배너를 보고 들어오는 손님이 점점 많아졌다. 주춤거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앉을 자리를 손짓했다. 출입구 바로 옆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 걸려 있었다. 창민이 손님과 마주 앉아 있으면 앞모습뿐 아니라 그들의 뒷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두리번거리기를 마칠 때까지 창민은 기다렸다. 닥터 백이 했던 것처럼, 그들보다 삶에 능숙하다는 투로 말을 걸었다. 간결하게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자신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잠자코 들어 주기만 하면 됐다. 처음 한동안은 무슨 소리를 해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창민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놀랐다.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 주면 되는 일이었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다 알고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운에 줄을 대는 문제라면 이번에는 그냥 운에 맡겨 보기로 했다. 카메라 앵글을 고정하고 가장자리에 수정 구슬을 배치했다. 카드를 뿌리는 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실시간 점사를 찍는 날은 눈을 강조한 화장을 짙게 했다. 사람들은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어떤 영상을 찍든 개의치 않았다.
    유학생은 학생이라 10% 할인. 워홀러는 워홀러여서, 관광객은 여행객이라 특혜가 있었다. 한 번 다녀간 사람은 친구의 친구까지 데리고 왔다. 창민은 단편영화를 찍는 기분으로 그들의 인생을 연출하고 카드를 뿌렸다.
    그냥 가만히 있지 그랬어. 머리가 왜 이렇게 자주 아파? 창민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시늉을 한다. 그러고는 아랫입술을 조금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를 어쩌나 동부보다는 서남쪽에 귀인이 있는데…….
    그라운드에 선 투수는 투구하기 직전 타자의 긴장된 찰나가 한눈에 잡히는 법이다. 앞에 앉은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로비디오처럼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불안이나 호기심이 얼굴을 드러낸다. 흘리는 말에도 사람들은 지도 앱으로 호주의 서남부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 확인했다. 창민은 그런 사람들에게 일부러 반말을 했다. 몇 가지 단순한 문장과 표정만으로도 웬만한 인생을 표현하기에 충분했고 돌려막기가 가능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닥터 백의 여유 있는 몸짓이 그에게도 배어 나왔다. 시간을 더 늘릴 필요가 있을 때는 손가락 끝으로 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돌아온다던 닥터 백은 날짜를 점점 미루더니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항공권만 구하면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던 창민은 닥터 백이 돌아오면 떠날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지하공간이 좁긴 해도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았고, 수입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느 날인가 테이블 커버를 걷는데 새삼스레 손을 그리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창민은 연필을 들고 그림 위를 따라 그려 보았다. 유리에 연필 끌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그림을 꺼내 보니 연필 밑그림을 따라 그린 종이에 미세하게 잉크가 번져 있었다. 그림 뒷면에 닥터 백의 사인이 있었다. 카드의 주도권은 뽑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있다고 하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창민은 가만히 자기 손을 펼쳐 보았다. 그림을 제자리에 다시 밀어 넣고 한 달만, 딱 한 달만 더 있기로 했다.
    산책을 나갔다가 브런즈윅 남쪽까지 내려갔다. 아시안 마트에 들러 김치와 컵라면도 샀다. 마트 앞에는 신간 교민 잡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잡지는 읽을거리가 별로 없지만, 구직광고가 많아 종류마다 한 부씩 챙겼다.
    사무실로 돌아와 위클리 타임지를 펼쳤다.
    ‘특종, 워킹 홀리데이 취업 사기’
    커버스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브로콜리 농장과 형도가 떠올랐다. 창민은 목차에서 쪽수를 찾아 다시 넘겼다. 한국계 뉴질랜드 시민권자 K씨와 중국계 호주 시민권자 B씨가 연루된 비자 브로커 국제 취업 사기 사건이었다. 그들 가운데 K씨는 법정 구속이 되었고, B씨는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이민법에 따라 추방된 사람들 속에 형도가 있었다.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온 워홀러였다. 금액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호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지명수배 기사와 함께 현상금이 붙은 닥터 백의 사진이 있었다. 머리에 전류 흐르는 소리가 지나갔다. 노트북을 켜서 오지문과 호주의 푸른 바다, 몇 개의 사이트를 뒤졌다.


