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례 외 1편

[창작시]

 

 

면례

 

 

박규현

 

 

 

 


   유명한 초원에서였다 좌우를 둘러보자면 온통 인간밖에 없었다


   들먼지로 눈앞이 뿌얘졌고 나 혼자
   너를 줍느라 바빴다 배낭을 떨어뜨려
   네가 여기저기 쏟아졌으므로


   나는 너를 수습했다
   너는 나로 인해 정돈되어 갔다


   이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니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멀리 가버리는 기분
   절룩이게 되어버리는


   거기서부터 대낮은 이어졌다
   거기서부터 죽음은 이어졌다


   네 얼굴을 들어 올려 품에 안은 채


   어느 강물에 휩쓸려왔던 너를 떠올렸다 네가 떠올랐다 너를 건져냈던 그날


   생각했다 가장 환한 곳으로 가자 제일 트인 데로 안전한 장소로


   너와 나들이를 온 것이라면


   너랑 나랑은 사랑하는 일을 기다릴 수 있었다 미래를
   그려 볼 수 있었다 커피점에서 준 티슈 뒷면에 아직
   싱그러운 나뭇잎 뒷면마다


   낙서를
   하자 스케치를


   형편없는 구석이 있다 해도
   우리는 우리인 것이 좋아


   양지 바른 자리에 너를 천천히 뉘일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모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다들 돗자리를 들고서
   함께 누울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아카이빙

 

 

 

 


   선반마다 액자가 놓여 있다
   모두 이른 나이에 죽은 예술가들의 사진이 담겼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나열해 본다 뱅쇼를 마시고
   양손으로 머그잔을 그러쥐어도 따뜻하지 않은 뱅쇼를


   엎지른다
   일찍이


   잘 죽고 싶었지 그렇게
   테이블 아래로 흘러내리는


   이름을 널리 알리자
   네가 내 손을 붙든다


   너는 여전히 튼튼한 팔다리
   표정과 머리칼을 가졌구나 그대로구나


   카페 밖에서는 인부들이 드릴로 도로를 뚫는 중이다 도심 곳곳을 재정비한다고


   오늘도 조간신문에 나왔다 조그맣게
   희미한 네 초상화가 실려 있었다
   테이블보에 쏟은 음료 자국처럼


   여기에 더는
   남아 있지 마
   이제는 그러지 마

 

*

 


   오늘도 포클레인은 지나간다 서울의 아름다움이 미완인 채로 계속되어


   손가락이 유연하지 않아
   통기타 배우기를 관두었을 무렵에


   너랑 나랑은 마주 앉아 서로의 이목구비를 각자의 이목구비로 그려내었다 너랑 나랑은 어쩌면


   침묵마다
   뼈마디마다


   카페 창문 틈마다
   문풍지가 낀 것을 본다

 

*

 


   영업시간이 다 되었는데요
   남기고 가는 건 없는지 낱낱이


   살펴
   가세요


   이승에서 저승까지


   나는 머그잔을 두고 나온다
   와인과 함께 끓였을 과일 조각들을 두고


   사과 따위를 두고
   너를 두고


   출입문과 다른 문을 열어 두고


   뒤집어 둔 것들을 떠올린다
   그것만으로도 온 하루가 충분하다


   얼룩진 수건을 목에 두른 사람들이 이제야 끝이 났다 환호하는 순간에도

 

 

 

 

 

 

 

 

 

박규현
작가소개 / 박규현

199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시집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가 있다.

 

   《문장웹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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