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새들의 저녁 외 1편

[창작시]

 

 

타오르는 새들의 저녁

 

 

손연후

 

 

 

 


   살아 있는 건 너무 뜨거워


   왜 자꾸 속눈썹은 빠지고
   우리의 무게 중심은 기우뚱할까


   기다란 전신거울은 늘 허기진 도마뱀처럼 비스듬히 꿈꾼다
   도마뱀은 뜨거운 박쥐를 잡아먹고 삽니다, 라고 말하자
   도마뱀의 눈 안에 거꾸로 자라난 활주로가 들어서고
   몇 세기 전의 사람들과 새들이 하늘을 나는 법을 함께 모의하고 있었다


   불에 타 없어진 도마뱀 꼬리에 대한 이야기,
   아무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지


   수상한 저녁의 모의를 벗어나 훨훨 달아나는 거울 속 새들
   새처럼 투명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노을빛 타오르는 활주로 위로 하나둘 날아올랐다


   첨벙첨벙 도마뱀이 빛나는 눈 속을 헹구는 소리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뜨거운 저녁을 건너가는 법을 안다
   낯선 비행사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함성소리와
   발밑으로 무수히 반짝이던 유리 조각들


   우리가 살아 있는 저녁의 역치가 너무 높습니다
   그늘이 드리우고, 타석에 선 마지막 타자가 날아가는 새들을 올려다본다


   찢겨 나간 하늘 사이로 기다란 전철이 지나가며 삐익 새소리로 울었다
   옷가게에 들러 커다란 알바트로스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샀다
   거울 속에도 커다랗고 용감한 알바트로스 한 마리 갸웃거리고


   슈퍼마켓에서 새장 속 파닥거리는 새의 가격을 슬쩍 물어 보고는, 쯧쯧 혀를 찼지
   전봇대나 지붕 위에 올라앉아 무게 중심을 바로잡는 사람들을 아니?


   젖은 속눈썹 아래 일렁이며 번지던 뜨거운 빛들


   저녁마다 살찐 야구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면,
   세상의 모든 파충류의 눈 속에서 열렬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거울 속 반짝이는 새들이 작전 모의를 하듯 속살거렸지
   우리 조금 더 불을 지피고 훨훨 아름다워지자

 

 

 

 

 

 

 

 

 

 

 

사서(史書)

 

 

 

 


   낡은 유언처럼 눌어붙은 종이꽃들이 지고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겨울 얼음가지 끝에 색색의 빛방울로 매달려 있지 우주의 암흑 수프 같은 눈동자 속에서 색색의 보드라운 책장을 넘긴다 총성이 울리고 거칠게 우리의 뺨을 할퀴며 사건의 뒤편으로 날아가는 글자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이 길고 무한한 백지를 걸어가야 할까 오랜 말발굽 자국들과 시시포스의 먼 노랫소리, 머리가 여덟 개 잘려 나간 채 별자리에 걸린 전설 속 바다뱀에게 편지를 쓴다 세이렌들의 섬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던 뱃사람들의 신화에 대하여 쓴다 어떤 책은 핏기가 채 빠지기도 전에 신성한 고깃덩이처럼 제단 위에 바쳐지고 필사에 실패한 어린 페이지들은 쭉정이처럼 뜯겨 나가 활활 불태워졌지 불개들에게 뜯어 먹히는 최초의 태양처럼 타들어가는 잉크투성이 천사의 날개처럼, 공백의 이야기 위로 뿌리내려 무수한 갈래로 흔들리던 가름끈들 발음되기 위해 몸부림치던 푸른 멍 같은 이름들 흔해빠진 결말 하나를 보기 위해서는 철로 위를 걷는 맨발의 행자처럼 살아 있어야 했다 간신히 살아 있기 위해서는 흰 재로 남을 결말을 위해 스스로의 심장을 열어 불태워야 했다 최후의 승자의 발아래로 이름 없는 검은 별들 퐁당퐁당 동정처럼 쏟아지고 수많은 활자를 잡아먹은 펜 끝의 수레바퀴 속엔 푸르릉대며 달려드는 황소 떼와 갓난아이들 울음소리 우리의 탯줄의 기원은 마지막 별의 우물이라고, 시간의 위태로운 절벽 끝에 서서 소의 발굽 뼈로 빚은 영혼 주사위의 확률을 논하는 나와 나와 또 이름이 아주 많은 어떤 나들을 마주 보면서


   잊혀 가는 이름들로 쌓아올린 우리의 별무덤들을 애도해야 해, 우주의 눈동자의 긴 복도 안엔 지루한 겹문들이 한가득 늘어서 있고 촛불처럼 타들어가는 시간의 엉성한 장례식 절차엔 지나치게 예외가 많아 어떤 이야기는 텅 빈 꽃잎으로 흩날리고 또 한 줌 쓸쓸한 빛무리로 가라앉지 필연적으로 별과 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름끈들…… 다만 완벽하게 서술되지 않았기에 밤눈처럼 새하얗게 쌓이는 것도 있다고 나선의 은하수에 흐르는 시간의 피 새까만 잔해로 남은 사랑하는 페이지들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별의 주소 고요한 울음 같은 불잉걸의 첫 기억, 어떤 오래된 이야기는 활활 타오르는 유언처럼 여기 몇 번이고 새로이 탄생하고 있음을

 

 

 

 

 

 

 

 

 

 

 

 

손연후
작가소개 / 손연후

2022년 《영남일보》 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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