    ‘호주로의 유학, 해외 취업. 워킹홀리데이. 계획부터 수속, 비자 신청 가이드 및 출국 전 오리엔테이션까지 여러분의 안전한 해외 취업을 도와드립니다. 여행 비자로 입국하신 분의 상담 및 모든 신청 과정은 무료로 진행됩니다. 0403-921-2700’
    눈을 감고도 외우는 번호였다. 공을 잘 치는 사람은 생각대로 공이 날아가고, 재수 없는 놈은 걱정한 쪽으로 날아간다더니. 꼰대들이 하는 말은 왜 결정적인 순간에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창민은 컵라면을 꺼내려다 말고 문을 노려보았다. 노크를 하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화장을 지운 터라 창민은 오늘 일이 끝났다고 했다. 남자가 한국어로 뭐라 중얼거렸다. 우리말에 창민은 컵라면 하나를 더 꺼냈다.
    라면 드실래요?
    그럴까요.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컵라면을 받아서 들고는 뜨거운 김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나무젓가락을 벌려 뚜껑 가장자리에 끼웠다. 두리번거리는 남자의 표정 속에서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목이 늘어진 셔츠와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는 패션이라기엔 너무 후줄근했다. 창민은 교민 잡지를 한쪽으로 밀었다. 연필을 쥔 손이 드러났다. 조명 때문에 바탕이 누렇게 보였다. 남자는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옆에 쌓아 놓은 카드를 한 장씩 뒤집었다.
    카드를 읽을 줄 아시는 모양이죠?
    창민이 물었다.
    아뇨.
    그는 무안한 듯 얼른 손을 거두었다.
    유튜브에서 선생님 채널 자주 봤어요. 예전에 여기 위에 있는 호텔에서 일했거든요. 그때는 여길 창고로 썼는데…….
    구독 좋아요, 하고 남자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창민은 쌓인 카드 가운데 한 장을 뽑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좋네, 한마디 던지고는 카드를 섞어 부채 모양으로 뿌렸다. 그리고 남자에게 세 장을 뽑으라고 했다. 남자는 인내 카드와 두 장의 펜터클 카드를 뒤집었다. 창민이 미소를 지었다. 좀 힘들더라도 견디다 보면 사방이 환해지겠네. 여기, 돈 문제도 곧 풀리겠고…….
    냄새 때문에 창민이 일어나 문을 비스듬히 열어 놓았다. 냉장고 쪽으로 간 창민이 맥주 캔을 꺼내는 것을 보고 남자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오래된 친구 집에 온 사람처럼 편안하게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엘리자베스 호텔에서 일하면서 한동안 사정이 좋았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이 왔다가더니 건물 사장이 바뀌고 백패커로 리모델링되었다고 했다.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빈손으로 쫓겨났다고, 밀린 임금을 떼먹으려는 현지인들이 흔히 하는 수법이었는데 모르고 당했다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창민이 카드를 한 장 더 뒤집으며 말했다.
    파동이 맞지 않았던 거지.
    남자는 신기하다는 듯이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면서 다가왔다. 무슨 말이든지 좀 해달라는 표정이었다.
    이것 봐요. 다섯 개나 되는 막대기를 힘들게 지고 가는 거. 일은 많아도 하는 일마다 소득은 없었네. 피곤하다, 피곤해. 그리고 여기 무임승차 하려는 사람은 누구지?
    남자는 그동안 호주에서 겪었던 일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장황한 이야기에 밤을 새우고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창민은 턱을 괴고 무심히 카드를 한 장 더 넘겼다. 그리고 덤덤한 표정으로 수레바퀴 그림을 두드렸다.
    남자가 카드를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그게 뭐냐는 눈빛이었다.
    터닝 포인트라는 말이지. 곧 인생의 전환점을 맞겠네!
    남자의 입 꼬리가 흔들렸다. 거울 속에 남자의 등과 어깨가 서서히 펴지는 듯 보였다. 창민은 이곳에 처음 오던 날, 자신의 뒷모습을 본 기분이 들었다.
    어딜 좀 다녀와야 하는데…….
    조심스럽게 창민이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는 이제 겨우 궁둥이 붙이고 앉았는데 벌써 일어나야 하느냐는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좀 계실 수 있어요? 며칠만 봐주면 되는데…….
    순간 남자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사이에, 얼마든지요. 그는 창민의 손등을 슬쩍 쳤다.
    아닌 게 아니라 창민은 그와 한 시간 남짓 같이 있었을 뿐인데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익숙한 기분이었다. 남자는 1층 로비로 올라가서 씻으면 되는지 물었다. 창민이 내부에 있는 집기를 설명하려 하자 남자가 지루한 듯 하품했다. 알았으니 그만 꺼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창민은 침낭을 내주었다. 배너를 아직 들여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창민은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카메라를 챙긴 창민은 타로하우스를 둘러보며 소리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사는 건 이어달리기라고 닥터 백이 그랬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거친 바람이 창민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안경에 부딪힌 빗줄기에 어둑한 거리가 순식간에 흐릿하게 뭉개졌다. 가로등 불빛이 사방으로 번져 보였다. 멀리서 마지막 트램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입술을 굳게 다문 창민은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이언주
작가소개 / 이언주 

2019 이무영 신인문학상. 2022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그림자 극장』이 있다.

 

   《문장웹진 2022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